열일곱은 어려운 나이다.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그들 각자는 이미 하나의 우주를 지니고 있다. 자아가 만들어졌으나 완전한 인격으로 존중받지는 못한다. 그래서 열일곱은 자신의 세계를 바깥세상으로부터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매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는 시기다. 한 발 차이로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때로는 세상 모든 짐이 내 것처럼 무겁게 어깨를 누르는 열일곱에, 심은경은 흔치 않게 반짝이는 얼굴을 가진 소녀다.
“작년쯤부터 연기에 새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7년 동안 근 스무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니 심은경의 얼굴이 낯익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MBC , SBS 에서 커다란 눈망울과 밝고 당찬 성품의 주인공 아역으로 익숙하던 이 소녀는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낯설 만큼 훌쩍 자라 영화 의 신들린 아이 소진과 의 반항적인 여고생 하린을 연기하며 자신의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대본 외우고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작년쯤부터 연기에 새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제 나름대로 캐릭터를 연구해보고 준비도 여러 가지 해 가요.” 요즘 출연 중인 SBS 는 특히 그렇다.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어 또래 친구들보다 언니(한가인)와 더 친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아저씨(김남길)에게 넉살 좋게 차비를 빌리곤 하는 여고생 원인 역을 좀 더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어서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학교 체육복 차림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섰다. “애가, 성격은 특이한데 옷을 완벽하게 예쁘게 차려 입으면, 뭐랄까요. 거리감 느껴지고 현실성이 떨어지잖아요. 가끔 대본에 없는 것도 애드리브로 해봐요. 그냥 길을 걸어가면 심심하니까 여기서 한 번 춤을 춰 볼까?” 최근 본 기말고사 이야기에 갑자기 한풀 꺾인 목소리로 “그냥…열심히 봤어요”라 털어놓고 5교시 수업에서 밀려오는 졸음의 위력에 대해 토로하는 여고생 심은경의 연기에 대한 친구들의 모니터 결과는 “연기 왜 안 해? 학교에서랑 완전 똑같아” 다.
피규어 가게도, 만화책 가게도 하고 싶은 꿈꾸는 소녀 사실 화장이나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또래들 사이에서 철인 28호 피규어를 모으고 핑크 플로이드를 듣는 소녀는 가끔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과 자신의 ‘다름’에 대해 “사실, 제가 애들보다 정신 연령이 좀 낮은 것 같기도 해요”라고 스스로를 낮춰 인정하는 태도는 를 듣다 토토의 앨범을 사고 EBS 를 통해 히치콕의 에 빠져든 이 독특한 열일곱의 클래식 취향을 허세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래서 올 가을, 심은경이 평범한 학생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은 이 어린 배우로부터 특별함을 발견했던 많은 감독들에게 가장 아쉬운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기를 아주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방학 때 들어와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해 보고 싶어요”라는 심은경에게 유학은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일 뿐 미래에 대한 확고한 포석은 아니다. “엄마가 혹시 나중에 연기 말고 다른 걸 해 보고 싶은 게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셔서 ‘피규어 가게 할래’ 라고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 갖고 놀다가 장사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만화책 가게 주인도 좋아요. 저희 동네 만화책 가게 아저씨가 너무 행복해 보이던데, 가게 예쁘게 꾸며서 아이들하고 얘기도 하고 만화책도 빌려주고. 가끔, 연체료도 깎아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아, 그리고 요새는 음악도 해 보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드는 게 꿈인데…” ‘직업’이 아니라 ‘꿈’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심은경의 눈빛이 다시 반짝거린다. 그래서 이 소녀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되든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꿈꾸는 아이는 꿈꾸는 어른이, 그리고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장소제공. Cafe August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작년쯤부터 연기에 새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지나치게 수줍음을 타는 성격을 고치기 위해 연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7년 동안 근 스무 편의 작품에 출연했으니 심은경의 얼굴이 낯익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MBC , SBS 에서 커다란 눈망울과 밝고 당찬 성품의 주인공 아역으로 익숙하던 이 소녀는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낯설 만큼 훌쩍 자라 영화 의 신들린 아이 소진과 의 반항적인 여고생 하린을 연기하며 자신의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대본 외우고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작년쯤부터 연기에 새로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제 나름대로 캐릭터를 연구해보고 준비도 여러 가지 해 가요.” 요즘 출연 중인 SBS 는 특히 그렇다.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어 또래 친구들보다 언니(한가인)와 더 친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친 아저씨(김남길)에게 넉살 좋게 차비를 빌리곤 하는 여고생 원인 역을 좀 더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어서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학교 체육복 차림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섰다. “애가, 성격은 특이한데 옷을 완벽하게 예쁘게 차려 입으면, 뭐랄까요. 거리감 느껴지고 현실성이 떨어지잖아요. 가끔 대본에 없는 것도 애드리브로 해봐요. 그냥 길을 걸어가면 심심하니까 여기서 한 번 춤을 춰 볼까?” 최근 본 기말고사 이야기에 갑자기 한풀 꺾인 목소리로 “그냥…열심히 봤어요”라 털어놓고 5교시 수업에서 밀려오는 졸음의 위력에 대해 토로하는 여고생 심은경의 연기에 대한 친구들의 모니터 결과는 “연기 왜 안 해? 학교에서랑 완전 똑같아” 다.
피규어 가게도, 만화책 가게도 하고 싶은 꿈꾸는 소녀 사실 화장이나 연예인에 관심이 많은 또래들 사이에서 철인 28호 피규어를 모으고 핑크 플로이드를 듣는 소녀는 가끔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과 자신의 ‘다름’에 대해 “사실, 제가 애들보다 정신 연령이 좀 낮은 것 같기도 해요”라고 스스로를 낮춰 인정하는 태도는 를 듣다 토토의 앨범을 사고 EBS 를 통해 히치콕의 에 빠져든 이 독특한 열일곱의 클래식 취향을 허세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래서 올 가을, 심은경이 평범한 학생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난다는 소식은 이 어린 배우로부터 특별함을 발견했던 많은 감독들에게 가장 아쉬운 소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기를 아주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방학 때 들어와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해 보고 싶어요”라는 심은경에게 유학은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일 뿐 미래에 대한 확고한 포석은 아니다. “엄마가 혹시 나중에 연기 말고 다른 걸 해 보고 싶은 게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셔서 ‘피규어 가게 할래’ 라고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 갖고 놀다가 장사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만화책 가게 주인도 좋아요. 저희 동네 만화책 가게 아저씨가 너무 행복해 보이던데, 가게 예쁘게 꾸며서 아이들하고 얘기도 하고 만화책도 빌려주고. 가끔, 연체료도 깎아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아, 그리고 요새는 음악도 해 보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드는 게 꿈인데…” ‘직업’이 아니라 ‘꿈’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하는 심은경의 눈빛이 다시 반짝거린다. 그래서 이 소녀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되든 한 가지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꿈꾸는 아이는 꿈꾸는 어른이, 그리고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장소제공. Cafe August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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