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무슨 프로레슬링을 10주 동안이나 한다는 거야?
아니 무슨 프로레슬링을 10주 동안이나 한다는 거야?
너 예전에 프로레슬링 좋아한다고 그랬지?
좋아하는 편이지. 비록 각본대로 움직이긴 하지만 온전히 육체의 부딪힘만으로 수십 분 동안의 쇼를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나는 프로레슬링도 위대한 스포츠라고 생각해.

말은 그럴싸한데, 이번에 에서 레슬링 도전하는 거 보니까 좀 다들 장난처럼 하던데? 사실 프로레슬링은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음, 그건 앞으로 9회 정도 방영이 남은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판단 같은데? 이번에는 예전 헐크 호건이나 워리어에 대한 향수와 함께 그 시절 즐기던 몸싸움을 하는 정도였으니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앞으로 본격적으로 프로레슬링 기술을 연마하려면 과거의 장기 프로젝트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을 거야. 사실 프로레슬링에 각본이 필요한 건, 그렇게 합을 맞추지 않으면 기술을 쓰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심하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야. 실제 이날 장난처럼 썼던 기술도 제대로 하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해.

위험? 어딜 봐서?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드롭킥 연습하다 갑자기 노홍철이 시도했던 빅풋이라는 기술 있지? 자료 영상에서 헐크 호건이 쓰던. 이 기술은 언더테이커를 비롯한 거인 레슬러들의 전용 기술인데 이게 정말 박력 있게 보이려면 다리를 올리는 사람도 거침없이 올려야 하고, 거기에 맞는 사람도 머리를 정확히 갖다 대야 돼. 이게 타이밍이 잘 안 맞으면 어떻게 되겠어. 거구의 발에 얼굴을 정통으로 박고 다치기 십상이겠지? 과거 SBS 에서 프로레슬링은 쇼가 아니라고 하던 이왕표 선수가 그 근거로 “레슬러는 맞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실제로 기술을 쓴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야. 괜히 김수로 같은 게임 마왕이 영화를 위해 4개월 동안 매일 8~10시간씩 배웠겠어?
아니 무슨 프로레슬링을 10주 동안이나 한다는 거야?
아니 무슨 프로레슬링을 10주 동안이나 한다는 거야?
그럼 프로레슬링 선수들도 부상을 많이 당하는 편이야?
당연하지! WWE 선수들이 진통제를 달고 다닌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야. 지금은 UFC에서 헤비급 챔피언이 된 브록 레스너는 엄청난 거구에도 불구에고 공중에서 몸을 역방향으로 회전하며 떨어지는 슈팅스타 프레스를 시도하다 목을 크게 다쳤었고, 스티븐 오스틴 역시 오웬 하트의 파일 드라이버에 목을 다쳤었지.

그렇다고 해도 이번 프로젝트를 10주 동안 방영하는 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야. 기술을 배우는 게 오래 걸려도 그걸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잖아. 예전 장기 프로젝트도 그랬고.
어허, TEO신을 믿지 못하는 거냐. 불경하게?

아니, 그렇다기보다…
물론 나도 남은 9주 분량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프로레슬링이라는 프로젝트는 분명 그 정도의 방송 분량이 나올 수 있다고 봐. 네 말대로 기술을 배우는 과정은 다른 특집처럼 그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프로레슬링은 그로부터 실전에 이르기까지 훨씬 많은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는 종목이야.

예를 들어서?
이미 이번 방송에서도 얘기가 많이 나왔잖아. 언더테이커와 헐크 호건의 경기를 보던 멤버들이 ‘등장이 중요해’, ‘마지막 기술이 있어야 돼’라고 한 거 기억나? 프로레슬링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적인 요소가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어. 그러면서 의상도 준비해야 될 거고. 흔히 기믹을 정한다고 하는데 이건 에어로빅 의상을 고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작업이라고.

그게 몇 주 분량이나 나올 수 있다고? 그냥 돌크 호건처럼 대충 패러디로 하면 되지 않을까?
너 진짜 프로레슬링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프로레슬링 캐릭터를 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대충 할 일은 더더욱 아니야.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기믹을 정해야 한단 말이지. 에서 노홍철의 돌+I 캐릭터나 박명수의 호통 캐릭터가 단순한 설정으로 만들어졌다면 지금까지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프로레슬링도 마찬가지야. 언더테이커처럼 음산하게 생긴 거인이기에 장의사 기믹이 먹히는 거고, 잘 그을린 근육질의 몸매를 가졌기에 워리어가 인디언 전사 흉내를 낼 수 있었던 거지. 200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끈 롭 반담의 경우엔 실제로 장 클로드 반담과 얼굴이 닮아 그런 캐릭터 이름을 썼었고.

거기에다가 마지막 기술까지 캐릭터를 위해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물론이야. 프로레슬링에서 피니쉬 무브라고 하는 건데 이것 역시 캐릭터 스타일에 맞게 특별한 기술일수록 좋지. 큰 키와 힘을 이용한 언더테이커의 라스트 라이드 파워밤이나, 엄청난 탄력과 터프함을 자랑하는 제프 하디의 스완턴 밤 같은 기술처럼.

그런 것들을 멤버들이 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르는 거지만 그럴 땐 일반 기술을 살짝 변용한 다음에 이름을 그럴싸하게 붙이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피니쉬 무브를 만들 수 있어. 흔히 슈퍼킥이라고 말하는 옆차기 기술에 발로 박자를 맞추는 퍼포먼스를 더한 숀 마이클스의 스윗 친 뮤직이나, 가장 기본적인 엘보 드롭 기술에 화려한 쇼맨십을 더한 더 락의 피플스 엘보 같은 기술처럼. 만약 길이 대머리를 이용한 박치기 기술을 쓴다면 그냥 박치기 혹은 헤드벗이라고 하기보다는 라이징 선 헤드벗 같은 이름을 붙이고, 유재석이 탑 로프 위에서 뛰어내리는 스플래쉬 기술을 쓰며 로커스트(메뚜기) 스플래쉬라고 해도 되겠지. 어쨌든 그 모든 기술 방식과 캐릭터, 무대 위의 쇼맨십, 승부의 흐름을 짜는 각본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프로레슬링이 가능한 거야. 결코 애들만 보는 유치한 쇼가 아니라고.

알았어, 알았어. 그 취향 인정해줄게. 사실 자취방에서 친구랑 술 먹고 레슬링 하지만 않으면 되지, 뭐.
너 아직까지 나를 그렇게 모르겠냐?

그래, 설마 그러진 않겠지?
나 친구 없잖아.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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