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준은 눈으로 말한다. 연기를 시작한지 15년, TV와 스크린 이전 그의 10년이 집약되어 있는 무대에서 엄기준은 슬픈 눈의 사나이였다. 한 여인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총구를 겨눈 뮤지컬 은 기본이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뮤지컬 의 부스 역시 외로움과 슬픔의 집약체였고, 세상을 향한 복수와 용서를 다룬 최근작 뮤지컬 마저도 그는 슬픈 눈을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끔직한 지옥”을 선물하겠다며 악다구니 쓰는 안에서 엄기준은 18년 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한 여인을 위해 눈물지으며 자신의 존재이유를 재확인 받았다.
“감정을 사소한 눈빛과 표정에 실어내는” 엄기준은 그래서 무대가 좁았다. 무대 밖으로 나와 ‘똥 아나운서’(MBC )가 되었고, 일과 사랑을 얄밉게 독차지한 드라마감독(KBS )이 되었으며, 비열해도 거침없는 기자(MBC )가 되었다. 새로운 얼굴로 나타났지만 무대에서 빛났던 그의 눈은 언제나 안경에 가려져 왔다. 그리고 비로소 “햇수로 2년을 꼬박 기다린 끝에” 안경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엷은 미소와 함께 차가운 눈빛도 장착했다. 커다란 스크린 가득 “이보다 더 악랄할 수 없는” 병철의 냉정한 눈빛이 펼쳐지는 순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수식어가 비로소 생명력을 얻었다. 일말의 죄의식도 없는 사이코패스 병철과 엄기준 사이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한번 꽂히면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다 싶으면 같은 영화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본다는 엄기준에게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 자주 꺼내보게 만드는 다섯 영화에 대해 물었다. 1. (The Last Of The Mohicans)
1992년 | 마이클 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물론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너무 멋있었어요. 음악만 듣고 있어도 대자연을 느낄 수 있잖아요. 연기를 배우던 대학 시절, 배우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감독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추천받았던 영화에요. 배우가 나무를 본다면 감독은 숲을 보는 사람이잖아요. 연기를 하려면 감독으로서 작품 전체를 보는 눈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를 본 이후엔 감독상 받은 영화와 연출상 받은 연극들을 주로 보기도 했었죠.”
18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벌어진다. 영국인 나다니엘(다니엘 데이 루이스)은 아비를 잃고 대륙의 원주민 모히칸 족에 의해 호크아이로 길러진다. 그동안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는 영불전쟁에서 모히칸족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나선다. 은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에 주목해온 제임스 쿠퍼의 1825년 발간된 소설 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웅장한 메인테마 위로 펼쳐지는 광활하고 거친 대자연은 ‘인터넷으로 보면 안 되는 영화’에 뽑힐 만큼 매력적이다. 2. (英雄)
2002년 | 장이모우
“ 같은 경우엔 정말 20번 가까이 본 것 같아요. 10년 동안 복수를 위해 달려왔던 무명(이연걸)이 복수의 대상이었던 영정(진도명)을 만났지만, 파검(양조위)이 말한 ‘천하’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다수의 고통에 비하면 개인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많은 전쟁영화들이 그렇듯 을 보면서도 정말 대의를 위한다면 희생은 필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무명(이연걸)은 10년간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진나라 군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수련을 해왔다. 왕의 10보 앞으로 가기 위해 3대 무술고수인 천(견자단), 파검(양조위), 비설(장만옥)을 만나 뜻을 합하고, 마침내 영정(진도명) 앞에 서게 된 무명. 하지만 그의 선택은 복수의 칼을 거두는 것이었다. 장예모 감독의 손에 의해 탄생한 은 중국 역사에 기록된 자객의 전설을 유려하고 웅장한 비주얼로 그려낸다. 특히 무명과 파검의 물 위의 결투는 한 폭의 수묵채색화를 연상시킨다. 3. (WALL-E)
2008년 | 앤드류 스탠튼
“워낙 좋아해서 DVD 수납장에 따로 애니메이션 코너가 있을 정도거든요.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로 표정연기를 하는 것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그림이 연기를 하는 거잖아요. 특히 자동차, 괴물, 로봇 등 무생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너무 잘 표현되는 걸 보면 저게 연기의 정석인 것 같기도 해요. 집에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는 편인데, 오면 늘 의 DVD를 보여줘요. 의 기본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 7분짜리 보너스 트랙 ‘번-E’ 또한 기가 막히거든요.”
장난감, 자동차에 이어 픽사에서 만든 세 번째 무생물 애니메이션이다. 텅 빈 쓰레기통 같은 지구에 홀로 남은 폐기물 수거 로봇 월-E와 지구탐사 임무를 갖고 우주에서 온 이브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특별한 대사도 없고, 화려하거나 스피디한 화면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브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가는 월-E의 모습은 사랑의 본질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로봇들의 러브스토리와 함께 자연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는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제 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4. (If Only)
2004년 | 길 정거
“극장에서는 못 보고 나중에 DVD로 한 열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펑펑 울어요. 영화 보면서 나도 그만큼 사랑했으면, 그리고 그만큼의 후회가 남았다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2007년 크리스마스 때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이 영화를 같이 본 적이 있어요. 친구가 그냥 DVD에 빨간 하트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르길래 후회한다고 4-5번을 말렸거든요. 무시하고 보더니만 남자 둘이서 크리스마스 때 계속 펑펑 울었죠. (웃음) 한참 울고 나서 밝은 거 보자며 애니메이션 봤을 걸요.”
‘있을 때 잘해’라는 만고의 진리를 가슴 시리게 전하는 영화다. 사랑보다 일이 우선인 이안(폴 니콜스)과 사랑을 원하는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런던 러브스토리는 서울로 옮겨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녀의 죽음 이후 어렵게 다시 얻은 하루의 기회로 이안은 진심의 눈물을 흘리고, 결국 사만다를 위해 대신 죽음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남녀와 런던의 로맨틱한 장소들은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5. (The Dark Knight)
2008년 | 크리스토퍼 놀런
“처음에 “어두운 밤?”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영화를 봤거든요. (웃음) 그런데 보면서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들이 사실 좀 성인을 위한 영화라고 보기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는 성인버전의 느낌이었어요. 특히 조커 역의 히스 레저는 그가 왜 다음 작품을 하다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죠. 너무 잘했더라구요. 연기도 너무 좋았지만 영화적 장치나 기법들이 더욱 그를 돋보이게, 완벽하게 만들었죠. 그 다음 작품에서는 많이 두렵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1989년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시작된 배트맨 시리즈는 이후 조엘 슈마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거쳐 간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와 는 과거 지극히 만화적이었던 시리즈에서 탈피, 성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2008년 개봉된 는 수많은 악당 중 광기의 살인마 ‘조커’를 부각시키며 매혹적인 악역 캐릭터를 구축해냈고,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코패스 악당을 소화해낸 故 히스 레저는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흥행여부와는 상관없이 맡을 캐릭터가 흥미롭다면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기존에 하지 않았던 캐릭터라면 더더욱 그렇죠. 의 게리 올드만을 보고 악역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특히 간접경험조차 할 수 없는 캐릭터들은 상상했던 이미지를 펼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의 병철도 마찬가지에요.” 21편의 뮤지컬, 4편의 연극, 8편의 드라마를 거쳐 첫 번째 영화. 엄기준의 단전은 이미 수많은 캐릭터들로 쌓여있겠지만 아직도 그가 쌓아가야할 캐릭터는 많기만 하다. “일상적인 연기도 해야 되는데, 그런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먼저 강한 설정의 캐릭터들을 해보고 좀 더 많이 겪어보고 난 후에 일상적인 연기를 해야죠. 아직 부족해서 당분간은 그런 연기하면 연기하는 거 다 티나요. (웃음)” 무대 위의 엄기준은 별 4개의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였다. 바닥부터 시작한 새로운 인생. 새로운 티켓 앞에서 그는 몇 개의 별점을 받아낼 수 있을까. 시작이 나쁘지 않다.
글. 장경진 three@
사진. 이진혁 eleven@
“감정을 사소한 눈빛과 표정에 실어내는” 엄기준은 그래서 무대가 좁았다. 무대 밖으로 나와 ‘똥 아나운서’(MBC )가 되었고, 일과 사랑을 얄밉게 독차지한 드라마감독(KBS )이 되었으며, 비열해도 거침없는 기자(MBC )가 되었다. 새로운 얼굴로 나타났지만 무대에서 빛났던 그의 눈은 언제나 안경에 가려져 왔다. 그리고 비로소 “햇수로 2년을 꼬박 기다린 끝에” 안경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엷은 미소와 함께 차가운 눈빛도 장착했다. 커다란 스크린 가득 “이보다 더 악랄할 수 없는” 병철의 냉정한 눈빛이 펼쳐지는 순간,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는 수식어가 비로소 생명력을 얻었다. 일말의 죄의식도 없는 사이코패스 병철과 엄기준 사이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한번 꽂히면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좋다 싶으면 같은 영화를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본다는 엄기준에게 “볼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 자주 꺼내보게 만드는 다섯 영화에 대해 물었다. 1. (The Last Of The Mohicans)
1992년 | 마이클 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물론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너무 멋있었어요. 음악만 듣고 있어도 대자연을 느낄 수 있잖아요. 연기를 배우던 대학 시절, 배우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감독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추천받았던 영화에요. 배우가 나무를 본다면 감독은 숲을 보는 사람이잖아요. 연기를 하려면 감독으로서 작품 전체를 보는 눈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영화를 본 이후엔 감독상 받은 영화와 연출상 받은 연극들을 주로 보기도 했었죠.”
18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 벌어진다. 영국인 나다니엘(다니엘 데이 루이스)은 아비를 잃고 대륙의 원주민 모히칸 족에 의해 호크아이로 길러진다. 그동안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는 영불전쟁에서 모히칸족을 지키기 위해 전투에 나선다. 은 백인과 인디언의 관계에 주목해온 제임스 쿠퍼의 1825년 발간된 소설 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웅장한 메인테마 위로 펼쳐지는 광활하고 거친 대자연은 ‘인터넷으로 보면 안 되는 영화’에 뽑힐 만큼 매력적이다. 2. (英雄)
2002년 | 장이모우
“ 같은 경우엔 정말 20번 가까이 본 것 같아요. 10년 동안 복수를 위해 달려왔던 무명(이연걸)이 복수의 대상이었던 영정(진도명)을 만났지만, 파검(양조위)이 말한 ‘천하’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다수의 고통에 비하면 개인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많은 전쟁영화들이 그렇듯 을 보면서도 정말 대의를 위한다면 희생은 필요한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무명(이연걸)은 10년간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진나라 군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수련을 해왔다. 왕의 10보 앞으로 가기 위해 3대 무술고수인 천(견자단), 파검(양조위), 비설(장만옥)을 만나 뜻을 합하고, 마침내 영정(진도명) 앞에 서게 된 무명. 하지만 그의 선택은 복수의 칼을 거두는 것이었다. 장예모 감독의 손에 의해 탄생한 은 중국 역사에 기록된 자객의 전설을 유려하고 웅장한 비주얼로 그려낸다. 특히 무명과 파검의 물 위의 결투는 한 폭의 수묵채색화를 연상시킨다. 3. (WALL-E)
2008년 | 앤드류 스탠튼
“워낙 좋아해서 DVD 수납장에 따로 애니메이션 코너가 있을 정도거든요.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로 표정연기를 하는 것과 달리 애니메이션은 그림이 연기를 하는 거잖아요. 특히 자동차, 괴물, 로봇 등 무생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너무 잘 표현되는 걸 보면 저게 연기의 정석인 것 같기도 해요. 집에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는 편인데, 오면 늘 의 DVD를 보여줘요. 의 기본 스토리도 스토리이지만, 7분짜리 보너스 트랙 ‘번-E’ 또한 기가 막히거든요.”
장난감, 자동차에 이어 픽사에서 만든 세 번째 무생물 애니메이션이다. 텅 빈 쓰레기통 같은 지구에 홀로 남은 폐기물 수거 로봇 월-E와 지구탐사 임무를 갖고 우주에서 온 이브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특별한 대사도 없고, 화려하거나 스피디한 화면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브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다가가는 월-E의 모습은 사랑의 본질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로봇들의 러브스토리와 함께 자연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는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과 제 6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4. (If Only)
2004년 | 길 정거
“극장에서는 못 보고 나중에 DVD로 한 열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펑펑 울어요. 영화 보면서 나도 그만큼 사랑했으면, 그리고 그만큼의 후회가 남았다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2007년 크리스마스 때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이 영화를 같이 본 적이 있어요. 친구가 그냥 DVD에 빨간 하트가 그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르길래 후회한다고 4-5번을 말렸거든요. 무시하고 보더니만 남자 둘이서 크리스마스 때 계속 펑펑 울었죠. (웃음) 한참 울고 나서 밝은 거 보자며 애니메이션 봤을 걸요.”
‘있을 때 잘해’라는 만고의 진리를 가슴 시리게 전하는 영화다. 사랑보다 일이 우선인 이안(폴 니콜스)과 사랑을 원하는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런던 러브스토리는 서울로 옮겨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녀의 죽음 이후 어렵게 다시 얻은 하루의 기회로 이안은 진심의 눈물을 흘리고, 결국 사만다를 위해 대신 죽음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남녀와 런던의 로맨틱한 장소들은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5. (The Dark Knight)
2008년 | 크리스토퍼 놀런
“처음에 “어두운 밤?”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영화를 봤거든요. (웃음) 그런데 보면서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들이 사실 좀 성인을 위한 영화라고 보기 힘들었잖아요. 그런데 는 성인버전의 느낌이었어요. 특히 조커 역의 히스 레저는 그가 왜 다음 작품을 하다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죠. 너무 잘했더라구요. 연기도 너무 좋았지만 영화적 장치나 기법들이 더욱 그를 돋보이게, 완벽하게 만들었죠. 그 다음 작품에서는 많이 두렵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1989년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시작된 배트맨 시리즈는 이후 조엘 슈마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거쳐 간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와 는 과거 지극히 만화적이었던 시리즈에서 탈피, 성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2008년 개봉된 는 수많은 악당 중 광기의 살인마 ‘조커’를 부각시키며 매혹적인 악역 캐릭터를 구축해냈고,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코패스 악당을 소화해낸 故 히스 레저는 제 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흥행여부와는 상관없이 맡을 캐릭터가 흥미롭다면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기존에 하지 않았던 캐릭터라면 더더욱 그렇죠. 의 게리 올드만을 보고 악역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특히 간접경험조차 할 수 없는 캐릭터들은 상상했던 이미지를 펼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었어요. 의 병철도 마찬가지에요.” 21편의 뮤지컬, 4편의 연극, 8편의 드라마를 거쳐 첫 번째 영화. 엄기준의 단전은 이미 수많은 캐릭터들로 쌓여있겠지만 아직도 그가 쌓아가야할 캐릭터는 많기만 하다. “일상적인 연기도 해야 되는데, 그런 연기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먼저 강한 설정의 캐릭터들을 해보고 좀 더 많이 겪어보고 난 후에 일상적인 연기를 해야죠. 아직 부족해서 당분간은 그런 연기하면 연기하는 거 다 티나요. (웃음)” 무대 위의 엄기준은 별 4개의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였다. 바닥부터 시작한 새로운 인생. 새로운 티켓 앞에서 그는 몇 개의 별점을 받아낼 수 있을까. 시작이 나쁘지 않다.
글. 장경진 thre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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