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아이돌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거나, 신곡을 소개하기 위한 발판이 아니다. 그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자신과 그룹을 알릴 수 있고,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졌는지 소개할 수 있으며, 10대부터 80대 이상의 노인에게까지 자신의 얼굴을 알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아이돌의 예능 활동은 그들의 노래 못지않게, 때론 노래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아이돌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야 예능이든 음악이든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마나 현란한 개인기를 뽐내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결정적인 한방을 날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아이돌로서의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예능에서 아직 더 폭발할 수 있는 어떤 요소가 있는가. 에서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창 활약 중인 아이돌 11명을 뽑아 각각의 분야별로 평가했다.조권의 진가는 그의 ‘깝’이 두드러지는 MBC 가 아니라 MBC 다. 닉쿤이 출연했을 때는 닉쿤과 가인 사이에서 적당한 질투심을 표현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고, 가인과 홍콩에서 단 둘이 있을 때는 각종 개인기를 자연스럽게 녹이며 가인을 리드하는 진행능력은 예능 DNA를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없을 만큼 발군이다. 그래서, 그의 알 수 없는 ‘it’은 음악에 있다. 예능은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솔로 활동 등을 통해 가수로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퍼포먼스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특은 KBS 에서 ‘개그맨석’에 앉았다. 그만큼 아이돌일뿐만 아니라 사람을 즐겁게 만들 줄 아는 진행 능력을 가졌다. SBS 에서 게스트의 토크 사이에 적절한 부연 설명으로 흐름을 잇는 등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은 이미 서브 MC수준. 특히 아이돌이 게스트일 경우 먼저 이야기를 풀면서 분위기를 끌고 가고, 필요할 때는 아이돌임에도 아낌없이 망가질 줄 안다. 그만큼 자신의 포지션과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이용할 줄 안다는 얘기. 아이돌일뿐만 아니라 전도유망한 예능인이다. 작년 10월, SBS 에 출연해 실제 나이를 공개하면서 나르샤의 서른 살 전성기는 시작됐고, 그 절정은 단연 KBS 였다. 유치리를 방문하는 모든 남자 게스트들을 ‘자기야’라고 부르고 19금 삼행시를 지을 수 있는 건 오직 그녀에게만 부여된 특권과도 같았다. 또한, 맏언니답게 건강검진을 받는 동네 어르신의 곁에서 말동무를 자청하거나 구수한 ‘뽀뽀뽀 랩’을 통해 김장하는 어머니들을 즐겁게 하는가 하면, 김신영이 새로운 멤버들의 뒷담화를 시작하자 곧바로 이를 받아치면서 프로그램을 이끄는 조력자의 면모까지 보여준다. 그렇게 에서 다진 예능 기본기는 그녀가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서 활약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이제 그녀의 예능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쿤은 아름다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건 중요하다. 얼마 전 월드컵 특집으로 진행된 SBS 에서 이승기를 이전기로, 강호동을 강야동으로 바꿔 부르는 닉쿤의 이름 개그는 방송에 나온 자막 그대로 ‘닉쿤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사실 그는 MBC ‘몸몸몸’ 코너에서 다른 출연자가 망가질 동안 좋은 몸의 표본을 보여주거나 웃기기보단 진짜 섹시한 섹시 포즈를 보여줄 뿐, 특별한 예능 센스를 보여주진 못했다. 토크의 재미 역시 화술보다는 외국인 특유의 어색함이 더 부각된다. 하지만 그 어색함조차 귀엽게 들리게 만들며 자신의 예능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닉쿤이다. 아직 한국말이 서투르지만 그것조차 귀엽게 느껴지는 f(x)의 빅토리아와 MBC 에서 어색(하다 쓰고 ‘꺄악’이라 읽는)한 신혼 생활을 시작하는 건, 이제 이런 닉쿤만의 강점을 예능 안에서 극대화해서 활용하는 방안을 제작진들이 찾아냈다는 방증이 아닐까. 민호는 남자 아이돌 중 가장 예쁩니다. 민호는 지고는 못 삽니다. KBS ‘앗! 나의 진심’ 코너에서 나온 이 두 가지 질문은 민호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사실 그는 소녀시대의 윤아에게 “너 멋있는 척 그만하고 평소 하던 것처럼 하라”고 구박을 당할 정도로 개인기도 토크도 없이 과묵하게 그 잘생긴 얼굴만 카메라에 비출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잰 체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건 KBS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승부욕 때문이다. 매 게임마다 지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달리는 이 소년은 덕분에 순수한 진짜 남자애의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때문에 SBS 에 나온 여성 출연자가 멜로 연기를 보여주겠다며 입맞춤을 시도하자 덜덜 떨며 피하는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많은 아이돌이 ‘방송용’ 예능돌을 꿈꾸는 시대에 이 꾸밈없는 ‘샤이니’한 소년이 형과 누나에게 모두 사랑 받는 흔치 않은 예능 게스트가 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얼굴이 예쁘면 굳이 망가지지 않아도 주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코피를 흘리고 밤 11시에 혼자 늦은 저녁을 챙겨먹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여신’ 구하라는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망가짐의 미학을 실현하고 있다. KBS 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민낯으로 엉덩이춤을 췄고, “밭고랑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취재진을 향해 “이건 힘든 축에도 끼지 않는 농사일”이라며 부녀회장 포스를 풍겼다. 설사 유치개그처럼 2% 부족한 개인기로 차가운 반응을 얻더라도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완벽함보다는 성실한 태도로 일관했고, 그러한 끈질김은 결국 ‘한 방’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특히, KBS 에서 보여준 ‘하의 퀵체인지’는 애드리브에 능한 MC 유재석마저도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결국 대중들은 ‘예쁜’ 구하라가 아니라 ‘예쁘면서도 꾸준히 노력하는’ 구하라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예쁘다. 춤 잘 춘다. 애교 많다. 한마디로 움직이는 ‘짤방’ 생성기. 모두가 기를 쓰고 주목받으려고 노력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뭘 해도 눈에 띈다는 건 축복이다. 대신 부족한 언어 능력으로 인해 캐릭터의 매력이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 점에서 MBC 의 출연은 좋은 선택이다. 오랜 시간동안 그와 닉쿤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형식이나 개인 인터뷰 등을 통해 ‘별난 외국인’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당장은 화제를 모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와의 인터뷰에서 이기광은 “(비스트) 여섯 명 중에 제가 제일 안 웃긴 것 같아요” 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사실 ‘엄앵란’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거나 박명수보다는 오히려 이순재에 가깝게 들리는 성대모사 실력, 스물 한 살의 성인임에도 미취학 아동의 눈높이에 딱 맞는 멘트 구사 등 자타공인 무리수 개그는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요구되는 ‘예능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MBC 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태도로 외친 “팜므파탈 곱하기 백!”과 MBC 에서의 “어마 맘마”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던 것은 이기광 특유의 해맑음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였다. 최근 고정 멤버로 발탁된 MBC ‘뜨거운 형제들’에서 예능을 다큐로 받은 상황극보다 말이 필요 없는 미국춤이 대박을 친 것 또한 이기광의 약점과 강점을 뚜렷하게 대비시킨 사례들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부각시켜야 할 것은 악동 캐릭터보다 괜히 한 번 놀려먹고 싶은 백치미 소년 그 자체가 아닐까. 데뷔 초 엠블랙의 별명은 ‘시크돌’이었다. 그러나 예능 출연과 함께 시크함은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고 영화 의 청초한 소년이었던 이준은 KBS 에서 외모를 배반하는 발랄한 캐릭터와 깔창 공개, 댄스 도중 바지가 터지는 사고 등으로 프로그램에 예기치 못한 재미를 불어넣었다. MBC 에브리원 에서 ‘구구단의 블랙홀’로 활약하기도 한 이준은 KBS 를 통해 아이돌로서는 전무후무한 ‘근육바보’의 캐릭터를 구축하기도 했다. 최근 KBS 에서 소속사의 최대주주 겸 엠블랙의 프로듀서이자 이 날 함께 출연한 비에 대해 코믹하면서도 도를 지나치지 않은 폭로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은 “지훈이 형한테 혼나고 대중을 선택할 것인가, 대중한테 재미없고 지훈이 형한테 이쁨 받느냐” 사이에서 고민한 결과라는 고백은 그의 예능감이 단발적인 것이라기보다 방송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조권이 ‘깝’이라면 자신은 ‘갑’ 정도” 라고 평가하는 겸손함 이상으로 이준의 성장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 보인다. SBS E!TV 에 유키스가 나왔을 때, 동호는 홀로 출연하지 않았다. 물론 멤버 중 단독 스케줄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하여, 어쩌면 동호의 인터넷 프로필의 소속 란은 유키스보다는 ‘천하무적 야구단’으로 채우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이 소년이 부각된 건, 예능 센스보다는 열심히 뛰는 게 더욱 좋은 그림이 되는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급속도로 발전하는 야구 기량을 보여준 덕분이었고, 귀여운 막내 동생의 이미지 역시 형들의 장난으로 이하늘 앞에서 “사랑해요 이근배”라 말하는 모습을 통해 만들어졌으니. 가장 리얼한 야구 쇼를 통해 만들어진 그의 이미지는 덕분에 다른 예능에서도 일종의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가령 MBC every1 에서 일반인 여성 파트너와의 식사시간 중 한 마디도 안 하고 오직 밥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설정이 아닌 리얼한 캐릭터로 느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 가수 아닌 예능돌로서의 동호의 알파와 오메가는 ‘천하무적 야구단’이다. 이것은 무기인 동시에 한계다. 과연 이 귀여운 막내는 그 너머를 보여줄 수 있을까. “진짜 바보 아니면 진짜 천재일 거 같아요.” 티아라의 효민은 선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효민의 말처럼 KBS 에서 구구단을 틀리며 ‘백지 선화’가 된 것이 의도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땀에 양말이 젖어 ‘발습녀’ 굴욕을 당한 건 그저 우연일지 모른다. 하지만 에 게스트로 온 옥주현 앞에서 뮤지컬을 선보이며 스스로를 백지라 칭하며 ‘백지 선화’ 캐릭터를 십분 이용하는 건 분명 선화의 예능 능력이다. 덕분에 초보 예능인임에도 KBS 에서 “저도 얼굴에 많은 굴곡이 있다”며 성형에 따른 외모 그래프를 그린다거나, MBC every1 에서 엠블랙의 지오에게 “넌 내 거야”라며 갑자기 남자 파트너를 교체하고 판을 뒤집는 솔직하고 과감한 태도를 보여주는 게 가능하다. 무식해서 용감하진 않지만 어쨌든 용감하다. 그것은 이 예능돌의 전장을 헤쳐 나가는 제1 덕목이다.
글. 강명석 two@
글. 최지은 five@
글. 위근우 eight@
글. 이가온 thirteen@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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