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돌아오는 월드컵은 밤을 꼬박 새우며 해외축구를 보는 사람들과 그저 훈남 플레이어를 ‘수집’하기 위해 보는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시작 전부터 SBS 독점중계권과 관련된 뉴스가 연일 쏟아졌고, 수십 개의 월드컵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에너지는 축소되었고, 1994년부터 시작되었던 MBC ‘이경규가 간다’ 같은 대표 프로그램도 없었다. 한국이 사상 첫 원정 16강에 진출했지만 SBS는 독점중계권만큼의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했고, 타 방송국은 월드컵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들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KBS ‘남자의 자격’과 SBS 는 이경규를 가진 자와 중계권을 가진 자의 싸움이었다. 한국의 8강은 좌절되었지만, 아직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2010년 자블라니가 두 예능 프로그램에 미친 영향을 윤이나, 김교석 TV 평론가가 분석했다. / 편집자주
글. 김교석(TV평론가)
편집. 장경진 three@
대한민국은 7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무대에 진출했고, 이경규는 그 중 5회의 월드컵에 함께했다. 이경규의 방송인생이 위기 다음 월드컵으로 치고 올라가는 것의 반복이라던 이윤석의 말은, 과장이 섞였을지는 몰라도 거짓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MBC (이하 )의 ‘이경규가 간다’는, 이경규와 함께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한 KBS ‘남자의 자격’에게 있어 갈 길을 알려주는 지도이면서 동시에 비교될 수밖에 없는 걸림돌이다. 거기에 어떤 의미로든 월드컵 예능 자체를 상징하게 된 이경규의 존재가 빛이라면, 경기 영상 소스를 거의 사용할 수 없게 한 SBS의 독점 중계권 규정은 명백한 어둠이다. ‘남자의 자격’은 어쩌면 모두의 기억에 희미해져 버린 2006 독일 월드컵의 대한민국 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문제 속에서도 박지성만 믿고 가듯 이경규만 믿고 남아공행을 결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감동으로도 포장되지 않는 미완의 방송 │태극기는 휘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자격’은 ‘이경규가 간다’와 거의 차별화되지 않는 구성을 선택했다. 이경규와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남아공에 간다. 그리고 응원한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이경규는 더 이상 ‘경기장을 비출 수 있는 카메라’와 함께 가지 못한다. ‘남자의 자격’의 이경규 옆에는 언저리 해설자 조형기 대신 한준희 해설위원이 함께 있었지만, 화면 없는 중계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자, 월드컵을 가다’ 특집은 미완의 방송처럼 보였다. 이는 비단 경기 장면 사용과 관련해 독점 중계권자인 SBS와 마찰을 빚었던 1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 전이 방송 전날 밤늦은 시각에 끝났기 때문에 남아공 현지의 응원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어야만 했던 1화의 뒷부분은 2화에서 마치 재방송처럼 다시 편집되어 방영되었다. 그리고 3화에서는 아르헨티나 전부터 우루과이 전까지 세 경기가 한 번에 묶였다. 이러한 불균형은 월드컵 일정상 불가피한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조별 경기 일정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와 있는 것이고 중계권 문제도 예상된 것이다. 그럼에도 구성에 있어 큰 변화를 꾀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결정이다.
만약 ‘남자의 자격’이 정말로 “개성 만점의 다양한 중계를 들을 권리”를 보장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했어야 했다. ‘남자의 자격’은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도 아니고 뉴스도 아닌 예능이기 때문이다. 이미 수십 번은 반복해서 본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에 KBS의 해설을 입히는 것, 전국 각지의 응원 열기를 전하는 것이 예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아르헨티나 전의 참담한 패배에 눈물지으면서도 응원을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는 것,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러닝셔츠에 미리 써넣은 문구를 보여주며 열광적으로 앞장서 응원하는 이경규를 보는 것은 물론 감동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러한 감동의 크기는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3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김남일이 나이지리아 전에서 반칙을 범하던 그 순간, 하필이면 아내인 김보민 아나운서의 집에 찾아가 있던 카메라가 만든 장면이었던 것은 ‘남자의 자격’이 승리의 순간 ‘감동을 곱씹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응원‘만’하는 이경규는 재미없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러한 수많은 문제들 때문에 ‘남자의 자격’의 ‘남자, 월드컵을 가다’ 특집은 이전 ‘이경규가 간다’가 쌓아온 역사와 중첩되면서, ‘월드컵 예능’의 성장과 한계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콘텐츠가 되었다. 이 문제들의 원인이 프로그램 내부와 외부에 공존하고 있고, ‘남자의 자격’에는 예능이 남아공 월드컵을 다루면서 겪을 수 있었던 거의 모든 악재가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전 국민이 함께 탄식하고 함께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는 그 순간 그 원인이 되는 장면을 보여줄 수 없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전문적이면서도 신나는 해설을 하는 해설위원이 경기장에서 의자에 선수들 정보를 붙여놓고 응원도 중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응원만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2014년에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그때도 시청자들은 미완의 방송, 아니면 재방송을 시청해야 할까?
악재 속 ‘남자의 자격’의 고군분투는 어마어마한 전력차와 리스크를 안고도 근성과 오기로 덤벼드는 북한의 축구를 닮았다. 이런 모습은 브라질과 북한의 경기처럼 감동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축구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분명한 퇴보다. 이미 경기의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월드컵을 보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에 시청자의 ‘볼 권리’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2014년에도 이경규는 응원‘만’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브라질은 남아공보다 더 멀다.
글 윤이나
SBS 는 보다시피 이름부터 새롭지 않다. 물론 유명한 영화 제목을 가지고 온 이유가 익숙함이나 언어유희를 노리는 것이었을 수는 있겠다. 동명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애국, 웃음, 눈물, 민족 국가 등등의 정서로 가득하니까. 허나 등장하는 사람은 있지만 이야기는 없다. 목표는 있지만 체계적인 수단은 없다. 최초로 월드컵 단독중계를 획득해서 들뜨고 긴장한 까닭일까. 프로모션과 프로그램 사이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양새다.글. 윤이나(TV평론가)
국민을 상대로 벌인 프로모션 │태극기는 휘말렸다" />월드컵을 예능에서 보여주는 방식은 중계를 볼 때의 긴장감은 내려놓고 감동스럽거나 안타까운 순간을 웃음과 버무려 다시 돌이켜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는 이를 넘어서려고 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답게 실제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만나고, 그들에게 받은 사진들로 대형 태극기를 만드는 1차 미션과 이를 남아공으로 가지고 가서 경기장에서 펼치는 2차 미션을 통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만들려고 했다. 즉, 국민의 염원을 모아 월드컵 붐을 일으키고, 남아공까지 이어가고자 했다. 월드컵 전부터 사전제작하고 방영하면서 전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프로모션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염원이 담긴 태극기를 만들어서 남아공에서 펼친다’라는 너무나 명백한 코드를 갖고 있음은 물론 예능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전제작인데도 불구하고 어수선하다. 취지는 그럴듯한데 방송에서는 겹치지 않고 보여줄 화면이 많지가 않다. 월드컵을 하는데 독도에, 우주인 이소연 씨까지 찾아가는 것은 ‘애국’ 코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 보여줄 것이 마땅치 않아서 부리는 억지 같다. 땅끝 마을, 부산, 대전, 광주, 심지어 LA, 남아공 등등을 도는데, 출연진 자체도 중구난방인데다 전체적인 계획 내에 있다는 유기적인 느낌 대신 형편에 따라 진행되는 티가 너무 난다. 그러다보니 목표는 있으나,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희미해졌다. 박문성 해설위원과 황현희가 봉고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2002년 월드컵을 회상하거나, 이민성, 김병지, 박항서, 박창선 등등의 축구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장면이 10~20분은 훌쩍 넘긴다. 그 외에는 시민들을 만나서 태극기 제작에 필요한 사진을 찍는 게 전부다. 그 흔한 벌칙도 없고, 게임도 없고, 몇 명을 달성하려는 계획도 없다.
‘정사’도 ‘야사’도 사라져버린 현장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여러 응원 장소에서 온 국민이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준비한 것이 결국 한 가지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비극이 돼버렸다. 역시 연예인들을 남아공까지 파견해 응원열기를 고취시키려 했지만 교차 편집해서 보여준 화면에는 결국 아무런 내러티브 없는 장탄식과 환호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미 결과를 다 아는 경기를 중계화면과 같은 장면으로 다시 한 번 보여주면서 대화는커녕 한 문장도 안 되는 감탄사들로만 가득 찬 리액션을 쭉 지켜보는 것은 굉장한 인내를 요하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 ‘나이지리아전’ 경기는 예전 MBC 의 ‘이경규가 간다’ 공식을 도입했다. 유상철, 정찬우, 지상렬이 관중석에서 중계를 하고, 김남일 선수의 가족 등, 경기 자체가 인생과 맞물려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카메라를 비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남일이 실책하고 골을 내주었을 때부터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예능에서 스포츠를 다룰 때는 경기 그 외적인 부분을 부각시켜야 한다. 감동의 순간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중계화면과는 다른 지점과 각도에서 잡아내야 한다. 물론 웃음도 마찬가지다. ‘이경규가 간다’는 동네 호프집에서 입담 좋은 아저씨들이 펼치는 재치 넘치는 코멘터리를 관중석에서 하는 것으로 재미를 봤다. 매우 편파적이지만 재치 있는 입담을 들려주고, 중계 화면으로는 잡히지 않는 장면들을 관중석에서 잡은 카메라로 보여주면서 그 때 그 상황을 실감나게 재현하는 것이다. 이는 방송 중계가 ‘정사’라면 ‘야사’와 같다. 매우 즉자적인 반응 속에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교류하는 유희다. 다시 말해 낄낄거리며 노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눈물이 보이니 감동도 피어나는 것이다. 는 이러한 색다르게 보여주기라는 고민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국민의 얼굴로 태극기를 만든다는 취지는 거대하고 좋았지만 방송사의 프로모션이 아닌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으로써 인정받기에 보여준 것이 너무나 없다. 관중석에 있든 한강에 있든, 숙소에 있든, 시청 앞에 있든, 응원하는 연예인의 콜라주만으로는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있었는데 무엇을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프로그램과 프로모션 사이에서 는 휘말렸다.
글 김교석
글. 김교석(TV평론가)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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