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국민 요정’, ‘국민 여동생’ 같은 수식어를 슬쩍 붙여 본다면 아마도 김현숙은 ‘국민 언니’, ‘국민 딸’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2005년 KBS 에서 신들린 연기로 시청자를 압도했던 ‘출산드라’는 662만 관객이 본 영화 에서 주인공 한나(김아중)의 거칠지만 속 깊은 친구 정민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방송된 tvN 는 그에게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평범하고 친근한 여주인공 이영애라는 캐릭터를 선사했다. 2녀 1남의 장녀, 전 직원 합쳐 열 명이 채 안 되는 광고 회사 디자이너, 유난히 ‘당당한’ 체격으로 주위의 놀림과 “제발 시집 좀 가라 이년아~”라는 엄마의 구박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막돼먹은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삼십 대 직장인 이영애는 김현숙의 리얼한 연기를 통해 우리 곁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처럼 생생히 살아났다.

“제 외모가 평범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사실 어릴 때부터 끼가 많다, 재주가 좋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인물이 좋으니 연기자가 되라는 말을 들은 적은 없거든요. (웃음) 살면서도 그렇게 대우를 잘 받는 편이 못 됐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돼요.” 케이블 드라마, 그것도 시즌제 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물게 출연진과 제작진의 변동이 거의 없었던 에 4년째 출연하면서 김현숙은 이영애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고 말한다. “일상생활 자체가 김현숙보다는 이영애로 살게 될 수밖에 없어요. 살을 빼는 것도 힘들지만 이 몸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때로는 굶고 싶은데 끼니를 거르면 안 될 것 같고. 하하하!”

그러나 속 이영애가 알고 보면 속 깊고 정 많은 캐릭터이듯 김현숙의 화통한 말투와 농담의 바탕에는 연기와 인생에 대한 성실한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홀어머니 아래서 자라며 육성회비가 없어 고민했던 적도 있고,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재수를 했다. 열두 시간 내내 주방에 서서 순대를 썰다가 서러움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사람이 돈이 있는데 운동 삼아 걷는 것과 차비가 없어서 걸어가는 게 하늘과 땅 차이란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저한테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서럽고 힘든 날 함께 소주 한 잔하고 싶은 언니 같은 배우, 김현숙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을 추천했다.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1. 故 김광석의
“고등학교 때 ‘거리에서’를 듣고 김광석 씨를 처음 알게 됐어요. 고향이 부산인데 커서 서울 가면 꼭 라이브 콘서트를 볼 거라고 다짐했죠. 그런데 제가 고 2때 김광석 씨가 돌아가신 거예요. 역시 김광석 씨의 팬이었던 친구랑 울면서 처음으로 서울에 살지 못한 걸 아쉬워했어요.” 김현숙의 표현대로 “통기타 하나와 목소리만으로 공기를 꽉 채우는 듯한” 김광석의 4집 는 90년대 포크 록의 대표적 명반으로 손꼽힌다.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비롯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등 서정성 가득한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요즘 같은 날씨와는 상반되지만 계절을 막론하고 사랑에 아픔을 느끼신 분들에게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추천해요. 표현의 방법이 조금 우울할 뿐이지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희망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거든요.”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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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故 유재하의
“제가 중학교 다닐 때는 CD보다는 카세트테이프가 대세였는데 친구가 생일 선물로 이 앨범을 선물했어요. 곡 하나하나가 정말 아름다운데 막상 불러보면 너무 어렵거든요. 그런데 유재하 씨는 그걸 그냥 편안하고 덤덤하게 불렀기 때문에 그 감정들이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1987년 발매된 유재하의 1집 는 같은 해 그가 스물다섯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되었지만 앨범에 수록된 ‘가리워진 길’, ‘사랑하기 때문에’, ‘우울한 편지’ 등의 수많은 곡들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 “요즘에는 노래 가사도 ‘내가 널 사랑해! 왜 내 전화 안 받아!’ 하는 식으로 감정을 빠르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 시절의 음악들은 창법이나 음색 자체도 그렇고 ‘우울한 편지’ 같은 곡에서는 특히 감정을 조심스럽게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더 공감이 가요.”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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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故 김현식의 < KIM HYUN SIK VOL. 6 >
“어쩌다 보니 계속 일찍 돌아가신 분들의 음악만 고르게 되네요. 하지만 이 세 뮤지션의 공통점은, 창법은 각각 다르지만 음성에서 ‘소울’이 느껴진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음악가든 작가든 창작의 고통이 깊을수록 대중에게 훨씬 큰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현식 씨의 노래들도 뭔가를 강요하지는 않지만 정말 고민했다는 흔적, 허투루 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곡들은 절대 불법 다운로드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웃음)” 1991년, 간경화로 입원해 있던 김현식은 병원을 탈출해 노래를 부르고 녹음에 참여했지만 이 앨범이 발매되기 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앨범에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비극의 그림자만이 담긴 것은 아니다. “제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추억 만들기’는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 있는 노래 같아요. 아련하고 가슴 한쪽이 저릿하면서도 멜로디는 따뜻하거든요.”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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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활의
“실제 나이보다 조금 윗세대 노래를 좋아해요. 오빠가 음악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는데 부활은 정말 최고였죠. 그 당시에는 트로트 같은 전통가요나 발라드가 주를 이뤘는데 이 앨범을 듣고 정말 감동했어요. 김태원 씨가 열아홉 살 때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정말 천재이셨던 것 같아요.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담겨 있잖아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버금가는 명곡이라고 생각해요.” 1986년 발매되어 완성도와 대중적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았던 부활의 데뷔 앨범 에서는 당시 소녀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승철의 앳되면서도 파워풀한 보컬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민 할매’ 김태원의 화려한 기타 속주 테크닉은 그가 보여주는 자부심의 원천을 짐작하게 한다.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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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용필의
“어릴 땐 조용필 씨의 위대함을 몰랐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 뮤지션인지 알게 됐죠. 그 시대 다른 대중가요와의 차별성, 창의력, 보컬 등 모든 것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처음에 들었던 노래는 ‘허공’이었고 질풍노도의 시기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심취했죠.”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말이 이보다 적절할 수 있을까. 1969년 데뷔 이래 정규 앨범만 18장을 발표하며 ‘가왕(歌王)’의 자리를 지켜 온 조용필의 셀 수 없이 많은 곡 가운데 김현숙은 15집 에 수록된 ‘끝없는 날개짓 하늘로’를 어렵게 골랐다. “가사부터 예술이에요. ‘무엇을 찾기 위해 나 여기에 / 잡으려 했던 꿈은 또 어디에 / 수없이 헤메였던 환상 속에 키보다 높은 꿈은 무뎌지고 / 철없음으로 얼룩진 나날들 시간 속에 묻혀지겠지 / 과거는 추억으로 빛날 때 아름답기 때문에’ …진짜 철학적이면서도 희망적이잖아요?”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김현숙│절망 속에서 희망을 들려주었던 노래들
김현숙은 또다시 시즌 7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새 시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자상한 선배와 동갑내기 친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 영애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단은 시즌 7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잘 해내고 싶어요. 또 처음 연기를 시작했던 연극 무대에도 다시 서고 싶고, 좋은 영화도 하나 할 수 있으면 행복하겠죠. 스릴러물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누가 ‘한국판 미저리?’ 라고 하던데. 하하!” 구질구질하고 팍팍한 일상 속에서 “그래도 사는 건 디지게 재밌지 않냐”며 맥주 캔을 따서 내밀어 줄 것 같은 영애씨와 김현숙의 모습이 겹쳐진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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