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홍태성이라는 이름을 공유했던 두 남자의 삶은 따로따로 불행하다. 홍 회장의 아들이 아님이 밝혀져 쫓겨난 건욱(김남길)은 모네(정소민)와 태라(오연수)를 유혹해 모두를 파멸시키고 싶어 하고 홍 회장의 아들임에도 서자라는 이유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태성(김재욱)은 불안과 외로움 속에 살아간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동물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건욱 역 김남길과, 충동적이고 자기파괴적이지만 상처받기 쉬운 내면을 지닌 태성 역 김재욱의 서로 다른 매력은 SBS 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6월 14일,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중계로 한 주 결방을 앞두고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현장공개에서 이들을 만났다.“수염을 좀 좀 짧게 깎을까 생각 중” MBC 에서는 사랑을 얻지 못했는데 에서는 세 여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캐릭터다. 기분이 어떤가.
김남길 : 그런데 건욱은 사랑을 얻길 원하는 건 아니다. (웃음) 아직 사랑이라고 하기보다는 목적에 의해 행동하는 거고, 나중에 그에 대한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지금은 사랑을 느낀다기보다는 그들의 순수성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네, 재인, 태라의 색깔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른 작품을 찍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게 배울 점이 많아 좋다. 모네는 어리면서 천진난만한 느낌이고, 재인은 속물이면서 개인적인 아픔도 있지만 건욱이 더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물이다. 태라는 그렇게 강하고 견고했던 여자가 아이와 가정을 조금씩 버릴 수 있을 만큼 유혹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경우보다 좀 더 관능적이고 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느낌이 있다.
유혹하는 연기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신이 있는지.
김남길 : 태라에게 “첫 사랑 해보셨어요?”라고 묻는 신이 있다. 사랑에 대해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나 감정을 가져본 적 있냐는 식으로. 그런 신이 기억에 남는 이유가 있다. 의 (고)현정이 누나 같은 경우는 리액션이 굉장히 센 편인데 연수 누나는 소프트한 것 같으면서도 섬세한 리액션을 보여준다. 코끝이나 눈의 움직임, 고개 돌림이나 시선 피하는 것 등으로 그 사람이 부끄러워한다든가 혹은 내가 하는 행동을 수긍하고 있다든가 하는 것들을 작게 작게 표현해주신다. 그래서 건욱이 태라 앞에서는 신이 나서, 속된 말로 ‘잡아 먹어 버리겠다’는 심정이고 더 세게 붙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건욱의 비주얼적인 면에서 콧수염과 빵모자가 인상적인데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인가.
김남길 : 모자는 감독님이 좋아하시는 설정이었다. 혼자 있을 때의 느낌을 살리고 표정을 숨긴 채 크게 드러내지 않을 때 눈만으로 감정을 전달해 보자는 생각이셨다. 건욱에게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캡 모자를 쓸 수는 없었고. (웃음) 수염은, 후반부에 수염이 있게 나왔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비담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을 바에는 ‘현대적인 비담’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대중들이 열광했던 모습을 가져오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서른한 살인데 수염을 깎으면 좀 어려 보이는 것 같아서 태라와 함께 있을 때는 실제보다 좀 더 나이 들고 중후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9, 10부 정도를 찍고 있으니까 건욱이 복수에 대해 더 나빠지고 차가워지려면 외형적인 모습의 변화도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아서 좀 짧게 깎을까 생각 중이다.
“가족들은 가 더 재밌다던데” 재인, 태라와 각각 키스신을 찍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꼈나?
김남길 : 재인이 하고는 키스신이라기보다는 입 맞추고 떨어지는 느낌 정도다. 신 자체가 이 사람이 아픈 걸 보고 안쓰러워서 안아주고 싶어 한 거라 설레고 조심스럽고, ‘이 감정을 표현해도 될까.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럴까’ 하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태라와는 의도적인 키스신이고 관능적으로 섹스어필한 느낌이라 굉장히 달랐다. 나쁘게 말해 ‘잡아 먹어 버려야지. 타락하게. 무너뜨려버려야지. 정말로 헤어날 수 없게, 니가 이래도 나한테 안 넘어오나 보자’ 라는 거다. (웃음)
지난 주 KBS 가 방송을 시작했고, 다음 주에는 MBC 도 시작된다.
김남길 : 정성모 선배가 나와서 어제 를 봤다. 구성이나 대본도 좋고, 연출이나 영상도 그렇고, 선생님들이 워낙 연기를 잘 하시니까 몰입도도 좋고. 심지어 우리 가족들은 가 더 재밌다던데! (웃음) 그리고 은 지금 천안함이나 북한 문제로 불안한 시기고, 한국전쟁 60주년에 대해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아픔인 한국전쟁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궁금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가진 사랑이나 우정을 보게 될 것 같다. 아, 말하고 있으니 내가 출연진 같다. (웃음) 는 지금까지 펼쳐놓은 많은 것들로부터 건욱이 여자 캐릭터들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처절하게 밟아주는지, 심도 있고 깊이 있는 복수를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아픔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주면 될 것 같다.
이번 주 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중계로 결방된다. 혹시 지난 토요일 그리스전 경기를 봤나.
김남길 : 봤다. 웃을 수만도 없고 울 수만도 없고. (웃음) 그 날은 다른 월드컵 경기 때와 달리 이상하게 떨리지가 않았다. 처음 골 넣었을 때 “와아~”하는 함성 소리로 우리 동네 주위가 전쟁 난 것 같았는데 나는 “앗!” 하고 박수만 몇 번 치면서… ‘잘 하긴 하는데 이렇게 16강까지 계속 가면 결방을 한 번 더 해야 되는데…’ 하고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가 그냥 깨끗하게 내려놓기로 했다. (웃음) 드라마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다음 회가 궁금해지게 잘 만들면 결방을 한다 해도 많이 보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많은 분들이 웃을 수 있는 일도 없고 하니까 월드컵이 그런 면에서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닌가 싶어 국민의 입장에선 좋다.
“재벌 2세를 비주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고민했다” 초반, 애인이 죽은 장소에 찾아가 우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얼굴을 완전히 일그러뜨리는 모습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못생겨 보이게 우는 연기’ 라는 반응도 있었는데 그래서 감정이 더 직접적으로 전달된 것 같다. 찍으면서는 어땠나.
김재욱 : 그 전까지 태성이의 폭력적이고 어른스럽지 않은 행동들이 인물의 전반적인 성향을 보여줬다면 그 신 하나로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었기 때문에 좀 더 부담이 됐다. 하지만 리허설을 하면 오히려 가장 좋은 감정을 놓칠 수 있을 것 같아서 리허설 없이 임했는데 사실 나도 내가 그런 얼굴로 울 줄은 몰랐다. 그리고 울다가 무릎을 꿇을 줄도 몰랐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어서 촬영이나 조명 스태프들이 순간적으로 많이 당황했을 거다. 힘들었을 텐데 잘 잡아줘서 감사한 마음이다. 그 신을 찍으면서 아팠다. 무릎도 아팠고. (웃음)
4, 5회에서 일본어 대사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어릴 때 일본에서 살았다던데 그 후에도 계속 공부했는지.
김재욱 : 아주 어릴 때 가서 일곱 살 때 한국에 돌아왔는데 그 때까지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다. 일본어는 제일 처음 배운 언어여서 그런지 잊어버리지 않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많이 사용한 건 아닌데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는 지금도 집에서 가족끼리는 일어로 한다. 그래서 귀는 열려있었지만 고등학교 때 일본인이나 재일교포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말을 하고 싶은데 잘 안 나왔다. 그 친구들하고 계속 어울리고 노력도 하다 보니 이십대 초반쯤부턴 다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발음이 남아 있는 게 제일 큰 것 같다.
단발에 5대 5 가르마 헤어스타일이 독특하다. 어떻게 설정한 건가.
김재욱 : 재벌 2세라는 태성의 배경을 비주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의상이나 동선도 그렇지만 헤어스타일이 많이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5대 5 가르마는 우리나라 일반적인 남자들이 거의 안 하는 스타일이고 많이 본 것 같지만 절대로 하지 않는 머리라서 잘 소화하면 고급스러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직 배우들도 많이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먼저 해보고자 하는 욕심에 시도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긴 한데 그걸 감수하겠다고 고집을 많이 부린 거다. 욕도 많이 먹었다. (웃음) 내 주위에는 별로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다.
“표정이나 옷, 헤어스타일도 캐릭터를 표현” 그 밖에도 재벌 2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
김재욱 : 1차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신경을 썼지만 다른 면에서 공부한 부분은 솔직히 없다.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어도 정말 작은 차이, 소재나 행커치프 하나에서 그 사람이 고급스러워 보이고 그렇지 않고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촬영에 임하기 전부터 스타일리스트와 많이 상의를 했다.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연기를 잘 하고 충실한 건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건데 그 사람 표정이나 옷, 헤어스타일도 1차적으로 그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패션 쪽 일도 하던 사람이다 보니 그런 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태성은 굉장히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인물인데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얘는 정말 돌아이구나’ 라고 생각되었던 신이 있었나.
김재욱 : 그런 신은 없었다. 오히려 태성의 감성이나 행동을 증폭시키고 싶었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할 때도 뭔가 더 하는 걸 요구했고 태성이 한 순간 무너져버리는 부분에서도 조금 더 극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트에서 재인에게 뺨을 맞은 뒤에 바닥에 쓰러져서 무너져 버리는 것도 현장에서 감독님과 상의해서 만들어낸 부분이었다. 아직까지는 건욱과 태성, 두 남자의 색깔이나 특징을 대비시켜 보여주면 보는 분들이 더 편하실 것 같다. 건욱이 지금까지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을 태성이 보여드리면 서로의 매력이 더 확실해지지 않을까 해서 고민하는 것도 있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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