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이러다 국민밉상 되는 거 아니야?
SBS 이러다 국민밉상 되는 거 아니야?
지난 주말엔 월드컵 경기 보느라 신났겠네? 한국이 첫 승도 하고.
신나기도 하고, 조금 짜증도 나고.

왜, 비가 와서?
비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집에서 맥주 마시면서 보는데. 오히려 날씨가 간만에 선선해서 편히 TV 보긴 좋았지.

그럼, 뭐가 짜증나.
월드컵 중계 중에 벌어진 몇 개 실수들 때문에 조금씩 짜증나기 시작하다가 KBS ‘남자의 자격’ 보고 짜증 지수가 확 올랐던 거 같아. 너도 봤어?

응, 나도 보긴 했어. 경기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응원하는 모습 위주로 보여주니까 좀 이상하긴 하더라. 그런데 잠깐씩 경기 장면이 나오긴 하던데? 그래도 괜찮을까?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는데 SBS에선 괜찮지 않다는 입장으로 나오나 보더라고. 자기네는 2분여의 경기 영상을 뉴스에서만 쓸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걸 어겼으니 중계권 위반이라고. 여기에 대해서 KBS는 경기 영상 활용과 관련한 합의서에 ‘뉴스 외 사용불가’라는 규정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야.

그럼 누가 잘못한 건진 아직 모르는 거네?
법적인 문제로는 그렇지. 하지만 내가 짜증나는 건, 그렇게 법대로 하자는 태도 때문에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의 과정이 생략된다는 거야. SBS의 월드컵 중계권 단독 구매부터가 그래. SBS는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KBS는 형사 고소를 했는데, 이런 법적 다툼보다 중요한 건, 이 과정이 과연 시청자의 권리를 위한 방향으로 진행됐느냐는 거야.
SBS 이러다 국민밉상 되는 거 아니야?
SBS 이러다 국민밉상 되는 거 아니야?
시청자야 시청자의 권리가 중요하겠지만 어차피 더 많은 돈을 낸 쪽이 중계권을 얻은 거잖아. 그걸 자기네가 알아서 행사하는 거고.
그렇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중계권 협상을 단독으로 시도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시청자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느냐는 거야. 저번에 내가 가르쳐준 것처럼 월드컵을 중계할 권리를 얻으려면 국민 90%가 월드컵을 시청할 수 있는 보편적 접근권이 확보되어야 해. 최근까지 이 90%라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느냐로 SBS가 KBS와 다투는 것도 그래서고. 단적으로 말해 월드컵 단독 중계를 통해 SBS가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건, 시청자의 권리를 위해서라는 명분 덕분이야.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나를 비롯한 시청자들은 SBS가 중계권을 소유했으니 그걸 어떻게 행사하던 문제가 없다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 이름을 팔아 단독 중계를 하는 SBS에 대해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SBS는 그런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런데 그렇게 단독 중계를 확정 지은 SBS의 현재 행태는 이것과 거리가 먼 것 같네.

그게 이번 ‘남자의 자격’ 문제에서 보인다는 거지?
내 생각은 그래. 그래, 이건 철저히 내 의견이라는 걸 전제하고 말할게. 아까 말한 것처럼 SBS는 ‘우리가 중계권을 가졌으니 입 다물고 해주는 대로 보라’고 말할 입장이라기보다는, ‘단독으로 중계하지만 공동 중계 못지않게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겠습니다’라고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게 맞아. 그리고 단독 중계를 공표하던 SBS의 표면적 태도 역시 그랬고. 그렇다면, 연초부터 월드컵에 가겠노라 공표했고, 많은 시청자들이 제 2의 ‘이경규가 간다’를 기대했던 ‘남자의 자격’에 대해 2분 정도의 경기 영상을 허용하는 것을 좀 더 긍정적으로 검토해도 되지 않았을까. 꼭 ‘남자의 자격’ 측이 옳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 무조건 중계권 타령만 하기보다는 단독 중계 안에서 어떡하면 시청자들이 더 즐겁게 월드컵을 즐길 수 있을지 방송 3사가 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거야.

그건 그렇지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 또 어떤 사람들은 경기를 보는 것에만 만족할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게 따지면 한국 대 그리스 전이 끝나고서 한국 팀 주장인 박지성 인터뷰를 시도하다 음향 문제 때문에 인터뷰를 포기했던 것들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이런 실수는 지엽적인 거라고 봐. 결국 그 모든 문제는 단독 중계의 과실만 중요하게 여기고 그에 따른 책임감에는 소홀한 태도에서 나오는 거겠지. 가령 김병지의 해설만 해도 그래. 솔직히 김병지의 해설은 선수 출신 초보 해설자의 그것치고는 상당히 재밌었어. 나이지리아 골키퍼의 선방에 대해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막은 것의 중요성을 언급한 건 오직 그였기에 가능한 거였지.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결과적 차원이 아니라, 박문성, 장지현 같은 검증된 해설진이 있음에도 당장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수 출신 초보 해설자를 별다른 고민 없이 데려오는 과정에 있다고 봐.

너 뭔가 되게 분노하는 거 같다.
내가 웬만하면 한국이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첫 승도 거뒀겠다, 그냥 축제 분위기를 더해 스페인의 알론소나 브라질의 카카 같은 훈남 축구 선수 얘기나 하려고 했었거든? 아니면 나이지리아 전에서 본 메시의 위대함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그런데 SBS가 다른 언론의 거리 응원 취재를 제한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는 참을 수가 없더라.

아, 그건 좀 심하긴 한 것 같더라. 그런데 그건 SBS 잘못이라기보다는 진행요원들이 잘 이해를 못해서 그런 거라며.
축구 경기에서 감독의 전술적 지시를 선수가 잘 이해 못했으면 그게 온전히 선수 잘못이야? 선수에게 작전을 이해시키는 것도 감독의 역량과 책임이라고. 일부 진행 요원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미숙하게 대응했다 해도 SBS의 책임은 분명 있다는 거지. 그리고 진행 요원이 그냥 ‘우리는 아는 게 없다’고 했으면 모르겠는데, “SBS만 중계권이 있어 모든 방송은 일절 안 되고 사진촬영도 안 된다. 위에서 전달받은 사항”이라고 말한 건 좀 찜찜한 구석이 있어. 월드컵 개막 전, 이벤트 행사장과 레스토랑에 월드컵 중계권을 사야 TV로 경기를 보는데 문제가 없다는 공문을 보내놓고선, 사람들이 반발하자 FIFA의 감시 때문에 미리 유의하라고 말한 것뿐 월드컵은 즐겁게 같이 즐기자고 하던 그 태도랑 다를 게 뭐가 있어.

그러고 보면 시청자 게시판도 폐쇄했다며.
응, 메인 홈페이지에 있는 시청자 게시판을 폐쇄한 상태야. 소통의 창구는 꽉 닫고선, 뭐가 문제만 되면 그 때 돼서야 오해였다고 발뺌하는 거, 사실 이제 너무 익숙해서 지긋지긋하지 않아? 어쩜 그렇게 콤비 플레이로 주말부터 이어진 짜증을 월요일 아침에 폭발시켜주는 지 원.

아, 그것도 있었구나. 이래저래 짜증날 일이 많았겠다.
그럼. 절대 혼자 월드컵 보며 닭강정을 먹어서 그런 건 아니야.

글. 위근우 eight@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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