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이란 말이 한동안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여배우라는 위치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이 남자 배우와도, 평범하게 사는 다른 여성들과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여가수로 산다는 것’도 그리 평범한 일은 아니다. 2010년 한국에서 여가수가 메이저 신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10대 시절 기획사에 들어가 걸그룹 멤버가 되거나, 섹시 콘셉트의 여가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면 가창력을 앞세운 소수의 ‘디바형 가수’로 인정받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여가수들은 모두 서른 즈음에 달라진 대중의 반응과 남은 인생에 대한 고민에 접어든다. 3일 동안 이어진 뮤지션들의 이야기의 마지막 손님인 거미가 여성 뮤지션으로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반 잘 듣고 있다. 이번 앨범 좋더라.
거미 : 고맙다. 어떤 점이 좋았나? (웃음)

당신은 발라드도 잘 부르지만 더 비트있고 트렌디한 음악을 잘할 것 같았다. ‘미안해요’부터 당신의 새로운 스타일을 찾은 것 같다. ‘거미 2기’ 같다. (웃음)
거미 : 맞다. 항상 하고 싶었던 게 힙합에 멜로디컬한 음악을 하는 거였다. 그래서 계속 연구를 했다. 전에도 앨범 전체는 아니어도 이런 스타일을 조금씩 했었고. 예전의 발라드 곡들은 고음이 많아서 라이브 할 때 컨디션이 안 좋으면 힘들었는데, 이제는 노래 부를 때도 편해졌다.

“내 음악이 너무 어렵다더라”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이런 변화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
거미 : 앨범을 내면서 창법이 조금 달라졌었다. 음악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미안해요’를 하기 전에 내가 항상 고민했던 게 대중들이 내 음악을 어려워한다는 거였다. 3집의 ‘아니’나 ‘어른아이’ 같은 곡이 너무 어렵다는 거다.

따라 부르기만 해도 노래 잘 부르는 걸로 인증되는? (웃음)
거미 : 그렇다. ‘기억상실’도 어려웠는데 더 어려워졌다고. 그러면서 점점 내 색깔이 너무 굳어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았다. 그러면 마니아가 생기긴 하지만 점점 대중성을 잃어갈 수밖에 없으니까. 엄마 친구들도 노래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하시더라. (웃음) 나 스스로도 부르기 힘든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 알고 했던 음악들이 점점 거부감을 일으킨 거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들은 그게 오히려 고민이겠더라. 처음에는 노래 잘 부른다고 좋아하지만 3집, 4집 가면 그 음악을 계속하자니 질린다거나 어렵다고 하고. 변신하자니 두렵고.
거미 : 정말 많이 고민한다. 내게 가창력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것도 힘들고. 같은 뮤지션들이 보기에도 자존심 상하지 않는 음악이 뭘까 찾는 것도 힘들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있는데, 그건 누가 뭐라건 무시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라서’도 예전 같으면 못 불렀을 것 같다. 사람들이 이 노래를 너무 쉽게 생각할 거라고 걱정 했을 테니까. 그런데 이제는 내가 재밌어 하는 음악을 하자는 생각을 하니까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Because of you’가 그 중간점을 찾으려고 한 노래 같다. 앨범의 분위기는 유지하면서 어디서 보컬을 터뜨려야 할지에 대해.
거미 : 편곡을 많이 신경 썼다. 편곡을 옛날처럼 하면 옛날 곡하고 비슷해질 거니까. 그래서 전주도 빼면서 최대한 가볍게 하는데 주력했다. 그래선지 이번에도 ‘Because of you’처럼 더 힘이 들어간 노래부터 반응이 오기는 했다. 그게 나에게 가창력을 요구하는 분들이 원하는 곡 같고, 다른 분들은 앨범의 다른 곡들을 들어주시는 것 같다.

단지 보컬을 지르느냐 마느냐도 달라졌지만, 정서적으로 더 관조적인 느낌이다. 꼭 한 발 떨어져서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것 같다.
거미 : 그런 느낌은 늘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이 원하는 내 이미지는 항상 애절하고 슬플 때 절규해주는 그런 거였던 것 같아서 보여주지 못했다. 발라드 중에서 내 히트곡도 좋아하지만 리메이크했던 ‘님은 먼 곳에’를 더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굉장히 지쳤고, 내가 안 그런 사람인데 여러 사람의 시선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이제 왜 이렇게 힘든 음악만 하냐는 말까지 들으니까 이것만 고집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보컬이나 멜로디도 바뀐 건가. ‘미안해요’만 해도 대중적인 후렴구가 부각됐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전보다 더 쭉 흘러가듯 편한 멜로디를 선호한 것 같다.
거미 : 의도적인 건 아니었는데, 부르고 나면 그렇게 나오더라. 그래서 사람들은 곡이 편하게 들리니까 너무 쉽게 간 거 아니냐고 했다고도 하더라. (웃음)

불러보면 어려울 텐데. (웃음)
거미 : 맞다. 되게 어렵다고. (웃음) 기교나 느낌을 표현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앨범은 그런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남자라서’는 고민이 있었던 게, 노래 속의 여자는 사랑에 집착하는 심정이 담겨 있는데, 나는 그런 편이 아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가사에 다 공감하더라. 그래서 어쨌건 해야 했다. (웃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게다가 지르는 노래가 아니라서 만족 못한다는 분들도 많고. 나와 사람들의 반응 사이에서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에는 방송 안하고 쉬는 날이면 허전해진다”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사랑은 없다’는 좀 더 마음대로 불렀나? (웃음) 보컬을 최대한 절제 하고, 소리는 가볍지만 힘은 그대로 유지해야 해서 부르기는 더 어려웠을 것 같다. 반대로 듣기는 편하고.
거미 : 그렇다. 녹음할 때 ‘사랑은 없다’를 제일 정교하게 녹음했다. 녹음하면서 기가 빠졌는데, 듣는 사람은 편하니까 잘 모르는 것 같다. (웃음) 목은 안 힘들었지만 표현을 정교하게 하느라 힘들었다. 내가 계속 녹음하려면 스태프들이 이 에너지를 길게 가져가야 한다면서 쉬었다가 이틀에 나눠서 가자고 했고. 오히려 부르기는 ‘Because of you’가 쉬웠다. 라이브로 할 때는 너무 키가 높아서 더 힘들긴 하지만. (웃음) 그래도 딱 내 옷을 입은 것 같아서 좋았고, 기존에 많이 안했던 거라 재미있었다. 새로운 걸 표현하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디테일하게 신경 쓰고, 음악적 일관성을 생각할수록 곡의 프로듀서들과도 더 많은 얘기를 할 텐데.
거미 : 프로듀싱은 항상 관심을 갖는다. 누가 곡을 써주면 그걸 녹음하는 게 다가 아니니까. 상의도 계속 하고 프로듀싱도 같이 하면서 곡을 만들어 나간다.

프로듀서에게 주로 어떤 주문을 했나.
거미 : 앨범의 분위기는 나중에 편곡을 만들 때 일관되게 만들었고, 그 전에는 좋아하는 음악들이나 무대그림을 설명해주고 같이 만든다. 우선 먼저 노래를 불러본다. 가수가 불러봐야 내 색깔이 나오니까. 그래서 나는 가이드 보컬을 내가 제일 먼저 떠본다. 같이 작업한 사람들이 나와 오래한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걸 잘 안다. 대신 그 안에서 좋은 곡을 만들기 힘들었을 거다. ‘사랑은 없다’를 쓴 친구는 속병도 걸렸다. (웃음)

테디 같은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뮤지션과 함께 작업하기는 어땠나.
거미 : 다르긴 하다. 아무래도 나는 YG에 있었어도 발라드를 해서 외부에서 작업을 많이 했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많이 한 건 이전 앨범부터였고. 바깥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YG 가수들처럼 회사 안에서 놀듯이 작업하면서 곡을 만든 것도 아니었고. 이번에 테디 오빠하고 작업하면서 얘기를 많이 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서로 어려워하는 것도 있었다.

가요계 위치나 YG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위치가 참 독특한 것 같다. (웃음) 어디든 딱 중간쯤?
거미 : 맞다. 그래서 좀 피곤하다. (웃음)

그런 위치이기 때문에 고민이 더 많을 것 같다. 당신 같은 위치에 있는 또래 보컬리스트들은 자신의 현재에 대해 고민이 많지 않나?
거미 : 음악을 할수록 각자의 색깔이 생겨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대중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으니까. 어떤 친구는 지금까지 해온 음악이 꾸준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질려 할까봐 고민하고, 나는 어떻게 변화를 할지 고민하고. 그리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돌 문화가 강해져서 우리가 어떻게 자리를 잡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고. 요즘에는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방송 순서만 봐도 인기의 흐름이 보이지 않나. 오프닝이 누군지, 엔딩이 누군지. 그걸 시청자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리허설에서 큐시트만 봐도 가수들이 감정이 상할 때가 많다. 나도 저번 앨범에도 그랬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더 그런 걸 느낀다. 사람들은 가수의 실력보다 그 순서로만 가수들을 바라보려고 하기도 하고. 그런 게 서글퍼진다.

요즘은 걸그룹이 워낙 시장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겠다.
거미 : 그래서 다들 좀 우울해지는 것 같다. 다들 우울해 한다. 평소에는 연락 많이 안하던 남자 가수들도 연락 좀 하고 살자 이러고. (웃음)

요즘 어린 친구들이 활동하는 걸 보면 어떤가.
거미 : 일단 그 친구들의 실력이 놀랍다. 전에는 아무리 연습해도 그 나이에 그렇게 선배들의 실력을 따라오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벌써 사회생활을 하는 게 많이 걱정된다. 나는 평범한 생활을 한 뒤에 음악 활동을 해도 고민이 많은데 그 친구들은 우리보다 더 빠른 시기에 그런 고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 세상 물정을 빨리 알았으니까. 시련이 닥쳐왔을 때 이겨내는 방법을 모를 수도 있고. 요즘에는 방송 안하고 쉬는 날이면 허전해지고.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이 앨범을 무엇 때문에 만들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힘들지만 노래를 하는 게 좋아서 견딘다”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거미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생활이 점점 담담해지는 것도 있겠다.
거미 : 그렇다. 달라지는 게 없다. 일 없으면 회사에서 운동하고, 레슨 받고. 영어 배우고 일어 배우고. 술도 요즘에는 공식적인 자리 아니면 거의 안 마시고.

담담해진 일상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나. 이번 노래는 다 흘러 보내는 것 같기도 하던데.
거미 :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지, 어떻게 해야 편하게 사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야 하루를 열심히 살까 생각했다면, 지금은 욕심은 있는데 욕심을 채웠을 때 나중에 돌아오는 게 뭘까를 많이 생각한다. 다만 사랑에 관해서는 언제나 똑같은 것 같다. 농담처럼 사랑한지 오래 돼서 감정이 메마르지 않았을까 하는데, 불러보면 그런 감정이 다 남아있더라. 결국 사랑이나 이별은 언제나 똑같은 것 같다. 헤어지고 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걸 알면서도 어쩔 줄 모르고, 애태우고.

그리고 음악도 반복된다. 데뷔할 때는 인기를 얻는 게 좋았지만 지금은 인기를 얻어도 또 다시 음악을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거미 : 며칠 전부터 그 생각 안하기로 했다. (웃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답답해지고 먹먹해져서 차라리 생각하지 말자 싶었다. 다만 나는 음악을 죽을 때까지 할 건데, 내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속 내 음악에 공감해주셨으면 좋겠다. 그 외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초기처럼 발라드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여전히 1집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니까. 대신 대중만 생각해서 지르는 게 아니라 내가 부르면서 느낄 수 있는 노래, 지금의 나와 옛날의 나를 합친 것 같은 음악을 하고 싶다.

데뷔 10년이 가까워진다. 무엇이 달라진 것 같나.
거미 : 전에는 가수가 되면 즐겁기만 할 줄 알았다. 가수가 되고 싶은 열정 하나로 그 시간을 견뎠고, 가수가 되면 다 잘 될 거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안다. 그 때도 힘들었지만 노래를 하고 싶어 견뎠던 것처럼 지금도 힘들지만 노래를 하는 게 좋아서 견디는 건 똑같다.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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