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나름 앞날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라 여겨왔습니다. 노후 대비 같은 거창한 얘기는 아니에요. 몇 년 전 제가 생사를 오락가락 해본 적이 한번 있었거든요. 말짱하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불귀의 객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해 본 거죠. 그래서 그 후에는 주기적으로 서랍 정리부터 시작해서 사람 정리까지 두루 해가며 급작스레 떠날 때에 대비하게 되더라고요. 베란다며 장롱 속을 뒤죽박죽 해놓은 채 세상을 떠난다면, 그건 너무나 찝찝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저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속 불편한 일이고요. 저 떠난 후 누구도 저를 그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MBC ‘내게 남은 5%’ 편, 동우 씨네 가족 이야기를 보다 보니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저의 대비책이라는 게 순전히 제 입장과 제 체면에만 급급한 이기적인 발상이었다는 걸 동우 씨네 가족을 보며 깨닫게 된 거예요.
동우 씨와 아내를 보면서 부끄러워졌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지만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남편의 기를 세워주려 애쓰는 동우 씨의 아내 은숙 씨를 보며 진심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혼 초기에 이미 진단이 내려졌기에 다른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기꺼이 함께 고난의 길을 헤쳐 온 가녀린 어깨가 정녕 존경스러웠습니다. 본인 또한 3년 전 받은 뇌종양 수술의 후유증으로 한쪽 청력을 잃었다는데, 그리고 재발의 가능성도 있다는데 어쩜 그리 담대하실 수 있을까요. 현숙하고 고운 은숙 씨의 모습, 내내 잊지 못하지 싶어요.
그런데 말이죠. 사람이 나이를 먹었다고 다 철이 드는 건 아닌 것이, 6천 명 중 한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인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동우 씨를 보면서도 저는 처음엔 ‘아뿔싸, 눈이 안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았네. 이제라도 불꺼놓고 매일 조금씩 연습을 해볼까?’ 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뭡니까. 내 남편이나 내 아이들이 저런 역경에 처했다면 함께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어떤 식으로 도와줄 것인가, 그런 궁리부터 해야 옳으련만 저는 누군가에게 제가 짐이 되지나 않을까, 그 걱정부터 앞서니 기막힌 노릇이죠? 사실 5%만 남았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시력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면 좀 더 안 보일 테고 그러다 갑자기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 몸이 떨려오기까지 한다는 동우 씨의 절박함은 백번 천 번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그런 참담한 순간순간 곁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아내 은숙 씨와 다섯 살짜리 딸 지우가 얼마나 감로수 같은 존재일지도 짐작이 갑니다.
동우 씨는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결혼한 지 7년, 한때는 잘나가는 개그맨이자 ‘틴틴파이브’의 멤버였으나 지금은 장애인이 된 이동우의 아내로 살아가는 은숙 씨가 저에게 화두 하나를 던져주시더군요. ‘너는 과연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되었습니다.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어찌 대처할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도 않은 제가, 그래놓고는 앞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자부해온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은숙 씨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예요. 깔끔하게 떠날 준비를 앞날에 대한 최선의 대비로 여겼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점점 눈이 안 보일수록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는 동우 씨의 내레이션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천만에요. 세상이 눈여겨 봐주지 않아도 동우 씨는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은숙 씨와 지우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인 걸요. TV에 나와 노래 부르는 아빠를 보고 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지우를 위해서라도 좀 더 힘을 내주세요. 집에서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셨던지 ‘청춘’이라는 곡은 벌써 지우가 따라 부르더라고요. 저도 지난번 콘서트에서 동우 씨가 들려주신 ‘지우의 꿈’을 당장에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등록했습니다. ‘이길 수 있을 거야, 이길 수 없다 해도 내가 가는 길 결코 외롭지 않아’라는 노랫말처럼 이제 곧 남은 5%의 시력마저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동우 씨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자신을 향한 동정어린 시선이 거북하다 하셨지만 부디 TV와 라디오에서 자주 뵙고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번에 새로이 맡게 되신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MHz)의 ‘이동우, 김수영의 오늘이 축복입니다’ 열심히 들을 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동우 씨와 아내를 보면서 부끄러워졌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지만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남편의 기를 세워주려 애쓰는 동우 씨의 아내 은숙 씨를 보며 진심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혼 초기에 이미 진단이 내려졌기에 다른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었지만 기꺼이 함께 고난의 길을 헤쳐 온 가녀린 어깨가 정녕 존경스러웠습니다. 본인 또한 3년 전 받은 뇌종양 수술의 후유증으로 한쪽 청력을 잃었다는데, 그리고 재발의 가능성도 있다는데 어쩜 그리 담대하실 수 있을까요. 현숙하고 고운 은숙 씨의 모습, 내내 잊지 못하지 싶어요.
그런데 말이죠. 사람이 나이를 먹었다고 다 철이 드는 건 아닌 것이, 6천 명 중 한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인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는 동우 씨를 보면서도 저는 처음엔 ‘아뿔싸, 눈이 안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았네. 이제라도 불꺼놓고 매일 조금씩 연습을 해볼까?’ 뭐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지 뭡니까. 내 남편이나 내 아이들이 저런 역경에 처했다면 함께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어떤 식으로 도와줄 것인가, 그런 궁리부터 해야 옳으련만 저는 누군가에게 제가 짐이 되지나 않을까, 그 걱정부터 앞서니 기막힌 노릇이죠? 사실 5%만 남았다는 것이 얼마만큼의 시력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면 좀 더 안 보일 테고 그러다 갑자기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 몸이 떨려오기까지 한다는 동우 씨의 절박함은 백번 천 번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리고 그런 참담한 순간순간 곁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아내 은숙 씨와 다섯 살짜리 딸 지우가 얼마나 감로수 같은 존재일지도 짐작이 갑니다.
동우 씨는 결코 혼자가 아니에요 결혼한 지 7년, 한때는 잘나가는 개그맨이자 ‘틴틴파이브’의 멤버였으나 지금은 장애인이 된 이동우의 아내로 살아가는 은숙 씨가 저에게 화두 하나를 던져주시더군요. ‘너는 과연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되었습니다.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어찌 대처할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도 않은 제가, 그래놓고는 앞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자부해온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은숙 씨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는 얘기예요. 깔끔하게 떠날 준비를 앞날에 대한 최선의 대비로 여겼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점점 눈이 안 보일수록 없는 사람이 되어 갔다”는 동우 씨의 내레이션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천만에요. 세상이 눈여겨 봐주지 않아도 동우 씨는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은숙 씨와 지우에게는 꼭 필요한 사람인 걸요. TV에 나와 노래 부르는 아빠를 보고 손을 흔들며 좋아하는 지우를 위해서라도 좀 더 힘을 내주세요. 집에서 얼마나 연습을 많이 하셨던지 ‘청춘’이라는 곡은 벌써 지우가 따라 부르더라고요. 저도 지난번 콘서트에서 동우 씨가 들려주신 ‘지우의 꿈’을 당장에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등록했습니다. ‘이길 수 있을 거야, 이길 수 없다 해도 내가 가는 길 결코 외롭지 않아’라는 노랫말처럼 이제 곧 남은 5%의 시력마저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동우 씨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자신을 향한 동정어린 시선이 거북하다 하셨지만 부디 TV와 라디오에서 자주 뵙고 들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번에 새로이 맡게 되신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MHz)의 ‘이동우, 김수영의 오늘이 축복입니다’ 열심히 들을 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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