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저는 김수현 작가님과 동시대를 살게 된 것을 복이라 여깁니다. 다소 불경스러운 말씀일 수도 있지만 부디 작가님께서 저보다 단 하루라도 더 생존해주시길 바라고 있어요. 작가님이 아니 계신 세상은 차마 생각지도 못하겠어서 말이죠. 드라마를 보는 소소한 재미 때문에 작가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는 건 아닙니다. 시청자들을 가르치려 든다고 흠을 잡는 이들도 간간히 있지만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통해 크고 작은, 삶의 도리와 지혜를 배워왔거든요. 예를 들면 연세 높은 어르신이 출타하실 적에는 현관에서 신발을 바로 놓아드리는 게 도리라는 건 KBS 에서 여운계 선생님이 알려주셨고, 국의 간을 볼 때는 일단 한 국자를 뜬 다음 수저로 간을 봐야 옳다는 것은 그보다 훨씬 전, MBC 에서 봤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저의 오만을 깨주셨네요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그런가하면 못난 역할이든 악역이든 극중에서 반드시 소명할 기회를 주어 역지사지를 깨우쳐 주시기도 하셨지요. 덕분에 ‘나는 세상에서 이해 못할 사람이 없더라’는 통통한 소리도 하고 지냈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엔 SBS 를 통해서 저의 가식과 오만을 보기 좋게 깨부숴 주시네요. 아마 쿨한 척, 이해하는 척 해온 제 속을 빤히 들여다보신 모양입니다. 고백하자면 이번 드라마의 ‘동성애’ 코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이해하는 ‘척’을 했습니다. 그냥 말로만 척을 한 게 아니라 어딘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어요. 동성애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꺼려하던 저를 바꿔 놓은 것은 나 같이 동성애자가 주인공의 친구이거나 처럼 동성애자가 주인공인 미국 드라마라면서, 아직도 거부감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미드의 도움을 받아보시라는 조언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건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아니지 않습니까? 동성애자가 꺼림칙한 존재가 아니니 굳이 멀리할 필요 없다는 얘기일 뿐이잖아요. 제가 ‘척’을 해왔음을 깨달은 건 병태(김영철)씨가 아내 민재(김해숙) 여사로부터 큰아들 태섭(송창의)이의 비밀을 전해들은 뒤 “내가 너무 오만했어. 남의 일로만 알았어. 난 상관없는 일인 줄 알았어”라며 오열하는 걸 보는 순간이었어요. 머리를 세게 강타 당한 냥 띵하더군요. 제가 이해했다고 여긴 건 ‘남의 일’일 때에 한해서였던 거더라고요.

경수나 태섭이가 내 아이였으면 어땠을까요?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제 일이라면, 제 아이의 문제라면 저는 과연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수년간 목을 죄듯 닦달을 해대다가 “나두 내 자식이라고 안할 테니 너두 고아로 살아라. 이 나쁜 놈아”라는 쪽지 한 장을 던지고 떠나버린 경수 어머니(김영란)처럼은 아니겠지만 저 역시 선선히 받아들이지는 못하지 싶어요. 무엇보다 저는 민재 여사처럼 바로 남편에게 털어놓지는 못할 게 분명합니다. 초롱(남규리)이 같은 목격자가 있다면 우선 그 입단속부터 시켰을 게고요. 혼자 한동안 끙끙거리다가 아이를 붙들고 네가 겪어온 고통은 백 번, 천 번 안타깝지만 차차 해결책을 찾아보자며 시간 끌기에만 급급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그날로 즉시 가족회의를 열어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아이에게 불어 닥칠 후폭풍이 두렵기도 하지만 저는 경수 어머니 모양 체면을 붙들고 아등바등 거리는 못난이기도 하거든요. 제가 지금 경수 어머니와 민재 여사 중 어느 쪽에 더 기울어져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끝날 즈음이면 민재 여사 쪽에 훌쩍 가까워져있으리라는 확신은 들어요. 차라리 털어 놓고 죽도록 매를 맞든 쫓겨나든 하겠다며 눈물을 뚝뚝 떨구는 태섭이를 보니, 아무 잘못도 죄도 없으면서 ‘죄송해요, 미안하다, 용서하세요’를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태섭이네 가족들을 보니 동성애자들이 겪어온 고난이 가슴을 에여와 눈물이 절로 흐르던 걸요. 저 같은 못난이들이 태섭이의 죽고 싶을 고통에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을 하니 그저 부끄럽고 미안할 뿐입니다. 다시금 저를 끊임없이 깨우쳐주시는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김수현 작가님, 고맙습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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