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경규는 KBS ‘남자의 자격’을 통해 앞으로 30년 더 방송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 말에 신뢰가 가는 건 그가 단순히 과거 최고의 오락 시청률을 기록하던 방송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시류의 흐름 속에서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예능인은 이경규 외에도 많이 있다. 이경규가 특별한 건, 정점을 찍고 실패를 경험한 뒤에도 지금 현재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경규를 말하며 오랜 방송생활 동안 그가 그린 흥망의 포물선을 빼놓을 수는 없다. 다음은 그의 인생 곡선을 고전소설로 재구성한 이다. 특별한 가감 없는 이 픽션을 통해 어떤 소설 주인공 못지않게 파란만장했던 이경규의 인생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예부터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했다. 웃는 집에 복이 들어온다고 하였으니, 집 한 호(戶)가 웃으면 한 가족이 복을 누릴 것이요, 백 호가 웃으면 한 고을이 복을 누릴 것이며, 백만 호가 웃으면 한 나라가 복을 누릴 것이니 이 어찌 웃음이 성현의 가르침보다 중요하지 않다 하리오. 허나 정색하기 좋아하는 유학자들이 이를 사특하다 여기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하여, 세상 무엇보다 사람 웃기기를 좋아하던 한 선비의 이야기를 남겨 후세의 귀감이 되게 하리라. " />
조선 땅 어느 고을에 사람 웃기는데 비상한 재주가 있는 선비가 있었으니,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예달선생(藝達先生) 이경규라 칭했다. 어릴 때부터 눈알 돌리는 재주로 마을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더니, 약관의 나이에는 만나본적도 없는 되놈의 말을 흉내 내어 고을 수령에게 백미 열 섬을 얻었다. 허나 나이 서른이 되도록 벼슬에는 뜻이 없어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어느 날 그를 불러놓고 이르되 “네 나이가 서른인데 어찌 남들 웃기는 것으로만 소일하는가. 이제라도 공부에 전념해 생원 자리라도 얻어야 하지 않는가” 하였다. 이에 답하길 “소자, 남에게 웃음을 주는 것으로 일가를 이뤄 아래로는 만백성에게 위로는 나라님에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하였다. 무과(武科)를 준비하던 같은 고을 갑돌이가 이 이야기를 듣고 만나는 사람마다 “남을 웃기는 건 아이들의 유치한 장난과 무엇이 다른가? 선비답지 못하며 남자답지 못하다”라며 기롱하니, 이에 예달선생(藝達先生)이 그를 골탕 먹일 계획을 세우더라.
갑돌이가 평소에 연모하던 최진사 댁 셋째 여식이 있어 나이는 이팔청춘에 눈초리는 갸름하고 입술은 복사꽃 같고 걸음걸이는 비단 흔들리듯 하늘하늘 하여 볼 때마다 마음이 요동치더라. 허나 무과급제 전까진 여색을 멀리하겠다고 마음먹고 바늘로 허벅지를 쑤셔가며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에서 마주친 최진사 댁 셋째 여식이 얼굴에 홍조를 띄며 남몰래 편지를 전하니 ‘나 역시 그대를 연모한지 오래라.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하니, 명일 축시 물레방앗간에서 견우직녀처럼 만나길 바라오’라고 적혀있어 그토록 굳은 다짐도 봄날 눈 부스러기처럼 부질없이 날아갔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갑돌이가 부모 몰래 달빛에 의지해 물레방앗간에 나가매, 그녀가 주안상을 놓고 기다리고 있더라. 달빛 아래 자태가 더욱 고와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그녀가 생긋 웃으며 잠시만 기다리면 곧 돌아오겠노라며 풀숲으로 들어가니 갑돌이는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에 마냥 실실 웃더라. “여보게, 갑돌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고을 사람들이 근처를 둘러싸 배를 잡고 낄낄거리고, 그 가운데 예달선생이 서서 가로되 “남을 웃기는 일이 유치하다 하였으나 웃기는 것과 우스운 것은 다르니, 오히려 지금 자네 모습이 우습지 아니한가” 하였다. 이후 갑돌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금 예달선생을 경외하였다. " />
그 후로도 남을 감쪽같이 속여 사람들이 몰래 구경하게 하는 수법으로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매, 그 소문을 들은 감사가 예달선생이라는 휘호를 직접 전달하기도 하였다. 하여 잠시 교만해진 예달선생이 가로되 “내가 이렇게 예달이라 칭하고 모두가 인정하니, 모든 종류의 예(藝)에 도전해보겠다” 하였다. 하여 복수혈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이라는 책을 직접 쓰고, 그동안 모은 가산을 털어 풍물패를 모으고 창하는 이를 불러 한바탕 마당놀이로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구시월 밤바람처럼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이에 스스로 자책하길 “내가 너무 교만했구나”하며 한동안 두문불출하더라. 그렇게 한동안 방바닥에서 책과 함께 소일하던 예달선생이 하도 바깥이 떠들썩해 간만에 외출을 하니 크게 씨름판이 벌어져 입 가진 자들은 다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구경하고 있었다. 예달선생이 무심히 씨름판을 보다 한 기골 장대한 장사가 눈에 쏙 들어오니, 그야말로 타고난 예달의 풍모라, 생각이 반듯하여 머리가 네모반듯하고, 배짱이 두둑하여 배가 남산만하고, 끈기와 재치가 목덜미에 덕지덕지 붙어있더라. 힘도 역발산기개세라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씨름에서 이긴 장사에게 예달선생 찾아가 가로되 “남을 웃긴지 삼십 년이 넘었으나 당신 같은 귀인의 상은 처음이라. 씨름을 그만하고 사람에게 웃음을 주면 그 이름이 팔도 곳곳에 퍼질 테니 내 말을 귀담아 들으시라. 안 되면 내가 책임질 것이요, 잘 되도 바라는 건 없고 그저 내 이름 이경규 석자 기억해주시오” 하더라.
그렇게 귀인을 만나 다시금 남에게 웃음 줄 욕심이 나기 시작했으나 예달선생은 절치부심, 집에서 나오질 않더라. 스스로 가로되 ‘내가 남을 속여 조롱거리 삼아 웃음을 주었으나 백 사람이 웃고 한 사람이 수치스럽다면 그 어찌 건강한 웃음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백 사람이 웃을 수 있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만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일을 해보겠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아 무릎을 치고 다시금 방문을 열고 나왔으니 이것이 예달선생의 두 번째 활약이라. " />
고을 동쪽 한 허름한 초가에는 젊고 아름다운 과부 하나가 살았는데 그 절개가 드높아 고을의 자랑이었다. 그토록 수절을 잘하면서도 성이 각기 다른 자식 다섯이 있었으나 아무도 괴이치 여기지 않았다. 이처럼 이름 높은 그녀에게도 걱정이 하나 있었으니 방 안의 장롱이 낡아, 매일 밤 찾아와 공맹을 논하고 시조를 주고받는 벗이 남들 눈을 피해 몸을 의탁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김없이 찾아온 벗과 뻐꾸기처럼 뻐꾹뻐꾹 즐거이 담소를 나누던 과부의 집 방문이 벌컥 열리며 장롱을 든 예달선생과 사람들이 들어왔다. 예달선생 가로되 “그대의 정절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이 늦은 밤까지 잠을 자지 않고 혹 들어올지 모를 사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노라. 그대가 평소에 장롱이 낡아 걱정이었다기에 내 이렇게 자개를 박아 넣은 자개장을 선물하니 앞으로도 그 정절 변치 않길 바라노라” 하였다. 이에 과부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흐뭇하니, 그 이후로도 예달선생은 산에서 정갈하게 삼년상을 치르는 선비와 사방백리 이름이 높은 효자를 찾아 자개장을 선물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예달선생의 이름은 더욱 높아져갔으니 마침내 나라님에게도 그 소식이 들어가 고을 어귀에 예달선생비를 세우라 명했다.
그렇게 조선팔도 예달선생의 명성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정작 예달선생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내가 뜻한 바 있어 미담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있으나 배꼽 빠지도록 낄낄 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은 억제할 수가 없구나.’ 세상은 많이 바뀌어 사람을 웃기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으니 그 중의 제일은 메뚜기 닮은 교주를 중심으로 동네 왈짜 여섯이 모여 서로 웃고 떠들고 농사도 짓고 썰매도 타는 무한도(無限道) 무리였다. 진심인지 농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소동극에 사람들은 그토록 즐거워하였으니 예달선생에게도 자극이 되더라. 하여 그도 자신과 함께 웃음을 줄 무리를 찾아 방(訪)을 붙이니 평소에 예달선생을 흠모하던 이들이 찾아와 가히 십 리에 달하는 줄을 섰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매 예달선생 즐거워 “무한도가 단 여섯으로 그렇게 웃음을 주니 이 줄이라면 몇 배 큰 웃음을 줄 수 있으리라” 자신하였다. 허나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잔뜩 모이니 이 또한 너무 중구난방이라. 도무지 하나로 모이지 않는 무리 때문에 예달선생은 종종 버럭 화를 냈고,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수근 대길 “이제 예달선생의 시대는 가고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했다. 이에 예달선생이 낙담하여 포기하니 길게 늘어섰던 줄은 태두(泰斗)를 잃고서 뿔뿔이 흩어졌다. 오직 예달선생의 역정을 모두 받아주던 약골 샌님만이 그의 곁을 지켜주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조선팔도를 호령하던 예달선생의 예기(銳氣)가 이렇게 꺾일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미 온갖 영예를 누렸으니 명예에 대한 욕심은 남지 않았으나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고 싶은 욕심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허나 범상한 무리는 예달선생의 깊은 뜻을 몰라주고 늙은이의 욕심이 추하다 욕하니 예달선생의 마음은 투전판에서 가산을 탕진한 것 마냥 허전했다. 하여 모든 것이 부질없다 팔도를 거닐었다. 그렇게 초라한 행색으로 저자를 걷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벽력같은 외침이 들려오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낯익은 얼굴 하나가 꽃가마를 타고 공손히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더라. 자세히 보니 십 년 전 씨름판에서 만났던 그 장사라. 장사 가로되 “선생 말씀을 듣고 사람들을 웃기기 시작한지 어언 십 년, 그 덕에 나라님께 정삼품 관직까지 하사받았으니 이 모든 게 선생의 공이라. 언제고 다시 보나 하였는데 오늘 드디어 귀인을 뵈옵니다” 하더라. 나라님께 아뢰어 새로운 기회를 드리고 싶다는 장사의 청을 기어코 거절하면서도 뿌듯하여 스스로 생각하되 ‘내 눈이 틀리지 않아 이토록 훌륭한 인재를 조선에 냈으니 이것도 나의 복이라. 스스로를 믿고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리라’ 다짐했다.
화무십일홍이라. 꽃이 붉은 건 열흘을 가지 못한다. 허나 꽃은 시들고 떨어지고 다시 피니, 어찌 예달선생의 활약이 여기서 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를 지으나 그가 선사할 웃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터이니 경외를 담아 이렇게 을 남긴다.
글. 위근우 eight@
일러스트. 그루브모기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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