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의 ‘빨강 사탕’을 보는 내내 바람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가 바람인 걸까요? 한때 김재박 부장(이재룡)님의 유일한 낙이었던 출퇴근길의 ‘빨강 사탕을 입에 문 유희(박시연) 씨 바라보기’ 만큼은 바람으로 몰고 싶지 않아서요. 부장님의 넋두리처럼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단지 아름다운 여자를 쳐다보며 삶의 활력을 찾았을 뿐인데, 그게 무슨 바람이겠어요. 그 즈음 부장님의 삶이 팍팍하니 여유가 없었던 건 누가 봐도 사실이니까요. 남편과 의논 한번 없이 아들의 유학 수속을 밟아놓고는 출국 날 아침에야 늦둥이 둘째를 떠안기며 악다구니를 쓰는 부장님의 아내(김여진)를 보고 있자니 제 가슴까지 답답해지던 걸요. 아침나절 그 전쟁을 치렀음에도 지하철에 올라 유희 씨를 찾아내고는 “그래도 오늘 일진이 최악은 아니구나. 늦었는데도 저 여자를 보게 되었으니까”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부장님을 어느 누군들 나무랄 수 있겠느냐고요.
대체 어디서부터가 바람일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 되시는 분에게서 제 지난날이 언뜻 언뜻 보여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이 우선입네 수선을 떨며 남편은 뒷전이던 십년 가까운 시간, 우리 애들 아빠는 무엇에서 위안을 찾았을까요. 눈치 볼 마누라도, 키우기 힘든 아이들도 없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어 했던 부장님처럼 제 남편도 자기 가족을 짐스러워 했을까요? 게다가 순수했던 부장님의 꿈같은 감정이 실제의 인연으로 발전해가며 점차 수렁으로 빠져드는 터라 그걸 지켜보는 제 심정도 점점 심란해지더군요. 저라면 어느 선까지 이해할 수 있을는지, 그걸 모르겠어서요.
얼마 전 SBS 에서도 연예인 부부들이 바람의 기준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어요. 한 순간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마음만 주지 않았다면 바람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키스를 하는 순간이 바람의 시작이라는 의견도 나왔고요. 그리고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어야 바람이라는 의견도, 호감을 가지고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순간부터가 바람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에게 말 못할 여자관계가 바로 바람’이라는 한 누리꾼의 정의에 여자 패널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 기준으로 보면 거래처 여직원을 바라보는 일이 내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부인께 털어놓을 수는 없으셨을 터, 초반의 일방적인 훔쳐보기도 결코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네요.
두 사람을 지켜본 뒤에 남은 것 안타까운 건 한발을 자칫 잘못 내딛는 바람에 풋풋한 순정남으로 부각되던 부장님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 드는 찝찝한 중년 남자로, 100일이 넘도록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봐준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유희 씨는 멀쩡한 남의 가정을 파탄 내려는 몹쓸 여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불륜이란, 특히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이란 어찌 포장을 해도 아름다울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회사 주변을 떠도는 뜬소문을 견디다 못해 유희 씨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난 진심이었다’는 편지를 돈 천만 원과 함께 남기며 둘의 관계는 정리되었지만 저는 “당신 부인보다 더 날 사랑해주길 바란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질투도 하지 않겠다. 유부남인줄 알고 시작했으니까. 당신 마음에 드는 짓만 하겠다. 그러니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애원하던 유희 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부장님이 준 돈만큼은 도저히 쓸 수 없다고, 돈과 진실된 사랑을 바꿀 수가 없다며 울었다는 유희 씨, 그녀가 너무나 딱해서 말이에요. 편지에 처음 썼다가 지운 ‘우린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난 널 책임질 주제가 못 된다’라는 구절이 부장님의 본심이길 바래요. 어쨌거나 유희 씨는 진심이었잖아요. 부장님은 그녀의 진심을 보지 못한 채 소문만을 바라봤던 거고요.
유희 씨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바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진심과 이해의 문제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에요. 두 사람이 똑같이 진심이라면 바람이 아니라 사랑이고, 배우자의 이해 여부에 따라 바람의 기준이 달라지지 싶다는 겁니다. 폭풍 같은 바람을 한 차례 경험하신 김 부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대체 어디서부터가 바람일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 되시는 분에게서 제 지난날이 언뜻 언뜻 보여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이 우선입네 수선을 떨며 남편은 뒷전이던 십년 가까운 시간, 우리 애들 아빠는 무엇에서 위안을 찾았을까요. 눈치 볼 마누라도, 키우기 힘든 아이들도 없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어 했던 부장님처럼 제 남편도 자기 가족을 짐스러워 했을까요? 게다가 순수했던 부장님의 꿈같은 감정이 실제의 인연으로 발전해가며 점차 수렁으로 빠져드는 터라 그걸 지켜보는 제 심정도 점점 심란해지더군요. 저라면 어느 선까지 이해할 수 있을는지, 그걸 모르겠어서요.
얼마 전 SBS 에서도 연예인 부부들이 바람의 기준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어요. 한 순간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마음만 주지 않았다면 바람이 아니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키스를 하는 순간이 바람의 시작이라는 의견도 나왔고요. 그리고 계속 생각나고 보고 싶어야 바람이라는 의견도, 호감을 가지고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순간부터가 바람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에게 말 못할 여자관계가 바로 바람’이라는 한 누리꾼의 정의에 여자 패널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그 기준으로 보면 거래처 여직원을 바라보는 일이 내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부인께 털어놓을 수는 없으셨을 터, 초반의 일방적인 훔쳐보기도 결코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네요.
두 사람을 지켜본 뒤에 남은 것 안타까운 건 한발을 자칫 잘못 내딛는 바람에 풋풋한 순정남으로 부각되던 부장님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 드는 찝찝한 중년 남자로, 100일이 넘도록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봐준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유희 씨는 멀쩡한 남의 가정을 파탄 내려는 몹쓸 여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불륜이란, 특히 유부남과 처녀의 사랑이란 어찌 포장을 해도 아름다울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회사 주변을 떠도는 뜬소문을 견디다 못해 유희 씨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난 진심이었다’는 편지를 돈 천만 원과 함께 남기며 둘의 관계는 정리되었지만 저는 “당신 부인보다 더 날 사랑해주길 바란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질투도 하지 않겠다. 유부남인줄 알고 시작했으니까. 당신 마음에 드는 짓만 하겠다. 그러니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애원하던 유희 씨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부장님이 준 돈만큼은 도저히 쓸 수 없다고, 돈과 진실된 사랑을 바꿀 수가 없다며 울었다는 유희 씨, 그녀가 너무나 딱해서 말이에요. 편지에 처음 썼다가 지운 ‘우린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난 널 책임질 주제가 못 된다’라는 구절이 부장님의 본심이길 바래요. 어쨌거나 유희 씨는 진심이었잖아요. 부장님은 그녀의 진심을 보지 못한 채 소문만을 바라봤던 거고요.
유희 씨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바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진심과 이해의 문제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에요. 두 사람이 똑같이 진심이라면 바람이 아니라 사랑이고, 배우자의 이해 여부에 따라 바람의 기준이 달라지지 싶다는 겁니다. 폭풍 같은 바람을 한 차례 경험하신 김 부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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