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의외성을 좋아해요. 연예인이면 으레 어떨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있는데 현장에서 보면 안 그렇거든요. 그런 게 재밌어요. 가 방송되기 전까지는 절 도도하거나 차갑고 자기관리 철저한 연예인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사석에서 저를 만나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는데 말이죠. (웃음)”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실제 내 모습 사이의 괴리를 즐기는 아이돌과의 대화는 매순간이 의외였다. “충전할 새도 없이 쉼 없는 스케줄”이 이어지는 티아라의 은정은 걸그룹 멤버에게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아이돌의 행동 방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무대가 아닌 공간에서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에 위축되거나 조심하기 마련인 아이돌들과 다르게 사방이 탁 트인데다 다른 손님들이 있는 카페인데도 들어서면서부터 씩씩하게 스태프들을 이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전 당신이 저를 미워하는지 안 미워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당신이 좋아요”라는 자세로 대하게 된다는 그녀는 7명의 소녀들이 합숙하며 활동하는 걸그룹 생활도 “둥글둥글” 보낼 수 있다. “욕심”보다는 “배려”가 모두를 살리는 길인 걸 알기에 모두가 마다하는 의상도 입고, 내 파트를 욕심내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노래를 기다렸다.
그러나 신인배우 함은정은 다르다. “티아라 할 때는 몰랐어요. 걸그룹은 단체생활이어서 그렇게 욕심을 부릴 수가 없거든요. 만약에 저 파트를 내가 하고 싶은데 저 친구가 어울린다면 그게 우리를 위해서 좋은 거니까 그렇게 가는 게 맞죠.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아, 나도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걸 알았어요.” 그래서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최선을 다했던 KBS 의 백희를 “이유 있는 악역”으로 만들고 싶었고,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드는” 재미를 맛보기도 했다. “를 보고 액션 배우가 되고 싶어서” 태권도를 배우던 초등학생은 그 또래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이 되었고, “뭣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한” 아역배우는 어느새 “늘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것이 재밌는” 배우로 익어가고 있다. 함은정이 “하면 할수록 나를 풍부하게 만드는” 연기처럼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한국영화들을 골랐다. 물론 그 리스트 역시 의외성의 연속으로 가득하다. 1. (Someone Special)
2004년 | 장진
“장진 감독님 영화는 다 좋아하는데 가장 베스트로 봤던 건 예요. 너무 좋아해서 시나리오도 구해다 봤어요. 는 굉장히 행복한 영화예요. 센스와 위트가 넘치는데 저는 위트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발에 깡통을 끼우고 걷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하던 버릇이어서 ‘이런 감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놀라기도 했죠. 말없이 한 장면만으로도 다 설명이 되는 영화라 감탄하면서 봤어요. 저도 언젠가는 장진 감독님과 꼭 한 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실연, 시한부 판정, 짝사랑. 눈물, 콧물 다 짜낼 러브스토리의 3요소를 장진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냈다. 그의 엉뚱한 유머 감각은 코미디의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을 세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연(이나영)에게서 멸종 위기에 처한 순정을 구해낸다. 2. (Tale Of Cinema)
2005년 | 홍상수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해요. 이 영화를 말하면 약간 파장이 있을 것 같은데 (웃음) 을 좋아해요. 다섯 번은 본 것 같아요. 영화가 굳이 꽉꽉 채우지 않아도 채워져 보일 수 있구나 라는 걸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느꼈어요. 와, 이런 영화가 있구나. 처음 시작할 때 카메라가 남산을 줌으로 땡겨요. 전 거기서부터 이미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됐어요. 김상경 선배님이 걷다가 여자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행진곡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위트와 아이러니한 면에서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참 배우로서의 생각이 생길 때 봐서 그런지 인상이 깊어요.”
극장에서 틀어준 영화, 그걸 보고 극장에서 나온 나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은 지금 자신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물음표를 던진다. 명료한 마침표나 단호한 느낌표가 아닌 공들인 물음표를 그려내는데 몰두했던 홍상수 감독의 대표작. 3. (The Charming Girl)
2005년 | 이윤기
“기본적으로 위트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처럼 조용한 영화도 좋아하죠. 특히 는 너무 공감하면서 봤어요. 여주인공이 그냥 평범하게 물을 마시는 장면도 감정전달이 될 수 있구나, 저 사람이 지금 무슨 감정으로 마시는지, 왜 그러는 건지가 느껴지더라구요. 흥행작이나 버라이어티한 느낌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이런 작품을 찾으면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느낌이에요.”
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일터인 우체국에서 집으로 다시 우체국으로 느릿느릿 몸을 옮기는 정혜(김지수)처럼. 종종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화면에 담긴 위로는 상처 입은 채 여자가 된 수많은 정혜들에게 말을 건다. 다시 한 번 희망이란 걸 품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4. (Oldboy)
2003년 | 박찬욱
“도 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일단 너무나 좋아하고 훌륭한 선배님들의 연기가 다 있고, 특히 강혜정 선배님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지막에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와, 정말 대단하다’ 하면서 감탄했거든요. 그렇게 오묘하면서 어느 한 쪽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느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뭔가 굉장히 애매한 느낌이랄까요? 미도라는 캐릭터가 정말 멋있었어요.”
다양한 광고에서 여러 번 패러디됐을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 . 대수(최민식)가 감금되었던 독방의 어지러운 벽, 유리처럼 차가운 우진(유지태)의 공간과 속죄와 구원이 뒤섞여 내리는 설원까지 영화는 서사의 탄탄함과 공간의 탁월함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제 5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5. (Sunny)
2011년 | 강형철
“에는 웃음과 재미와 슬픔이 있는데 그 분배가 칼 같이 딱 떨어지고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가요. 참 똑똑한 영화인 것 같아요. 저 또한 그 타이밍에 매료가 됐던 것 같아요. 마냥 재미있기도 하고요. 당연히 센스도 있구요. 병실에서 환자들이 막장 드라마 보다가 다 나가잖아요. (웃음) 그런 타이밍이 좋았아요.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는데 한 번 꽂히면 계속 보거든요. 도 누가 보러가자고 하면 또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는 타깃이 확실하고 그곳을 향한 명중률도 높은 편이다. 단짝친구 ‘써니’ 멤버들의 활약과 함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올드 팝과 음악다방 등의 장치들은 80년대에 십대였을 많은 이들의 추억을 상기시키기 위해 물량 공세를 펼친다. 그래서 그 때 그 시절의 주인공들에게는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준다. 영화 에서 공포의 재료가 된 아이돌의 삶은 그것을 연기하는 함은정에게는 일상이기도 하다. 메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걸그룹 멤버들 간의 경쟁을 그린 영화를 실제 아이돌은 어떻게 봤을까? “저는 솔직히 굳이 뭘 이렇게까지 할까 했어요. (웃음) 요즘에는 메인이란 말 자체를 안 쓰는데다가 진짜 실생활은 좀 다르거든요. 원더걸스도 ‘텔미’ 때는 소희 양이었다면, ‘노바디’ 때는 선예나 유빈 양이 드러나고 그런 거죠. 기다리다 보면 자기한테 맞는 곡이 온다니까요. (웃음)”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미쳐’에서 함은정만의 반전을 만들어 낸 그녀. “요부도 하고 싶고, 수녀도 하고 싶고, 위험한 역할도 하고 싶은” 욕심 많은 스물셋 아가씨가 기다림의 시간들을 정체가 아닌 숙성의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는 좋은 배우를 한 명 더 갖게 될 것이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그러나 신인배우 함은정은 다르다. “티아라 할 때는 몰랐어요. 걸그룹은 단체생활이어서 그렇게 욕심을 부릴 수가 없거든요. 만약에 저 파트를 내가 하고 싶은데 저 친구가 어울린다면 그게 우리를 위해서 좋은 거니까 그렇게 가는 게 맞죠.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아, 나도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걸 알았어요.” 그래서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최선을 다했던 KBS 의 백희를 “이유 있는 악역”으로 만들고 싶었고,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드는” 재미를 맛보기도 했다. “를 보고 액션 배우가 되고 싶어서” 태권도를 배우던 초등학생은 그 또래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아이돌이 되었고, “뭣도 모르고 연기를 시작한” 아역배우는 어느새 “늘 새로운 역에 도전하는 것이 재밌는” 배우로 익어가고 있다. 함은정이 “하면 할수록 나를 풍부하게 만드는” 연기처럼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되는 한국영화들을 골랐다. 물론 그 리스트 역시 의외성의 연속으로 가득하다. 1. (Someone Special)
2004년 | 장진
“장진 감독님 영화는 다 좋아하는데 가장 베스트로 봤던 건 예요. 너무 좋아해서 시나리오도 구해다 봤어요. 는 굉장히 행복한 영화예요. 센스와 위트가 넘치는데 저는 위트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거든요. 발에 깡통을 끼우고 걷는 장면이 있었는데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하던 버릇이어서 ‘이런 감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놀라기도 했죠. 말없이 한 장면만으로도 다 설명이 되는 영화라 감탄하면서 봤어요. 저도 언젠가는 장진 감독님과 꼭 한 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실연, 시한부 판정, 짝사랑. 눈물, 콧물 다 짜낼 러브스토리의 3요소를 장진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냈다. 그의 엉뚱한 유머 감각은 코미디의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을 세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연(이나영)에게서 멸종 위기에 처한 순정을 구해낸다. 2. (Tale Of Cinema)
2005년 | 홍상수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해요. 이 영화를 말하면 약간 파장이 있을 것 같은데 (웃음) 을 좋아해요. 다섯 번은 본 것 같아요. 영화가 굳이 꽉꽉 채우지 않아도 채워져 보일 수 있구나 라는 걸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느꼈어요. 와, 이런 영화가 있구나. 처음 시작할 때 카메라가 남산을 줌으로 땡겨요. 전 거기서부터 이미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됐어요. 김상경 선배님이 걷다가 여자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행진곡 음악이 나오는 것처럼 위트와 아이러니한 면에서 나도 이런 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참 배우로서의 생각이 생길 때 봐서 그런지 인상이 깊어요.”
극장에서 틀어준 영화, 그걸 보고 극장에서 나온 나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은 지금 자신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물음표를 던진다. 명료한 마침표나 단호한 느낌표가 아닌 공들인 물음표를 그려내는데 몰두했던 홍상수 감독의 대표작. 3. (The Charming Girl)
2005년 | 이윤기
“기본적으로 위트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처럼 조용한 영화도 좋아하죠. 특히 는 너무 공감하면서 봤어요. 여주인공이 그냥 평범하게 물을 마시는 장면도 감정전달이 될 수 있구나, 저 사람이 지금 무슨 감정으로 마시는지, 왜 그러는 건지가 느껴지더라구요. 흥행작이나 버라이어티한 느낌의 영화도 좋아하지만, 이런 작품을 찾으면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느낌이에요.”
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일터인 우체국에서 집으로 다시 우체국으로 느릿느릿 몸을 옮기는 정혜(김지수)처럼. 종종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화면에 담긴 위로는 상처 입은 채 여자가 된 수많은 정혜들에게 말을 건다. 다시 한 번 희망이란 걸 품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4. (Oldboy)
2003년 | 박찬욱
“도 꽤 오래 전에 본 영화인데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일단 너무나 좋아하고 훌륭한 선배님들의 연기가 다 있고, 특히 강혜정 선배님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지막에 “사랑해요, 아저씨”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와, 정말 대단하다’ 하면서 감탄했거든요. 그렇게 오묘하면서 어느 한 쪽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느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뭔가 굉장히 애매한 느낌이랄까요? 미도라는 캐릭터가 정말 멋있었어요.”
다양한 광고에서 여러 번 패러디됐을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 . 대수(최민식)가 감금되었던 독방의 어지러운 벽, 유리처럼 차가운 우진(유지태)의 공간과 속죄와 구원이 뒤섞여 내리는 설원까지 영화는 서사의 탄탄함과 공간의 탁월함이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제 57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5. (Sunny)
2011년 | 강형철
“에는 웃음과 재미와 슬픔이 있는데 그 분배가 칼 같이 딱 떨어지고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가요. 참 똑똑한 영화인 것 같아요. 저 또한 그 타이밍에 매료가 됐던 것 같아요. 마냥 재미있기도 하고요. 당연히 센스도 있구요. 병실에서 환자들이 막장 드라마 보다가 다 나가잖아요. (웃음) 그런 타이밍이 좋았아요. 영화를 자주 보지는 않는데 한 번 꽂히면 계속 보거든요. 도 누가 보러가자고 하면 또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는 타깃이 확실하고 그곳을 향한 명중률도 높은 편이다. 단짝친구 ‘써니’ 멤버들의 활약과 함께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올드 팝과 음악다방 등의 장치들은 80년대에 십대였을 많은 이들의 추억을 상기시키기 위해 물량 공세를 펼친다. 그래서 그 때 그 시절의 주인공들에게는 오래 전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준다. 영화 에서 공포의 재료가 된 아이돌의 삶은 그것을 연기하는 함은정에게는 일상이기도 하다. 메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걸그룹 멤버들 간의 경쟁을 그린 영화를 실제 아이돌은 어떻게 봤을까? “저는 솔직히 굳이 뭘 이렇게까지 할까 했어요. (웃음) 요즘에는 메인이란 말 자체를 안 쓰는데다가 진짜 실생활은 좀 다르거든요. 원더걸스도 ‘텔미’ 때는 소희 양이었다면, ‘노바디’ 때는 선예나 유빈 양이 드러나고 그런 거죠. 기다리다 보면 자기한테 맞는 곡이 온다니까요. (웃음)”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미쳐’에서 함은정만의 반전을 만들어 낸 그녀. “요부도 하고 싶고, 수녀도 하고 싶고, 위험한 역할도 하고 싶은” 욕심 많은 스물셋 아가씨가 기다림의 시간들을 정체가 아닌 숙성의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는 좋은 배우를 한 명 더 갖게 될 것이다.
글. 이지혜 sev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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