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조심! 이상한 개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풍산개가 그려진 북한 담배를 피우고 남한 오토바이를 타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이 글에서는 그냥 ‘풍산’이라 부르기로 하자. 서울에서 평양까지 단 3시간이면 왕복 가능, 이산가족들의 영상편지부터 북한의 숨은 유물, 심지어 보고 싶은 사람까지, 운송품목 제한도 없는 상상 밖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풍산(윤계상)은 말하자면 남과 북을 오가는 심야 퀵서비스맨이다. 어느 날 그는 국정원 요원들로부터 망명한 전 북한 고위간부 김종수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남으로 데려와 달라는 요청을 접수한다. 어두운 밤, 풍산의 손에 이끌려 포복과 잠수, 도약으로 이어지는 고된 탈출에 성공한 인옥은 그 사이 말없고 거친 이 남자를 마음에 품는다.
3시간은 남북 도시왕복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겠지만, 남녀 감정왕복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좋은 옷과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시켜주고 “손 안대고 똥구멍도 닦는” 남한이지만 인옥에게 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게다가 재회한 연인은 조국을 배신했다는 자책감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암살걱정에 신경쇠약직전의 노인이 되어있다. 특히 풍산에게로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눈치 챈 후 부터는 인옥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급기야 탈출과정에서 기절한 인옥을 풍산이 심폐소생술로 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질투에 사로잡힌 늙은이는 이렇게 따져 묻는다. “솔직히 말해! 키스야, 인공호흡이야?, 인공호흡이야, 키스야?” │개 조심! 이상한 개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
올해의 괴작, 이 개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개 조심! 이상한 개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
남과 북이 교배한 마지막 세대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지금. 3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는 이 작은 땅덩어리는 지난 50여 년간 총잡은 자들의 키스인지 인공호흡인지 모르는 뒤엉김 속에 ‘풍산’이라는 변종의 생명체를 잉태했다. “남이야? 북이야?” 이름도, 출신도, 목소리도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급기야 ‘아사리 개판’으로 관객들을 질질 끌고 간다. 남파 행동대원들의 용맹한 수령님 앞의 결의도, 국정원 요원들의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의 맹세도 다 소용없다. 그 죽음의 링 안에서는 빨간 개도, 파란 개도 그저 살겠다고 날뛸 뿐이다. 영화 후반부, 역사의 진통을 잠시 잊을 만큼 묘한 쾌감을 안겨주는 이 장면은 웃으려야 웃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다. 빨간 깃발과 푸른 깃발 사이를 무한 왕복하던 무색의 개 한마리만이 분노에 찬 슬픈 눈으로 지켜볼 뿐.
김기덕 감독이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는 그의 문하생이자 영화 로 데뷔한 전재홍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물론 에는 여러모로 김기덕의 혈통이 느껴진다. 나 에서 보았던 거친 맨살, 의 무식하고 강렬한 인상,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의 세계까지. 또한 가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인옥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김기덕의 초기작들이 그러했듯이 여성관객들의 따뜻한 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인옥과 풍산 그리고 김종수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기괴한 유머와 뜬금없는 로맨스, 매끄럽지 못한 대사들 사이에서 관객들은 종종 서성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기덕의 피는 2세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장르적 유전자를 장착했다. 그것이 개량인지 개악인지는 아직 확신 할 순 없다. 분명한 건 는 더 세고, 더 막가고, 급기야 더 재밌다는 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상한 개 한마리가 충무로에 튀어나왔다.
글.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이지혜 seven@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풍산개가 그려진 북한 담배를 피우고 남한 오토바이를 타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이 글에서는 그냥 ‘풍산’이라 부르기로 하자. 서울에서 평양까지 단 3시간이면 왕복 가능, 이산가족들의 영상편지부터 북한의 숨은 유물, 심지어 보고 싶은 사람까지, 운송품목 제한도 없는 상상 밖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풍산(윤계상)은 말하자면 남과 북을 오가는 심야 퀵서비스맨이다. 어느 날 그는 국정원 요원들로부터 망명한 전 북한 고위간부 김종수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남으로 데려와 달라는 요청을 접수한다. 어두운 밤, 풍산의 손에 이끌려 포복과 잠수, 도약으로 이어지는 고된 탈출에 성공한 인옥은 그 사이 말없고 거친 이 남자를 마음에 품는다.
3시간은 남북 도시왕복에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겠지만, 남녀 감정왕복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좋은 옷과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시켜주고 “손 안대고 똥구멍도 닦는” 남한이지만 인옥에게 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게다가 재회한 연인은 조국을 배신했다는 자책감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암살걱정에 신경쇠약직전의 노인이 되어있다. 특히 풍산에게로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눈치 챈 후 부터는 인옥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급기야 탈출과정에서 기절한 인옥을 풍산이 심폐소생술로 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질투에 사로잡힌 늙은이는 이렇게 따져 묻는다. “솔직히 말해! 키스야, 인공호흡이야?, 인공호흡이야, 키스야?” │개 조심! 이상한 개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
올해의 괴작, 이 개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개 조심! 이상한 개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
남과 북이 교배한 마지막 세대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지금. 3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는 이 작은 땅덩어리는 지난 50여 년간 총잡은 자들의 키스인지 인공호흡인지 모르는 뒤엉김 속에 ‘풍산’이라는 변종의 생명체를 잉태했다. “남이야? 북이야?” 이름도, 출신도, 목소리도 알 수 없는 이 남자는 급기야 ‘아사리 개판’으로 관객들을 질질 끌고 간다. 남파 행동대원들의 용맹한 수령님 앞의 결의도, 국정원 요원들의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의 맹세도 다 소용없다. 그 죽음의 링 안에서는 빨간 개도, 파란 개도 그저 살겠다고 날뛸 뿐이다. 영화 후반부, 역사의 진통을 잠시 잊을 만큼 묘한 쾌감을 안겨주는 이 장면은 웃으려야 웃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다. 빨간 깃발과 푸른 깃발 사이를 무한 왕복하던 무색의 개 한마리만이 분노에 찬 슬픈 눈으로 지켜볼 뿐.
김기덕 감독이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는 그의 문하생이자 영화 로 데뷔한 전재홍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물론 에는 여러모로 김기덕의 혈통이 느껴진다. 나 에서 보았던 거친 맨살, 의 무식하고 강렬한 인상, 판타지와 현실을 오가는 의 세계까지. 또한 가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인옥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김기덕의 초기작들이 그러했듯이 여성관객들의 따뜻한 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인옥과 풍산 그리고 김종수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기괴한 유머와 뜬금없는 로맨스, 매끄럽지 못한 대사들 사이에서 관객들은 종종 서성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기덕의 피는 2세대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장르적 유전자를 장착했다. 그것이 개량인지 개악인지는 아직 확신 할 순 없다. 분명한 건 는 더 세고, 더 막가고, 급기야 더 재밌다는 거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상한 개 한마리가 충무로에 튀어나왔다.
글.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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