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 속에 있는 우연이란 이런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도를 아십니까”를 만나 내 영혼이 얼마나 투명한지에 대해 설교를 듣고, 가장 추레한 몰골로 동네 슈퍼를 가는데 ‘우연히’ 10년 전에 좋아하던 동창을 만나는 것. 그러나 오늘도 우리의 드라마 주인공들은 우연히 기밀을 얻고,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일자리를 구해주고, 우연히 재벌2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무리 세상에는 온갖 일들이 벌어진다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우연이 일어나고, 등장인물들은 우연과 약간의 기지를 발휘해 중요한 정보들을 손쉽게 알아낸다. 그들은 멀리서도 회사내 직원들이 말하는 중요한 기밀을 쉽게 알아내고, 우연히 얻은 간단한 정보만으로 주인공의 비밀을 알아내기도 한다. 주인공이 들키지 않게 미행을 하거나, 스파이 뺨치는 모략은 기본이다. 드라마의 전개를 위해서라지만, 때때로 어떤 캐릭터들은 마치 탐정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MBC , MBC , KBS , KBS 등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탐정 사무소를 꾸렸다. 자, 당신은 누구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하고 싶은가.

장미리 탐정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호텔 A에 위장취업한 장미리 요원은 1급 탐정입니다. 호텔에서는 ‘Ms. 리플리’라는 예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이지만 타고난 공간감각으로 회사 안의 지리를 꿰뚫고, 장명훈 이사가 어디에 있든 쉽게 찾아냅니다. 저희끼리는 혹시 장미리 탐정이 장 이사의 몸에 GPS를 숨겨 놓은 게 아니냐는 얘기를 합니다만, 그런 방법은 구닥다리 방법이죠. 저희 스타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각종 고급 정보를 쉽게 얻습니다. 장미리 요원은 옥상에서 주로 직원들이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옥상에 있다가도 사람들이 올라오면 일단 벽 뒤로 숨는 필살기를 발휘합니다. 장미리 탐정은 청각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살려 얼마 전에는 일본 총리의 딸이 사라졌다는 일급 정보를 100m밖에서 입수했었죠. 누구라도 정보를 술술 뱉어내게 만드는 타고난 미인계가 그녀의 장점이죠. 요즘엔 재벌집 며느리 되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게장 바르는 연습하느라 일감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남자 때문에 다리가 찢어지겠다나요.

엄수정 탐정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좀 올드한 방법으로 탐문수사를 한다는 게 흠이긴 합니다만, 한 동네에 154명쯤 있는 아줌마 행색으로 절대 어떤 미행에서라도 들킬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부자들이 모여 사는 1번가인 ‘로맨스 타운’에 식모로 위장 취업한 상태입니다. 얼마 전에는 142억의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숨긴 채 식모로 일하고 있는 노순금씨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 미행을 했습니다. 엄수정 탐정은 거울을 통해 버스 뒷자리에 앉아있는 노순금씨의 동향을 살폈다고 하더군요. 만약 걸리면 잽싸게 거울을 보며 화장하는 척 하는 등 어디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게 미행을 합니다. 최근에는 복권을 산 편의점 직원을 심문하는데 약간의 구타를 동반해 과잉 심문 논란이 있었지만, 노순금씨가 식모들의 돈으로 구입한 복권이 1등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단독 입수했습니다. 결국 식모 넷이서 25억 원씩 나눠 갖고 한국을 떠나겠다고 저희 측에 통보한 상태입니다만, 얼마 전 사라진 75억 원의 행방을 찾게 해 달라고 다른 탐정을 고용한 상태입니다.

윤필주 탐정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아시다시피 이 분은 한의사십니다. 탐정은 투 잡으로 하시고 있죠. 굉장한 학구파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연애도 ‘최고의 사랑’이란 연애서적으로 익힐 정도니까요. 학자적인 면모를 탐정 활동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십니다. 논리력과 추리력이 장점인데, 추리력을 키우기 위해 퍼즐을 하고 계신다고 하시더군요. 얼마 전에는 배우 독고진씨가 생사를 가르는 심장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쾌거를 이루셨습니다. 윤필주 탐정은 독고진과 심장전문의가 저녁을 먹고 있다는 정보, 어머니로부터 독고진이 심장수술을 한 적이 있다는 정보만으로 결론을 유출해 냈습니다. 각종 논문을 찾아보고 담당의를 찾아가 심문을 해본 후 독고진이 심장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던 것이죠. 저희 사무실 명예 탐정들이 특히 아끼시는 탐정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추리력으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사건을 해결해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거든요.

강윤서 탐정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드라마 속 캐릭터는 모두 탐정들?
강윤서 탐정은 특히 함정파기에 발군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아는 사실도 모른 척 하여 당사자를 위기에 쳐하게 만들죠. 얼마 전에는 나이와 이름을 속이고 패션회사에 입사한 ‘동안미녀’ 이소영씨의 정체를 밝혀내는 성과를 올린 바 있습니다. 장례식 장에서 이소영씨의 예전 직장 상사를 만나 명함을 받고 그 사람에게 전화 한번만 걸면 이소진이 이소영이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던, 그야말로 아주 잘 풀린 사건이었죠. 얼마 전엔 이소영씨가 색약이라는 약사보다 더 빠르게 알아냈더군요. 바지 두 장도 겹쳐 입는 패션업계에서 다른 색깔 양말을 신는 게 크게 대숩니까? 근데 강윤서 탐정은 그걸 놓치지 않았단 말이죠. 눈에 안약을 넣는 이소영씨를 보고 색연필로 색깔 구분 실험을 해보는 여유까지! 강윤서 탐정은 여기서 한발 나아가서 사실이 어떻게 하면 극적으로 밝혀질지 그 방법까지 고민하는 인재중의 인재입니다. 장미리 탐정이 증언하기도 했죠. 같은 회사에 다니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글. 박소정 기자 nine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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