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카터 | 가장 도전적인 또는 가장 고전적인 재즈 베이스
론 카터 | 가장 도전적인 또는 가장 고전적인 재즈 베이스
미국 재즈 베이스의 거장 론 카터가 기타리스트 러셀 말론, 피아니스트 멀그루 밀러와 함께 ‘골든 스트라이커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6월 21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펼친다. 공연을 앞두고 ‘재즈 애호가’ 황덕호 씨가 론 카터와 그의 음악세계에 대한 자세한 글을 에 보냈다. 평소 론카터의 음악을 사랑해왔거나 관심을 가졌던 독자 10분을 트위터(@10asia_)를 통해 이번 공연에 초대하는 이벤트도 있으니 잊지 말고 참여하시길.(편집자 주)

론 카터의 베이스를 듣는다는 것은 피아노로 비유하지면 빌 에번스, 매코이 타이너, 허비 행콕, 칙 코리아의 연주를 듣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1940년대 중반 비밥이라는 이름의 모던재즈가 만들어지고 나서 대략 15년 뒤 이 음악이 자신의 틀을 근본적으로 버리지는 않은 채 새로운 갈래들을 만들어 나가려고 할 때 위에 열거한 피아니스트들 그리고 드러머 폴 모션, 엘빈 존스, 토니 윌리엄스 그리고 베이시스트 스콧 라파로, 지미 개리슨 등은 재즈의 토대(리듬과 화성)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일으킨 주역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론 카터의 이름도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다.

론 카터, 모던 재즈 베이스의 전형

비밥 시대의 베이스 주자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코드 진행을 쫓아 독주자들이 나갈 수 있는 길을 촘촘하게 제시해 주었다. 바리톤 색소폰 연주자 제리 멀리건의 말대로 베이스 주자는 즉흥연주의 원천이었다.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지미 블랜턴 이후 유능한 베이스 주자들에게는 파격적인 솔로 기회가 주어짐으로써 그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밴드의 화성적 토대와 리듬을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역할은 여전히 베이스 주자들의 몫이었다. 탁월한 독주자이기도 했던 오스카 페티포드, 레이 브라운, 샘 존스, 폴 체임버스, 심지어 보다 전위적인 어법을 추구했던 찰스 밍거스까지도 여전히 지미 블랜턴의 후예들이었다. 1950년대의 론 카터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그 역시 베이스란 악기로 음악의 토대를 튼튼히 만들면서 솔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화려한 기교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론 카터 | 가장 도전적인 또는 가장 고전적인 재즈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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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미국 미시건 주에서 태어난 론 카터는 네 살 때부터 디트로이트에서 성장했다. 당시 디트로이트의 음악적 풍토는 비옥했다. 행크 존스를 비롯한 그의 형제들(새드, 엘빈), 페퍼 애덤스, 토미 플레네건, 케니 버렐, 폴 체임버스 등이 한 도시에 자라면서 훗날 소위 ‘디트로이트 악파’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많은 흑인 베이스 연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카터 역시 처음에는 첼로로 음악을 시작해, 디트로이트를 떠나 뉴욕으로 무대를 옮기기 전까지도 이스트먼 음악학교 교향악단에서 연주했다.

하지만 선배 베이스 주자들이 모두 느꼈던 것처럼 흑인 연주자로서 고전음악계에서 활동하는 것에 장벽을 느낀 카터는 베이스와 재즈에 대한 관심을 점차 갖게 되었고 1959년 학교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치코 해밀턴 퀸텟의 일원(이때 젊은 색소폰 주자 에릭 돌피도 이 밴드의 일원이었다)으로 활동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재즈맨으로서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 첼로와 베이스를 모두 연주할 줄 아는 그의 능력은 ‘재즈 실내악’을 지향했던 해밀턴의 의도와 정확하게 부합했다. 해밀턴 퀸텟이 그들의 본고장이었던 LA로 돌아가자 밴드를 탈퇴하고 뉴욕의 프리랜서 연주자로 남은 그는 돈 엘리스, 셀로니어스 멍크, 바비 티먼스, 랜디 웨스턴, 재키 바이야드 등과 연주했는데 이 무렵 발표되었던 그의 1961년 음반 < Where? >는 당시 그의 탁월한 기량을 화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음반에서 카터는 베이스와 첼로를 모두 연주하면서 피치카토와 보잉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아울러 연주의 스타일은 과거 오스카 페티포드, 레이 브라운, 샘 존스가 추구했던 것과 유사한 것으로, 비록 에릭 돌피와의 1960년대의 전위성을 표출하고 있지만 비트를 한껏 늦춘 그의 리듬감은 당시 모던 재즈 베이스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터는 재즈 베이스의 기본 어법을 견고하게 다진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론 카터와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 베이스의 전복

카터 음악의 분수령은 1963년에 이루어진다. 당시 그는 아트 파머 쿼텟에 가입했는데 이때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를 떠나게 된 폴 체임버스는 자신의 후임으로 카터를 마일스에게 추천한 것이다. 그의 연주에 매료된 마일스는 파머를 설득해(마일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파머는 카터를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카터를 자신의 오중주단으로 끌어왔는데 이렇게 해서 형성된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리듬섹션, 다시 말해 허비 행콕-론 카터-토니 윌리엄스로 형성된 사운드가 재즈 전반의 토대를 뒤흔들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당시에는 없었다.
론 카터 | 가장 도전적인 또는 가장 고전적인 재즈 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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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연주는 조성과 기본 리듬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분방하게 각자의 길을 찾아가면서 서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행콕의 컴핑은 가장 필요한 곳에서만 간결하게 등장했으며 이때 카터는 기본 코드와 비트, 저음부의 지탱이라는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 나갔다. 그것은 카터보다 조금 앞서서 리듬섹션의 자유를 추구했던 스콧 라파로(빌 에번스 트리오), 지미 개리슨(존 콜트레인 쿼텟)과도 다른 방식이었다. 라파로, 개리슨의 자유가 비교적 자신들의 솔로 연주 때 구현됐다면 카터는 솔로주자를 반주해 줄 때도 자신의 독자적인 즉흥성을 보다 확장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베이스 명인들과 카터 사이에 그어진 명확한 선이었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훗날 일렉트릭 베이스로 이를 구현한 자코 패스토리우스가 출현할 수 있는 길목을 마련한 것이기도 했다.

동시에 카터의 베이스는 그 비트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베이스 연주가 액센트를 뒤에 둠으로써 스윙 느낌을 만들어 내려 했다면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의 카터는 비트의 정점에 강세를 둠으로써 마치 베이스가 급히 음악을 이끌고 가는 것 같은 긴장감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재즈 베이스의 전복이었으며 1959년 오넷 콜먼의 프리 재즈에서 찰리 헤이든이 들려주었던 비트가 주류 재즈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짐 홀과 바흐, 론 카터의 무한확장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의 5년간의 연주를 통해 카터가 습득한 것은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를 세심히 경청하면서 만들어 내는 상호작용이었다. 그는 이러한 연주 방식을 허비 행콕이 이끌었던 V.S.O.P.(이 그룹은 마일스 퀸텟의 멤버들이었던 웨인 쇼터-행콕-카터-윌리엄스에 트럼펫 주자 프레디 허바드가 함께 했던 그룹이었다)에서도 계속 이어갔지만 이를 토대로 카터가 완성한 독자적인 결실은 기타리스트 짐 홀과의 2중주에서 무르익었다.

마일스 밴드 직전 아트 파머 쿼텟에서 만난 이들 두 현악기의 명인은(아울러 이들은 모두 치코 해밀턴 밴드에서 연주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마치 연주의 회로를 서로 읽고 있듯이 상대방의 소리에 영민하게 반응하면서 즉흥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짐 홀의 입장에서 그것은 빌 에반스와 시도했던 인터플레이의 연장이었으며 론 카터는 이를 통해 베이시스트로서의 표현력에 있어서 무한한 확장을 가져다주었다. 짐 홀과 석 장의 음반을 간헐적으로 녹음하면서 카터는 레드 미첼과 더불어 2중주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베이스 주자가 되었으며 그의 2중주 레코딩은 테너 색소폰 주자 휴스턴 퍼슨과의 일련의 녹음을 통해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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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터의 음악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경향은 그의 음악적 기초를 마련했던 고전음악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그는 J. S. 바흐의 음악을 깊이 연구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을 베이스와 피콜로 베이스 독주로 녹음했고(필립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을 자신의 베이스 즉흥연주와 현악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녹음하기도 했다(블루노트). 다분히 주관적인 추측이지만 만약 모던 재즈 쿼텟에 퍼시 히스라는 확고한 베이스 주자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카터가 그 후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만큼 그는 바로크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보다 넓게는 자신의 밴드에 실내악적인 성격을 부여했는데 이는 멀게는 치코 해밀턴 밴드의 사운드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정교한 상호작용의 방식으로부터 쌓여온 결과라고 보인다.

‘골든 스트라이커’로 돌아온 론 카터

그런 점에서 그가 2003년에 피아니스트 멀그루 밀러와 기타리스트 러셀 멀론과 함께 녹음한 < The Golden Striker >(블루노트)는 카터 음악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음반은 냇 킹 콜 이래로 아트 테이텀, 오스카 피터슨, 아마드 자말, 레이 브라운, 베니 그린이 선호하던 피아노 트리오의 독특한 사운드로, 피아노-기타-베이스의 실내악적 편성(이는 보통의 트리오와는 달리 드럼 대신에 기타가 포함되어 있다)은 재즈 명인들에 의해 한결같이 정교한 앙상블과 깊은 스윙을 만들어 왔다.

특히 카터와 함께 한 두 연주자는 이 편성의 최적의 사이드맨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멀그루 밀러는 1970년대 카터와 자주 연주했던 피아노의 대가 매코이 타이너의 전통을 이어 받아 풍부한 화성과 화려한 기교를 지녔고 여기에 베이시스트 닐스-헤닝 오르스테드 페데르센과 듀오로 팀을 이뤘을 만큼(이들 듀오는 국내 무대에서도 연주했다) 예리한 인터플레이를 구사하는 일급 피아니스트이다. 기타리스트 러셀 멀론은 깊은 스윙을 갖고 있는 정통파 연주자이면서도 레이 브라운의 마지막 트리오(피아니스트는 몬티 알렉산더)와 베니 그린 트리오, 다이애나 크롤 트리오(이상 베이시스트는 크리스천 맥브라이드)에서도 예외 없이 그를 불렀을 만큼 드럼 없는 피아노 트리오 편성에서 최고 적임자로 꼽히는 기타리스트다.

이 음반에서 누구보다도 매력적이었던 것은 리더인 론 카터이다. 그의 정확한 음정과 리듬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정평이 나있었지만 과거 자신의 베이스 음색을 다소 과장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드럽고 안정되게 울리는 그의 음색은 밀러와 멀론의 사이에서 중후한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 연주자의 긴장감 넘치는 즉흥적 대화에서부터 바로크적인 대위법 그리고 풍성한 화음과 스윙 등 론 카터가 지난 반세기 동안 추구했던 음악적 어법이 간결하게 농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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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숙성된 명품 이상의 명품

어느덧 그 역시 74세의 고령의 연주자가 됨에 따라 이러한 음악적 성향은 현재 30~40대의 연주자들이 주도하는 재즈계에서는 다소 멀어진 형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재즈의 매력 중의 하나가 시대를 불문하고 영원히 통용될 수 있는 고전적인 언어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라면 < The Golden Striker >는 두말할 나위 없는 명연이다. 심지어 이러한 연주는 스피드와 강한 비트를 추구하는 지금 재즈의 경향을 놓고 봤을 때 안타깝게도 흔히 들을 수 없는 스타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오스카 피터슨이 강조했듯이 만약 우리가 재즈의 여러 스타일을 유행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론 카터 트리오의 연주를 통해 각 악기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음색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재즈란 음악이 지난 세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여러 실핏줄을 통해 너무도 풍부한 어법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과거 듀크 엘링턴, 빌리 엑스타인, 덱스터 고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론 카터의 풍모(그는 늘 검은 색 혹은 갈색 정장과 여기에 산뜻하게 어울리는 넥타이와 손수건 그리고 구두를 착용하며 가끔 굵은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다)는 최고의 연주를 청중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그의 심성, 심미안이 발현된 것임을 이 음악은 말해주고 있다.

명품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요즘이지만 그 말이 론 카터 트리오 연주에 붙여진다면 이 용어는 오랜만에 본연의 품위를 되찾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세계 대전 때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 남부의 한 농촌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정성스레 만들어진 한 병의 포도주와도 같다. 격전지와도 같은 살벌한 뉴욕 재즈계에서 지난 50년간 고군분투한 카터이지만 그 노장의 손끝에서 영근 음악은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정치(精緻)한 실내악이 되어 영롱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반세기 동안 숙성된 카터의 포도주는 오는 6월 21일 우리 앞에서 드디어 그 코르크를 열 예정이다.

사진제공, 서던스타엔터테인먼트

글. 황덕호 (재즈 애호가)
편집. 고경석 기자 k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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