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100퍼센트] <최고의 사랑>,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하여
,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하여" />
MBC 의 구애정(공효진)은 홍자매의 작품들 중 가장 독특한 여주인공이다. 유일하게 정신적, 사회적인 ‘어른’이기 때문이다. 홍자매의 초기작 KBS 의 성춘향(한채영)과 SBS 의 주유린(이다해)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을 벌려는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었고, 할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하던 KBS 의 허이녹(성유리)은 세상 물정 모르고 열심히 돈만 버는 소녀 가장에 가까웠다. 전설 속에서 튀어나온 SBS 의 구미호(신민아)와 수녀원에서 나온 SBS 의 고미녀(박신혜)는 아예 세상 경험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MBC 의 나상실(한예슬)은 비정한 사업가였지만, 기억상실과 함께 장철수(오지호)가 아니면 사회생활이 어려운 여자가 된다. 오직 구애정만이, 산다는 것의 힘겨움을 안다.

기억을 잃은 뒤 나상실은 자장면의 맛을 처음 맛 본 것처럼 행동한다. 반면 구애정은 윤필주(윤계상)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가 ‘스폰서 제안’을 하려는 줄 알고 소란을 피운다. 나상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구애정은 너무 많이 안다. 알기 때문에 옛 매니저가 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뺨을 때려도 참고, ‘국민 비호감’으로 낙인찍혀도 그 이미지로 예능 프로그램 고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일터는 전쟁터의 또 다른 이름이고, 조카는 자신에 대해 ‘걸레’라고 하는 악플을 본다. 하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떠날 수 없다. 구애정은 이미 이 모든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할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다.

구애정, 홍자매 월드에 최초로 등장한 어른
[강명석의 100퍼센트] <최고의 사랑>,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하여
,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하여" />
구애정을 통해 은 홍자매의 전작들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에서 허이녹은 홍길동(강지환)과 사랑에 빠진 뒤 세상에 대한 눈을 뜬다. 하지만 이미 연애도 해봤고, 상처도 입었고, 그래도 여전히 연예계에서 일해야 하는 구애정은 독고진(차승원)의 고백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같은 연예계일지라도 는 어른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그룹 에이엔젤의 숙소에서 벌어지는 그들만의 사랑이야기였고,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아는 순간 두근거림이 있었다. 반면 은 구애정이 모든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에 “꽃”을 피게 한 독고진의 마음에 한발씩 다가설 때 심장을 뛰게 한다. 구애정의 주변 사람들이 독고진 대신 윤필주를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안전하고 편안하고 흔들림이 없”는 윤필주의 조건이라는 점은 홍자매의 작품들 중 처음 있는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이나 성품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조건이 애정의 조건에 포함됐다.

구애정은 성춘향이나 주유린처럼 이제 막 세상에 나선 것도, 나상실이나 구미호처럼 세상살이의 힘겨움을 기억 상실이나 판타지의 저편으로 날려버리지도 않았다. 대신 세상과 부딪치고, 굴욕을 견뎌내고, 가족을 보호한다. 은 홍자매가 일하는 여성의 힘겨움을 직시한 첫 작품이고, 구애정은 홍자매의 세계에 드디어 등장한 어떤 여성상이다. 구애정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덤블링이라도 하면서 연예계 생활을 계속하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돈을 쉽게 벌 수 있을지라도 스폰서 제안은 단박에 거절하고, 윤필주가 현실적으로 훨씬 좋은 신랑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독고진을 향해 한 발씩 걸어간다. 드라마 초반 독고진이 구애정에게 흔들리던 순간이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을 하는 구애정의 태도였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구애정은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자, 윤리적인 직장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자체가 남자에게 어필하는 매력이 된다.

어른들의 현실을 견뎌낼 위로를 건네는
[강명석의 100퍼센트] <최고의 사랑>,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하여
, 세상 모든 어른들을 위하여" />
공효진이 구애정이 된 것은 다만 그가 못나가는 연예인의 일상을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MBC 에서 동생을 뒷바라지하던 치어리더였고, MBC 에서 에이즈에 걸린 딸을 혼자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했으며, MBC 에서 일과 사랑 모두에 최선을 다하는 풋내기 요리사였다. 공효진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고, 동시에 자존감을 지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하는 여자의 생을 보여준다. 구미호처럼 아름답던 신민아에서 ‘국민 비호감’이라는 말에도 개의치 않는 캐릭터의 아픈 마음을 연기하는 공효진으로 주인공이 바뀌었다. 그 스스로도 쉼 없이 일하던 홍자매는, 일하는 여자의 현실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갔다.

그리고 홍자매는 을 통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독고진은 영화 시상식에서 레드 카펫을 걸어야 하는 구애정에게 말한다. “레드 카펫은 자신감으로 걷는 거야. 이 세상에서 니가 가장 제일 잘난 사람이라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은 수 없이 나를 무릎 꿇린다. 하지만 은 우리의 등을 토닥인다. 그래도 너는 멋진 사람이라고. 너는 자존심을 지킬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의 판타지가 주는 위안 대신 어른들의 현실을 견뎌낼 위로. 에서 홍자매가 보여준 변화는, 그리고 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그만큼 힘겨운 삶을 견뎌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성춘향처럼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보려고 하기도 했고, 허이녹처럼 현실에 눈뜨고 오열하기도 했다. 나상실처럼 기억을 잃은 채 고미녀나 구미호처럼 현실을 잊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변하지 않고, 우리는 구애정처럼 일하고, 상처받는 사이 그리 쉽지 않은 사랑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생의 에너지를 ‘충전’할 기회를 얻는다. 톱스타와 능력 있는 한의사 사이에서 ‘신데렐라’가 되는 것마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며 주저할 수밖에 없는 세상. 정말, 일하는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