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그가 강민호를 연기한 것이 어떤 일탈은 아니다. “마니악한 작품을 좋아하지만 너무 한 쪽에 빠지는 게 싫어 거기서 조금 벗어난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열정적인 배우에게 강민호 같은 인물이 들어올 자리는 언제나 준비된 법이다. 다시 말해 박준세와 차천수에서 빛을 발한 배수빈의 강직한 태도는 역설적으로 자신과 다른 안재성이나 강민호 같은 인물을 연기해내는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때문에 그가 눈을 빛내며 찬사를 보낸, 영화계의 수많은 마스터피스와 거장에 대한 마음가짐은 앞으로 그가 보여줄 연기적 스펙트럼에 대한 단초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연기자로서 이런 작품 하나만 해보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배수빈이 오래 두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시대의 마스터피스들이다.

1960년 | 르네 클레망
“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는데 저는 가 더 좋아요. 알랭 들롱이라는 배우의 존재감 때문만은 아니에요. 영화 자체가 더 세련됐어요.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에 만들었는데도 더 긴장감 있고 더 재밌어요. 할리우드식으로 풀어내지 않고 툭툭 묻어나오는 세련됨, 그리고 옷과 소품, 연출 같은 것들이 정말 지금 봐도 어색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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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 끌로드 를르슈
“무엇보다 스토리를 영상미로 너무나 잘 풀어낸 영화죠. 장면 하나하나가 다 사진 작품이에요. 바닷가에서 끌고 가는 거나, 아이 손잡고 가는 장면들이 하나하나 기가 막혀요. 그렇게 아름다운 영상이라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본 것 같으면서도 드라마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요. 굳이 이야기 전개나 안(아누크 에메)과 장(장-루이 트린티냥)의 캐릭터를 분석하며 보지 않고 영상에 홀려 보더라도요. 그런 면에서 진짜 명작인 거 같아요.”
남편을 사고사로 보낸 여자,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자살한 것에 마음 아파하는 남자가 만나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호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과거로부터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는 이렇게 과거의 상처와 그 상처를 봉합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컬러와 흑백을 오가는 감각적 영상으로 풀어낸다. 특히 마지막에 기차와 자동차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던 남과 여의 모습을 번갈아보여주다가 다시 만나는 장면은 해피엔딩 이상의 감동을 준다.

1988년 | 쥬세페 토르나토레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죠. 제가 영화에 출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보기에 너무 아름다운 영화에요. 그 자체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 거잖아요. 영화에 대한 애정을 통해 성장하고, 그것이 추억을 환기해주고. 그 주제의식을 굉장히 대중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낸 작품이에요. 제3세계 영화 같은 것도 참 좋지만 이렇게 흥행에만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요소까지 잘 녹여낸 작품들을 정말 동경해요.”
영화 좀 좋아한다는 사람 치고, TV에서 수없이 방영해준 을 안 본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어린 시절의 토토와 알프레도 아저씨가 영화를 매개로 만들어간 우정을 초월한 우정이나, 토토와 엘레나의 어긋난 사랑, 그리고 그토록 유명한, 키스신 필름을 돌리며 감격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어느 하나 익숙하지 않은 것이 없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또 보면 재밌고 결국 마지막에 울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걸 걸작이라고 한다.

1991년 | 올리버 스톤
“올리버 스톤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작품이에요. 거기서의 발 킬머는 정말, 죽였죠. 거의 짐 모리슨 자체였죠. 환생한 줄 알았어요. 외모도 너무 똑같았지만, 짐 모리슨이라는 인물 특유의 반항기, 퇴폐적 태도, 천재성 같은 걸 자신의 연기로 모두 드러냈어요. 그가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까지. 음악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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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스티븐 스필버그
“이건 정말, 진짜 대단한 영화에요. 스티븐 스필버그도 너무나 대단한 감독인 게, 그분이 자기만의 예술적인 색깔을 못 내서 를 찍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본인도 얼마나 자기 색을 좀 더 드러내고 싶었겠어요. 그걸 지키는 동시에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스스로 다투면서 이런 걸작을 만들어냈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언제 봐도 과거에 보던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나는 SF 걸작이 만들어지는 거죠.”
1994년, 스티븐 스필버그는 카젠버그,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를 창립했다. 만약 영화가 정말 드림웍스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면, 그건 스필버그가 만든 와 같은 영화 덕분일 것이다. 급속도로 발전한 최근의 CG도 이티와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고 밤하늘을 나는 장면만큼 환희를 주는 환상적 순간을 재현하긴 어려울 것이다. 지구를 떠났던 이티를 우리는 아직도 기다린다. 상업적이든 뭐든 꿈을 제대로 판다는 건, 이런 것이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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