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팍 도사’, 윤복희가 나왔는데 왜 묻지를 못하니
‘무릎 팍 도사’, 윤복희가 나왔는데 왜 묻지를 못하니
‘무릎 팍 도사’ 수 MBC 밤 11시 15분
“선생님, 오늘 선생님 성장기부터 ‘무릎 팍 도사’ 녹화장 오기까지의 인생사를 다 담아야 되거든요.” 강호동의 말을 문자 그대로 믿은 사람은 물론 없을 것이다. 60년 동안 무대를 지킨 ‘전설’ 윤복희의 인생을 다 담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본론은 살아남아도 소소한 각주들이 생략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믿기지 않는 데뷔 과정, 10살에 소녀 가장이 되어 가계를 책임져야 했던 사연, 루이 암스트롱을 만나고 BBC 방송에 출연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모험담들은 물론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이고, 윤복희를 설명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키워드다.

그러나 ‘무릎 팍 도사’는 딱 거기까지만 전진한다. ‘무릎 팍 도사’는 윤복희가 ‘여러분’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서 수상한 1979년 이후의 커리어는 언급을 하지 않고, 화급하게 ‘데뷔 60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으로 점프해 버린다. 공란으로 남겨진 그 자리는 두 번째 결혼에 대한 폭탄발언과 “입국할 때 미니스커트를 입었던 것은 아니”라는 헤드라인으로 쓰기 좋은 이슈들만 살아남았다. 결혼을 하면 내려올 줄 알았던 무대를 끝내 내려오지 못 하고 나의 모든 것으로 받아 들이게 된 과정은 충분히 설명될 기회를 잃었고, 그가 무대를 지킨 것은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소비된다. 그의 뮤지컬에 대한 애착도, 60대 중반에 “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려야지”라고 말하는 천진함도 언급 이상의 깊이를 지니지 못 하고 휘발되어 버렸다. ‘무릎 팍 도사’는 ‘전설’ 윤복희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집중하느라 ‘인간’ 윤복희의 오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묻지 못 했다. 이렇게 김빠지는 결과만 뽑아낼 거면 차라리 검색창에 윤복희를 치고 말지, 뭐 하러 돈 들여서 쇼를 만드는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

글. 이승한 fou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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