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검은자위가 유독 커다란 눈망울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피터 팬의 망토를 떠올리게 하는 의상 때문일까. 김새론은 요정 같은 소녀다. 부피감이라곤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몸은 날개 한 쌍만 돋아나면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처럼 가벼워 보이고, 최근 MBC 촬영을 마친 소감으로 “쉬면 연기하고 싶고, 연기하면 쉬고 싶고 그렇잖아요?”라는 현답을 내놓을 때는 아이의 얼굴로 백 살을 훌쩍 넘겨 살아온 요정 할머니가 아닌가 싶게 어른스럽다.

열두 살, 경이로운 배우의 등장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하지만 인간 세상 기준으로 2000년에 태어난 김새론은 올해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지난해 ‘원빈의 파트너’가 되어 스타덤에 오른 영화 로 알려졌지만 2009년 데뷔작 에서부터 이미 이 경이로운 어린 배우의 등장은 강렬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우니 르콩트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김새론은 그동안 ‘아역배우’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졌던 통통한 볼과 커다란 눈, 인형 같은 외모 대신 핼쑥한 얼굴에 외롭고 여린 짐승 같은 눈빛으로 “난 고아가 아니에요!”라 외친다.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거부하던 끝에 스스로 땅을 파고 들어가 흙을 덮고 눕는 순간까지 바닥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드러내던 진희의 얼굴은 어떤 대사나 눈물보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숨겨져 있던 보석의 발굴, 하지만 김새론이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한 것은 생후 9개월부터였다. 임부복 모델로 활동했던 엄마의 인연으로 아기 모델 일을 시작했고, “저한테 사람들이 쿨하다고 하시는데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요. 일단 그렇다고 할게요”라는 성격 덕분인지 어른들은 울지 않고 순한 아기인 김새론을 반겼다. 자연스럽게 MBC 를 비롯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중 문득 연기가 하고 싶어진 것은 여덟 살 무렵이었다. 방송 경력이 많은 친구들이 중심이 되어 연기를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생겨났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없었어요. 옛날에 6두품은 실력이 있어도 어쩔 수 없었던 것처럼.”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으로 절묘한 비유가 더해진다. 에서 아버지 역을 연기했던 설경구는 어린 새론에게 “네가 선택한 일이니까 힘들어도 잘 버텨내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될 때가 많다”던 그의 말은 동생들과 눈싸움하다 잔소리 한 번 한 것까지 인터넷에 오르내릴 만큼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치르는 김새론에게 중요한 가르침이 되었다.

“자는 신이라고 대충 하면 안 돼요, 그런 것도 다 연기잖아요”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김새론│심연의 눈을 가진 소녀
그래서 “의 진희는 슬픈 아이에요. 아빠가 나를 버리고 갔다는 현실을 믿지 않고 계속 기다리다가 끝내는 입양을 가게 되잖아요. 의 소미는 항상 혼자 있는 게 익숙했던 아이라서 슬프고, 의 ‘작은 미숙이’ 봉우리는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아빠를 지키려고 슬퍼도 안 슬픈 척 하는 거예요”라며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들의 미세한 차이를 잡아내는 김새론은 아이다운 직관과 프로다운 태도를 동시에 가졌다. 최근 개봉한 영화 에서는 심장 이식 수술을 기다리며 줄곧 병상에 누워 있거나 잠든 모습만을 보여주지만 소녀는 단호하다. “자는 신이라고 대충 하면 안 돼요. 그런 것도 다 연기잖아요.” 오늘 본 영어 시험 성적은 “80점만 넘으면 잘 본 거라 쳐도” 평생 배우로 살기 위해선 “항상 방심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열두 살, 김새론의 안에 있는 수많은 우주들을 우리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웬디보다는 피터 팬에, 신데렐라보다는 피노키오에 더 잘 어울리는 이 신기한 소녀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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