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의 10 Voice] <신기생뎐>, 속물근성도 병인 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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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과 서초구는 황족이고, 그 인근의 송파구는 왕족이다. 양천구는 강남권이 아님에도 성남시 분당구와 함께 중앙 귀족에 속하지만 양천구 옆의 강서구는 마포구, 영등포구 등이 포함된 지방 호족과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을 둔 중인에 불과하다. 노원구, 은평구, 중랑구는 평민 계급으로 분류된다는 데 자존심 상해할 수 있지만 ‘노비’ 계급에 속한 도봉구와 금천구만큼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 모인 자리에 가서 얘기했다가 뺨 맞기 딱 좋은 이 논리의 출처는 최근 DC 인사이드 ‘부동산 갤러리’에 올라와 빠르게 화제가 되었던 ‘2011년 수도권 계급표’다. 부동산 평당 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이 계급표의 최하단은 노비보다 아래인 ‘가축’이 차지한다. 상단에 등장하지 못한 ‘그 외 잡 시&군&구’가 여기에 속한다. 다르게 말하면 평당 가격이 1000만 원 이하인 지역들이다.

조선 말을 배경으로 한 MBC 에서는 양반의 딸이 천민의 아들에게 “글을 배운다 해서 네 근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부모의 신분과 상관없이 자식이 살아갈 수 있다. 아니, ‘신분’이라는 굴레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계급사회로 접어든 21세기에는 돈이 계급을 결정짓는다. 물론 부동산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사는 동네’가 돈을 의미하고 계급을 가르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 된다.

속물근성에서 태어난 편견을 정당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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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재벌가에서 전화를 받을 때 “여보세요” 대신 “성북동입니다”, “구기동입니다”라는 지명을 밝히는 방식으로 그 부유함을 구체화하곤 했다. 반면 1999년 방송된 MBC 의 주인공 재호(배용준)은 친구를 향해 “난 이 구로동이 싫어. 가난이 싫어. 못 배운 게 싫어. 근데 넌 다 갖췄어. 난 못 배우고 가난하고 구로동에 살아” 라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극 중에서 ‘구로동’은 가난이 지겨워 성공을 갈망하게 된 재호의 캐릭터를 보다 리얼하게 뒷받침하는 장치였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특정 지역을 부정적 이미지로 그렸다’며 항의했고, 노희경 작가는 “이 대사로 상처를 받으셨다면 죄송하다”며 이후 대본에서 지명을 빼기로 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이다. 성북동과 구기동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부촌이고, 구로동이 속한 구로구는 위의 계급표에 따르면 ‘평민’이다.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평가하는 데 있어 그가 사는 동네를 중요하게 여기고 자신이 사는 동네와 비교해 우위를 나눈다. 그러한 개인의 판단에 대해 타인이 옳고 그름을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구도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속물근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SBS 의 임성한 작가는 그러한 속물근성에서 기인한 편견들을 지극히 일상적으로 그려내며 정당화한다는 면에서 독보적인 작가다. 사업가의 외아들인 아다모(성훈)의 부유층 친구들 역시 가난한 여주인공 단사란(임수향)의 환경에 대해 “세천동이면, 싼 아파트 동네 아냐?”라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 단사란의 미팅 파트너였던 친구는 “사실 좀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우리 엄마는 좀 까다로우셔서 모든 면에서 웬만큼 갖춘 며느리를 보시려 한다”는 말로 마음을 접겠다는 의사를 드러낸다. 단사란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집들이에 가려는 아다모에게 다른 친구는 말한다. “너 같은 부르조아가? 32평, 아주 작아”.

돈과 사랑으로 그녀를 구원하리라
[최지은의 10 Voice] <신기생뎐>, 속물근성도 병인 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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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첫 데이트에서 단사란을 교외의 모텔로 데려가려 했다 뺨을 맞았던 아다모는 다시 단사란에게 “담백한 연애를 하자”고 제안하며 “조건, 이해타산, 아무 것도 계산하지 말고 그냥 감정에 충실해 보자”고 하지만 이 로맨스야말로 철저히 계산된 설정에서 시작된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SBS , MBC ,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가난하지만 단아하고 고고한 여성과 심지 굳은 부잣집 아들의 로맨스를 그려 온 임성한 작가는 에서도 비슷한 구도를 만들었다. 단사란은 아다모의 할머니 안방에서 출장 무용 공연으로 용돈을 벌며 무용단 취업을 걱정하고, 단사란의 계모 지화자(이숙)는 자신의 친딸 공주(백옥담)에게 승마를 가르친 이유가 “있는 집 남자 만나려면 그런 상류 취미를 같이 할 줄 알아야 되고, 그런 데 오는 능력 있는 남자 사귀라고 돈 대줬더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임성한 작가는 단지 빈부의 격차만이 존재했던 단사란과 아다모 사이에 또 하나의 계급적 장벽을 설치하는 것으로 기존의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단사란을 기생집 부용각의 기생으로 스카우트하려는 시도다.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성공한, 혹은 돈 많은 남성들의 술 상대를 하거나 기예를 보여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 속 기생은 ‘전통 문화’나 ‘일류’라는 단어로 간단히 포장되지 않는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비애가 담겨 있던 이현수 작가의 원작 소설과 달리 드라마는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된 어떤 품성들을 여성의 미덕인 양 강요하고, 과거 천민의 신분이었던 기생이라는 장치를 21세기로 끌어와 주인공 남녀의 계급차를 공고히 할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21세기에도 인간 사회에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단지 세천동 32평 아파트에 사는 단사란이 아다모의 아버지의 재력이 동반된 사랑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씁쓸할 뿐 아니라 이제 좀 지겹다.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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