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혜화,동>│후진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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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어린나이에 미혼모가 된 혜화(유다인)는 씩씩한 여자였다. 학업을 중단하고 미용기술을 배우면서도 뱃속의 아이가 커나가는 순간을 함께할 그 녀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세상 무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아빠인 한수(유연석)가 비겁하게 도망가고 난 후, 혜화에게는 말 할 수 없는 비밀이, 남몰래 숨겨놓고 싶은 아픔이 생겼다. 살아있지만 사는 게 아닌, 동서남북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삶을 살던 혜화에게 겨울(冬)이 찾아오고,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童)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5년 만에 한수가 찾아온다.
영화 <혜화,동>│후진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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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영화 <혜화,동>│후진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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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개봉을 앞둔 은 버려진 것들에 대한 영화다. 버려진 집에, 버려진 개가 숨어들고, 그곳에 또 버려진 사람이 찾아온다. “넌 왜 아무것도 안 물어?” 어떤 슬픔은 그 무게가 너무 커서 쉽게 말할 수도, 따져 물을 수 없다. 그저 검은 필름 통 안에 남몰래 모아진 깍은 손톱처럼 대부분 삶의 고통은 어두운 방안에 아무도 모르게 축적된다. 그러나 버리지 않고 모아놓은 손톱은 언젠가 이 아픔이 우연이라도 발견되기를 바라는 마지막 신호 같은 것이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라고, 살아있다고 외치지 않는다고 죽은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은 버려진 존재들에 대한 연민 속으로 침잠하기보다는 그 건너편의 사람에게 눈을 돌린다. “세상에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순간이 있다. 고스란히 나 혼자만 아팠다고 믿고 있던 날들이. 모두들 나를 등지고 떠났다고 느낀 시간이. 그러나 혼자 두려움에 떨었다고 생각한 나날 동안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도 공평히 아프다. 함께 행복했던 시간만큼 떠나간 사람들도 남겨진 사람과 함께 무서운 시간을 보낸다. 아니 어쩌면 떠났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 역시 남겨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선배 나 열나는 것 같아” 여우같은 작전으로 선배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캔 커피 광고 속에서의 첫 인상과는 달리 혜화를 연기하는 배우 유다인은 무심한 얼굴 속에 5년간의 상실과 복원의 과정을 곰처럼 우직하게 담아낸다. 또한 청춘의 생기와 청춘의 허망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유연석의 얼굴은 영화 의 어린 유지태와의 첫 대면 같은 기시감을 일으킨다. 생모의 얼굴을 모른 채 살아가야 하는 딸들. 어쩌면 대물림되었을 이 박복한 여자의 남은 삶에서 희망을 찾게 되는 건, 오히려 애써 외면한 지난 삶으로 향하는 후진기어를 넣는 순간이다. 너에게로 또다시 돌아오기까지가 왜 이리 힘들었을까. 고통을 이겨낸 후에 비로소 돌아간 과거는 더 이상 후퇴가 아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으로 미화된 미래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작지만 큰 움직임(動)인 것이다.

글. 백은하 o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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