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분하고 정연하게 작품 선택의 과정을 말하는 이 배우는, 요컨대 더 깊어졌다. 그런 그가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드는 로맨스 영화로 꼽은 작품들의 목록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아래의 영화들은 두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는 결말을 향해 무조건 달려가기보다는 사랑이라는 경험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 성장의 서사를 함께 경험해보자.

2009년 | 마크 웹
“최근에 본 중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예요. 특히 남자 시선으로 진행되는 로맨틱 코미디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좋았어요. 보다가 썸머를 보면서 주먹 쥐면서 ‘나쁜 계집애’ 이러기도 하고. 하하하. 영화 전체적으로도 다 마음에 들어요. 중간 중간 나오는 삽화라든지, 영화 처음 나오는 내레이션 등 아주 작은 디테일한 부분들까지요.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어텀” 이럴 땐 정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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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 리사 촐로덴코
“레즈비언 부부와 그 둘이 남자에게 정자를 기증 받아 낳은 아이들로 이뤄진 가족 이야기예요. 줄리앤 무어와 아네트 베닝이 부부로 나오는데, 정자를 기증했던 남자가 자신의 아이들을 찾아오자 그와 줄리앤 무어 사이에 교감이 오가요. 말하자면 줄리앤 무어가 바람을 피우는 건데, 결국에는 아들, 딸과 함께 다시금 원래 자리로 돌아가요. 레즈비언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그들의 사랑이 남녀 부부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라이트하게 다루죠.”
레즈비언 부부가 만든 가족공동체가 있고, 그들 아이들의 친부이자 이성애자인 남성이 그곳에 끼어든다. 하지만 을 이끄는 갈등은 소수자 대 다수자의 싸움이 아니다. 이 가족의 한 축인 줄스(줄리앤 무어)와 아이들의 친부 폴(마크 러팔로)이 사랑을 느끼면서 생기는 갈등은, 이성애자가 옳으냐 동성애자가 옳으냐의 차원이 아닌 가족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차원이다. 이러한 담백한 시선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 없이 레즈비언 부부의 가족애를 다수 이성애자들도 공감갈 수 있게 그려낸다.

1998년 | 이정향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획을 그은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할리우드에 비해 굉장히 정체성이 불분명한,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로맨틱 코미디가 많은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아 좋아요. 남녀 주인공이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서로를 변화시키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지죠. 도 이런 영화가 되면 좋겠는데, 정말 지금 봐도 재밌는 영화예요.”
미술관과 동물원, 그리고 관조하는 사랑과 보고 만지고 느끼는 사랑. 은 이처럼 춘희(심은하)와 철수(이성재)로 대표되는 두 가지 사랑의 방식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 중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식으로 사랑을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 속의 사랑은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치관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소통의 과정에 방점이 찍힌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미술관도 동물원도 아닌 ‘옆’일지 모른다.

2004년 | 리처드 링클레이터
“이 영화가 좋았던 게, 배우 입장에서는 롱테이트로 찍는 게 힘들어요. 감독도 힘들고. 하지만 저는 대사만 외울 수 있으면 롱테이크로 가는 게 배우의 연기를 더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이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이 재회해서 걸어가는 장면은 다 롱테이크이고, 대사도 배우들이 직접 다 썼다는데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고 졸린다고도 하는데 저는 배우라 그런지 굉장히 좋아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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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 로저 미첼
“좋은 로맨틱 코미디는 다시 봤을 때도 역시 재미있구나 싶은데, 이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사실 똑같은 영화를 두세 번 봐도 재미있다는 말이 나오긴 쉽지 않잖아요. 특히 로맨틱 코미디는 장르 특성상 둘의 사랑이 이뤄지는 결말이 어느 정도 정해진 거고요. 사실 그런 면에서 도 잘나가는 여배우와 평범한 서점 주인이 결국 사랑을 이룬다는 조금은 빤한 이야기인데 그 포장을 굉장히 잘한 거 같아요.”
남녀를 역전시켰다는 것을 제외하면 은 수없이 반복되어온 신데렐라 모티브를 충실히 따른다. 평범한 남자 윌리엄(휴 그랜트)과 인기 여배우 안나(줄리아 로버츠)가 우연히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수많은 신데렐라 스토리 중에서도 유독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건, 그 모티브의 진정한 힘, 즉 사랑은 계층과 돈에 상관없이 어느 순간 불가항력적으로 온다는 걸 명확하게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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