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다란│인생의 한 조각을 함께한 음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122817405138837_7.jpg)
“2007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억지로 다니다 휴학했어요. 아르바이트하면서 꿈도 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2008년 겨울에 만화가들이 하시는 러브툰 콘서트에 갔어요. 그분들을 실제로 뵙고 사인도 받다 보니 나도 이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비록 교과서 구석에 낙서로 사람 얼굴 밖에 그릴 줄 모르는 수준이었지만. (웃음)” 그리고 3개월 뒤, 첫 회를 그렸다. 태양이라는 뜻의 ‘해’, 혹은 바다 해(海)자에 ‘높다랗다’ 할 때의 ‘다란’을 붙여 만든 닉네임은 스스로 지었다. DC 인사이드 갤러리와 네이버 ‘도전 만화’ 코너에 만화를 올리자 독특한 캐릭터와 작법으로 입소문이 났고, 결국 네이버 웹툰 연재 제안을 받았다.
주인공 철구와 엄마 민경에서 시작해 그들의 다양한 주변인과 또 그 주변까지 이야기를 확장했다가 다시 철구와 민경으로 돌아오며 캐릭터와 소재를 펼쳐나가는 구성에 대해 해다란 작가는 “처음부터 그러려던 게 아니라 하다 보니 철구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역량이 부족해서 덧붙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철구의 후견인인 박사로부터 촌지를 받게 된 담임이 진지한 고민 끝에 봉투를 돌려보내는 훈훈한 에피소드의 마지막 컷을 철구의 명품 책가방으로 장식한 것 역시 아버지가 담임선생님께 드렸던 구두 상품권을 돌려받은 뒤 팔아서 용돈으로 썼던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제가 블랙 코미디를 그리는 건 이런 이유 같아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떤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거죠.” 민경의 친구 소람의 아버지인 연쇄살인범 김철철의 사형을 그린 에피소드처럼 웃으면서 따라가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깨달음을 얻고, 눈물겨운 사연을 가볍게 비튼 아이디어로 웃게 되는 의 깊이는 예사 내공이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좀처럼 짐작할 수 없는 해다란 작가가 자신의 인생의 한 조각을 함께한 음악들을 추천했다.
![해다란│인생의 한 조각을 함께한 음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122817405138837_2.jpg)
“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준 건 여덟 살 위의 오빠가 보던 만화책, 듣던 음악들, 그리고 신해철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이었어요. 에서는 인디 밴드 음악을 주로 들려줬는데 이 노래도 그때 처음 들었어요. 국내 밴드인데 가사는 전부 영어에요. 문법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사가 말하는 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언제라도 나는 네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죠.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고, 노래를 만든 사람에게 절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멜로디도 정말 좋으니까 꼭 한 번 들어보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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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노래를 들은 건 고3 때였는데 진짜 가슴에 와 닿았던 건 대학교를 휴학하고 지낼 때였어요. 가사가 ‘졸업하고 하는 일도 없고 목표의식도 없이 매일 PC방에서 밤새고 게임하고 악플 달다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다시 시작하자 일어나자’ 하는 내용인데 데뷔 전의 제 상황과 정말 잘 맞아떨어졌거든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되든 안 되든 만화에 도전해보자고 생각했죠. 세상에는 자기 꿈을 좇지 못하고 아예 한심하게 지내거나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혹시 그런 분들에게 자극이 필요하다면 가사를 열심히 들어보시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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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크라잉넛의 팬이에요. 그래서 에도 군데군데 ‘나는 크라잉넛 팬’이라고 암시한 게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철구의 엄마 친구인 주애 아버지의 이름을 ‘박윤식’으로 지은 거예요. 크라잉넛 보컬의 이름에서 따온 거죠. 그 캐릭터가 국회의원인데, 제가 좋아하는 분 이름을 쓰고 보니 썩은 정치인으로 묘사할 수가 없더라고요. 비록 탈모가 있긴 하지만 그건 캐릭터의 특성입니다. (웃음)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그 박윤식 씨가 예전에 활동했던 밴드 ‘관제탑’은 배철수 씨가 활동했던 ‘활주로’라는 밴드의 이름을 살짝 바꾼 거기도 해요. ‘안녕고래 (Bye Bye Whale)’는 대학교에 들어와 처음 대구에서 올라와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저의 BGM 같은 곡이에요. 이 노래를 들으면 서울 지하철이 복잡해서 힘들었던 기억, 학교 선배가 여의도 벚꽃축제나 코엑스, 인사동 같은 곳에 데려가 줬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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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댄스음악을 좋아해요. 요즘 댄스음악도 좋지만 후크송이나 단순하게 반복되는 가사들이 많은 게 아쉽죠. 세기말이나 2천 년대 초반에 나왔던 댄스 음악은 가사에 줄거리가 있었고 노래 부르는 사람과 노래에 나오는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었고 구체적인 연애 얘기가 많았잖아요. 딱 이 앨범만 좋아하는 건 아니고 핑클, 박지윤, 이정현, 김현정, 쿨, OPPA 노래도 좋아해요. 대한민국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가치 있는 음악들이잖아요. 아마 요즘 애들도 들으면 좋아할 텐데 이런 노래가 있는 줄 몰라서 못 듣는 게 아닐까.”
![해다란│인생의 한 조각을 함께한 음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122817405138837_6.jpg)
해다란 작가가 추천한 다섯 번째 음악은 독특하게도 클래식이다. 그것도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곡이라니,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의 추천은 사실 무엇보다 ‘철구다운’ 이유였다. “원래 클래식을 많이 듣지는 않아요. 음원 정액권을 사 놓고 남았을 때 한꺼번에 받아서 듣긴 하죠. 제목을 들으면 잘 모르지만 들어보면 익숙한 곡이 있는데 이 곡은 ‘슬픈 기억이 있을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를테면 연애가 잘 안 풀리는 사람들, 크리스마스를 솔로로 보내야 하거나 크리스마스 직전에 깨진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이니까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 끝간데 없이 우울해져 봅시다. 아, 저는 그런 경험 없어요.”
![해다란│인생의 한 조각을 함께한 음악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122817405138837_1.jpg)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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