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중요한 건 언제나 대본과 캐릭터에요. 영화의 모든 것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니까요.” 틴에이저 스타 출신의 금발 미녀 배우가 작품 선택에 대한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면 그저 진부한 모범 답안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우가 케이트 보스워스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음침하기 그지없는 범죄 스릴러 < 원더랜드>에서 발 킬머의 연인 역할을 맡은 이후로 그가 선택한 캐릭터의 목록은 점점 더 흥미로워졌다. < 비욘드 더 씨>의 은막의 스타 산드라 디, < 다섯번째 계절>의 하레 크리슈나 신자 찰리, 수퍼맨의 그늘 밑에서 안주하기를 거부하는 < 수퍼맨 리턴즈>의 로이스 레인, 극의 열쇠를 쥔 < 더 걸 인 더 파크>의 방황하는 청춘 루이스까지. 그의 행보는 안정적이라기보단 도전적으로 보였고, 비평적 성공을 거두지 못 할 때조차 그의 선택은 비범해 보였다.
어쩌면 젊은 배우의 오기로 볼 수도 있는 행보, 하지만 케이트 보스워스는 스타의 자의식보단 차근차근 연기를 배워 나가는 학생과 같은 근면함으로 12년차 여배우가 되었다. “작품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단언하고, 장동건과의 협연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나는 상대의 인종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은 배우인지를 볼 뿐”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배우로서의 오롯한 진심을 훼손하는 불순물을 찾기란 어렵다. 그리고 그는 배우로서의 진심으로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에 < 워리어스 웨이>를 추가했다. 케이트 보스워스가 연기한 서부소녀 린은 장동건이 연기한 과묵한 전사에게 사람다운 온기를 불어 넣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등장인물 중 가장 폭넓은 영역의 감정을 자연스레 넘나드는 케이트 보스워스는 < 워리어스 웨이>로 자신의 근면한 도전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여배우가 골라 준 다섯 편의 영화 역시,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들이 빛나는 작품들이었다.< #10_LINE#> 1. <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년 | 브라이언 싱어
“전 새롭고 독창적인 캐릭터와 대본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특히나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스릴러 < 유주얼 서스펙트>가 제겐 그런 작품이에요. <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고 난 이후로 케빈 스페이시의 열렬한 팬이 되었지요.”
9천만 달러가 증발한 유혈극의 유일한 생존자 버벌 칸트(케빈 스페이시)의 증언을 따라가는 < 유주얼 서스펙트>는 차근차근 쌓아 올린 스토리를 마지막 순간 단번에 뒤집어 버리는 반전의 쾌감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 이후 수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반전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앓게 할 정도로 < 유주얼 서스펙트>가 가져 온 충격은 강력했다. 이야기꾼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연기 귀신 케빈 스페이시,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문법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 같은 영화. 2. < 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
2003년 | 안소니 밍겔라
“린은 말괄량이에 톰보이 같은 캐릭터이지만, 사랑스러운 면을 지닌 캐릭터지요. < 콜드 마운틴>은 < 워리어스 웨이>에 캐스팅 된 후, 린의 캐릭터 연구를 위해 봤던 작품이에요. 르네 젤위거는 < 콜드 마운틴>에서 활달하면서도 강인한 여인 루비를 생생하게 연기했어요. 르네의 연기를 눈여겨보다가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 들었지요.”
연인을 만나기 위해 탈영한 남부 병사 인만(주드 로)과 그의 연인 아이다(니콜 키드먼)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 콜드 마운틴>은 시종일관 서늘하다. 절망으로 앙상해진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데 충실한 < 콜드 마운틴>에 활기를 불어 넣는 것은 르네 젤위거가 연기한 산골 여인 루비다. 속사포 같은 대사로 산 속에서 지켜야 할 생존 규칙을 내뱉는 루비는 저돌적인 생존본능을 보여주며 생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서늘한 영화를 잠시나마 뜨겁게 달구는 몇 안 되는 캐릭터다. 3. < 수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년 | 브라이언 싱어
“수퍼맨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로이스 레인은 그 영웅을 구하는 여인이죠. 그게 바로 저였어요. (웃음) < 수퍼맨 리턴즈>는 제가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등장하고, 사랑으로 그 영웅을 구원하는 여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 워리어스 웨이>와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그런 매력적인 여인을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작품이었지요.”
5년 만에 돌아온 수퍼맨(브랜든 라우스)에게 메트로폴리스에서의 삶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의 연인 로이스 레인은 ‘우리는 왜 더 이상 수퍼맨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란 제목의 에세이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새 연인과 함께 다섯 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영영 멀어진 줄만 알았던 로이스는 수퍼맨이 쓰러진 순간 사랑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원작에 대한 경외심과 팬보이적인 열정으로 완성해 낸 < 수퍼맨 리턴즈>에서 로이스 레인은 강인하지만 섬세한 싱글맘으로 재해석되었다. 4. <300> (300)
2006년 | 잭 스나이더
“흔히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들 하는데, 그래서인지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해요. <300>은 너무나 전통적이고 익숙한 이야기를 너무나 새롭게 보여준 작품이라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프랭크 밀러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 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은 책에 묘사된 장면들을 필름 위에 그대로 옮기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스파르타인들의 애국심을 프랭크 밀러는 테스토스테론이 가득한 수컷들의 탐미적인 싸움으로 재해석했고, 배우들의 복근과 화면을 아로새기는 피의 향연으로 구현된 영화 <300>은 인간의 육체로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의 찬미를 완성했다. 5. < 아멜리에>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2001년 | 장-피에르 주네
“사랑스런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독특한 분위기의 판타지를 그린 영화라서, 보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에요. 제 작품들도 관객들이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랜 파트너 마르크 카로와 헤어진 후 장-피에르 주네가 선보인 작품 < 아멜리에>는 그의 현란한 색채 감각과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재구현한 파리의 풍경이 아름다운 영화다. 어릴 적부터 밖에 나가는 걸 금지 당했던 소녀, 언제나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는 늙은 화가, 즉석 사진기 밑에 떨어진 증명사진을 모으는 괴짜 청년 등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등장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10_LINE#> 인터뷰 중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케이트 보스워스는 “나는 변화와 환기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의 무모한 도전 같았던 필모그래피가 이해가 갔다.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안전한 배역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성취한 자리에서 항상 그 너머의 지점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후반 작업에 들어간 그의 새 작품 목록 중엔 첫 장편 데뷔를 하는 감독들의 작품도 두 편이나 들어 있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첫 장편을 찍는 감독들의 에너지를 사랑해요! 현장에서 함께 일하면 그 에너지가 내게도 전염되는 걸 느끼죠.” 신작 이야기를 꺼낼 때는 자동반사처럼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케이트 보스워스는 벌써 새로운 도전에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우리가 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할 때쯤, 그는 우리의 지레짐작보다 한 발 더 앞으로 걸어 나가 있을지 모른다. 뒤돌아보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어쩌면 젊은 배우의 오기로 볼 수도 있는 행보, 하지만 케이트 보스워스는 스타의 자의식보단 차근차근 연기를 배워 나가는 학생과 같은 근면함으로 12년차 여배우가 되었다. “작품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단언하고, 장동건과의 협연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 “나는 상대의 인종이 아니라 그 사람이 좋은 배우인지를 볼 뿐”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배우로서의 오롯한 진심을 훼손하는 불순물을 찾기란 어렵다. 그리고 그는 배우로서의 진심으로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에 < 워리어스 웨이>를 추가했다. 케이트 보스워스가 연기한 서부소녀 린은 장동건이 연기한 과묵한 전사에게 사람다운 온기를 불어 넣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등장인물 중 가장 폭넓은 영역의 감정을 자연스레 넘나드는 케이트 보스워스는 < 워리어스 웨이>로 자신의 근면한 도전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여배우가 골라 준 다섯 편의 영화 역시,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들이 빛나는 작품들이었다.< #10_LINE#> 1. <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
1995년 | 브라이언 싱어
“전 새롭고 독창적인 캐릭터와 대본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특히나 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스릴러 < 유주얼 서스펙트>가 제겐 그런 작품이에요. <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고 난 이후로 케빈 스페이시의 열렬한 팬이 되었지요.”
9천만 달러가 증발한 유혈극의 유일한 생존자 버벌 칸트(케빈 스페이시)의 증언을 따라가는 < 유주얼 서스펙트>는 차근차근 쌓아 올린 스토리를 마지막 순간 단번에 뒤집어 버리는 반전의 쾌감으로 화제가 되었다. 그 이후 수많은 스릴러 영화들이 반전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부작용까지 앓게 할 정도로 < 유주얼 서스펙트>가 가져 온 충격은 강력했다. 이야기꾼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연기 귀신 케빈 스페이시,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문법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 같은 영화. 2. < 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
2003년 | 안소니 밍겔라
“린은 말괄량이에 톰보이 같은 캐릭터이지만, 사랑스러운 면을 지닌 캐릭터지요. < 콜드 마운틴>은 < 워리어스 웨이>에 캐스팅 된 후, 린의 캐릭터 연구를 위해 봤던 작품이에요. 르네 젤위거는 < 콜드 마운틴>에서 활달하면서도 강인한 여인 루비를 생생하게 연기했어요. 르네의 연기를 눈여겨보다가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 들었지요.”
연인을 만나기 위해 탈영한 남부 병사 인만(주드 로)과 그의 연인 아이다(니콜 키드먼) 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 콜드 마운틴>은 시종일관 서늘하다. 절망으로 앙상해진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데 충실한 < 콜드 마운틴>에 활기를 불어 넣는 것은 르네 젤위거가 연기한 산골 여인 루비다. 속사포 같은 대사로 산 속에서 지켜야 할 생존 규칙을 내뱉는 루비는 저돌적인 생존본능을 보여주며 생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서늘한 영화를 잠시나마 뜨겁게 달구는 몇 안 되는 캐릭터다. 3. < 수퍼맨 리턴즈> (Superman Returns)
2006년 | 브라이언 싱어
“수퍼맨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로이스 레인은 그 영웅을 구하는 여인이죠. 그게 바로 저였어요. (웃음) < 수퍼맨 리턴즈>는 제가 출연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등장하고, 사랑으로 그 영웅을 구원하는 여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 워리어스 웨이>와 비슷한 부분도 있어요. 그런 매력적인 여인을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던 작품이었지요.”
5년 만에 돌아온 수퍼맨(브랜든 라우스)에게 메트로폴리스에서의 삶은 즐겁지만은 않다. 그의 연인 로이스 레인은 ‘우리는 왜 더 이상 수퍼맨을 필요로 하지 않는가?’란 제목의 에세이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새 연인과 함께 다섯 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영영 멀어진 줄만 알았던 로이스는 수퍼맨이 쓰러진 순간 사랑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원작에 대한 경외심과 팬보이적인 열정으로 완성해 낸 < 수퍼맨 리턴즈>에서 로이스 레인은 강인하지만 섬세한 싱글맘으로 재해석되었다. 4. <300> (300)
2006년 | 잭 스나이더
“흔히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들 하는데, 그래서인지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보여주는 작품을 좋아해요. <300>은 너무나 전통적이고 익숙한 이야기를 너무나 새롭게 보여준 작품이라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프랭크 밀러의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화 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은 책에 묘사된 장면들을 필름 위에 그대로 옮기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조국을 지키기 위한 스파르타인들의 애국심을 프랭크 밀러는 테스토스테론이 가득한 수컷들의 탐미적인 싸움으로 재해석했고, 배우들의 복근과 화면을 아로새기는 피의 향연으로 구현된 영화 <300>은 인간의 육체로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의 찬미를 완성했다. 5. < 아멜리에>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
2001년 | 장-피에르 주네
“사랑스런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독특한 분위기의 판타지를 그린 영화라서, 보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에요. 제 작품들도 관객들이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오랜 파트너 마르크 카로와 헤어진 후 장-피에르 주네가 선보인 작품 < 아멜리에>는 그의 현란한 색채 감각과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재구현한 파리의 풍경이 아름다운 영화다. 어릴 적부터 밖에 나가는 걸 금지 당했던 소녀, 언제나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그리는 늙은 화가, 즉석 사진기 밑에 떨어진 증명사진을 모으는 괴짜 청년 등 독특하고 유머러스한 등장인물들이 그려내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10_LINE#> 인터뷰 중 “당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케이트 보스워스는 “나는 변화와 환기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의 무모한 도전 같았던 필모그래피가 이해가 갔다.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안전한 배역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이 성취한 자리에서 항상 그 너머의 지점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후반 작업에 들어간 그의 새 작품 목록 중엔 첫 장편 데뷔를 하는 감독들의 작품도 두 편이나 들어 있다.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에요. 물론 첫 장편을 찍는 감독들의 에너지를 사랑해요! 현장에서 함께 일하면 그 에너지가 내게도 전염되는 걸 느끼죠.” 신작 이야기를 꺼낼 때는 자동반사처럼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케이트 보스워스는 벌써 새로운 도전에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우리가 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할 때쯤, 그는 우리의 지레짐작보다 한 발 더 앞으로 걸어 나가 있을지 모른다. 뒤돌아보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글. 이승한 fourteen@
사진. 이진혁 el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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