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총파업이 한 달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김재철 사장은 MBC 입성 당시 황희만 보도본부장의 보직을 박탈하는 것으로 회사 정상화에 합의했으나, 곧 그를 부사장에 임명했다. 이에 반발한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지만, 김재철 사장은 “인사는 사장 고유의 권한”이라며 임명철회의 뜻을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조인트’ 발언에 대해 민형사상 고소 방침을 밝혔던 김 사장은 고소방침을 사실상 철회했고, 오히려 파업 23일째 노조 집행부 13명을 형사고소하고, 18명에게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파업이 30일째를 맞은 지난 4일 이근행 MBC 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나 MBC 총파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왜 MBC는 파업에 돌입해야만 했나?
이근행 : 이 문제의 출발은 정권의 입장이든 김재철 사장의 입장이든 변명할 수 없는 사건으로부터 출발했다. 기폭제가 된 김우룡 전 이사장의 조인트 발언은 지난 2년 동안의 MBC 탄압 실상을 폭로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진상규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정권차원에서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정권의 정당성이 문제될 수밖에 없다. 김재철 사장 역시 정권에 장악당해 있다는 신뢰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져야 되는 것이다. 너무나도 상식적인 요구다.

“황희만 부사장 임명 철회는 정당한 요구”
MBC 파업│“정권은 선거 끝날 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 거다”
MBC 파업│“정권은 선거 끝날 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 거다”
황희만 부사장 임명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근행 : 방송문화진흥회는 엄기영 전 사장의 인사권을 철저하게 유린하며 일방적으로 황희만 이사(보도본부장)를 임명했다. 인사권이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상징이라면 그것을 훼손한 핵심 인물이 바로 황희만 이사다. 김재철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황희만 이사는 부적격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성원들의 요구에 정당성을 인정하고서 특임이사로 임명했다. MBC 안에서 특임이사는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절차적으로 해임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임으로 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고 한 달 만에 전격적으로 부사장으로 임명했다. 애시 당초 말했던 대로 황희만 부사장 임명 철회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다.

파업이 30일째를 맞이했다. 1992년 최창봉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52일 간의 파업이후 두 번째로 긴 파업이다. 이 정도까지 오리라고 생각했나?
이근행 : 솔직히 2주 정도 (파업을) 하면 끝나야 되지 않느냐 생각을 했다. 그러나 김재철 사장은 갈수록 뻔뻔한 행태를 보고 있다. 지금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같다. 도덕적인 불감증에도 걸린 것 같다. 그렇게 된 데에는 김재철 사장 배후에 권력의 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권은 MBC를 손보겠다, MBC를 박살내자는 목적이 있다. 파업을 하든 MBC가 망가지든 강공 드라이브를 하겠다는 것이다. 김재철 사장이 원래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무기한 파업을 하더라도 김재철 사장 스스로 태도를 변화하기는 힘들다. 뒤에 칼을 들이댄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 달 넘게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 것이 파업투쟁이 계속되는 이유라고 본다.

단식과 삭발투쟁을 그토록 싫어했는데.
이근행 : 단식과 삭발투쟁은 상투적이다. (웃음) 파업이 3주가 지난 시점에서 단식을 하겠다고 했는데, 우리는 소위 언론인이고 말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집단이다. 그래서 파업 들어가기 전부터 파업기간 내내, 단식 들어가는 시점까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사측과 사장에 이야기를 했다. 우리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84사번 선배에서부터 모든 사원이 돌아가면서 김재철 사장이 잘못됐다며 노조의 문제제기가 타당하다고 이야기했다. 직능단체가 나섰고, 최근에는 기자들이 나섰다. 소위 명예로 먹고 산다고 하는 집단이 기자고, 황희만 부사장과 김재철 사장의 직계 후배인 기자 대다수가 그들에게 물러나라고 했다. 하지만 귀를 틀어막고, 말을 안 듣는다.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했다. 이제 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든지 자해를 하든지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하지만 폭력은 불가하고 자해를 하는 것은 옳지는 않다. 결국 단식을 통해서 의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다. 자기 자신을 학대하면서도 우리가 옳다는 것, 절대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재철 사장은 노조 집행부 13명을 고소했다. 지난주 사장 출근저지투쟁 영상을 보니 “거짓말쟁이 사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조의 말에 김 사장은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냐”고 응수를 하던데.
이근행 :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본인의 말대로 30년 기자 생활을 했다는 사람이, 30년 MBC 밥을 먹은 사람이 이렇게 후배도 없고, 회사도 안중에 없는가. 김재철 사장은 이제는 언론인이라는 의식도, 선후배라는 인간적인 도리도, 자신이 평생 몸 담아온 MBC에 대한 애정도 다 버렸다. 오로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것에 올인 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미션이 MBC를 박살내는 것이고, 그 공을 인정받아서 차후에 자신의 정치적인 미래를 추구하려는 것이다. 파다하게 알려져 있다시피 지역구 국회의원, 지자체 단체장 등 자기 연고지(경남 사천)에 충분히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거기에 갈 것이라고 본다. MBC 사장 1년이지만, 그 다음 자기 인생은 분명히 정치로 간다. ‘정치에 투신하지 않겠다’는 공개 기자회견 같은 건 절대 못할 것이다. 내 손에 장을 지진다.

“MBC는 아직까지도 권력에 의해서 장악될 수 없는 조직”
MBC 파업│“정권은 선거 끝날 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 거다”
MBC 파업│“정권은 선거 끝날 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 거다”
김재철 사장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근행 : 김재철 사장이 말하는 법과 원칙이 우습기도 하지만 ‘불법 파업’이라고 하는 것은 형식, 논리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언론 운동이 악법이라고 하는 노동관계법 규율을 받아서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방송이 독립 돼야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무노동 무임금과 형사처벌, 사규처벌은 모든 파업 투쟁에 적용돼 왔다. 새롭게 협박이랄 것도 없고, 모든 것을 다 감수하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워서 주장을 접고, 투쟁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니다.

< PD수첩 > ‘검사와 스폰서’ 편이 MBC 총파업에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이근행 : < PD수첩 >이 MBC 존재가치의 확인과 총파업에 의미를 환기시켰다는데 동의한다. < PD수첩 >이 가능한 것은 MBC 노조가 공영방송의 가치와 국민의 방송, 비판언론으로서의 기능을 끊임없이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노조의 공정방송 활동, 사측과의 긴장관계, 권력과 자본의 감시처럼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각성이 < PD수첩 >과 같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게 했다고 본다. < PD수첩 >은 MBC가 아직까지도 권력에 의해서 장악될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노조의 단체협약 가운데 공정방송조항과 같은 조항에서 방송독립권을 보장하고 있어 < PD수첩 >과 같은 방송이 가능하지 않나?
이근행 : 과연 사장이나 본부장이 프로그램을 보고를 받지 않고, 간섭을 안했겠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전에도 사장과 본부장은 무슨 아이템이 나가는지 매일 일일보고 받았다. 다만 단체협약 상 공정방송을 위해 개별 프로그램에 관여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규정이 존재하면서 쌍방 간의 긴장이 유지됐고, 사실을 유지하고 일방적인 논리와 힘의 쏠림을 방지하는 기능을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것 보다 상징적으로 작동했다고 본다. 국장에 대한 불신임을 하고 보직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핵심 장치인데도, 현실적으로 노조가 국장 불신임권을 행사한 적은 없다. 사전적인 예방 기능을 통해 각자가 서로를 규율하면서 공정한 방송으로 가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파업에 대한 여론은 다른 어떤 파업보다 호의적이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근행 : 지금까지 구성원들이 언론자유 수호와 독립성 사수를 위해 싸워왔다는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MBC에 대한 상대적인 기대와 희망이 과도하게 작동하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이것은 부담이기도 하고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MBC 파업을 비난하는 그룹은 있지만 소수다. 이른바 극우세력 정도라고 보고, 상식적인 중도그룹까지는 지지를 한다. 무한파업을 강요할 만큼 말이다. 하지만 파업도 하나의 투쟁인 만큼 현장에 돌아가서 프로그램을 하고 뉴스를 하는 것도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선거 국면에서 국민들이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게 더 옳을 수 있다. 정권은 MBC가 계속 파업해서 보도를 안 하길 바란다. MBC는 껄끄러운데 선거 끝날 때까지 파업이나 했으면 할 것이다.

“언론운동은 작지만 언론의 역사에 남을 것”
MBC 파업│“정권은 선거 끝날 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 거다”
MBC 파업│“정권은 선거 끝날 때까지 MBC가 파업하길 원할 거다”
5월 중으로 공권력이 MBC에 투입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근행 : 힘들 것이다. 정권은 정교하게 이 국면에서 MBC 파업을 유도했고, 거기에 따른 반사이익을 계산한 집단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무시한다. 조중동이 나서지 않는 이유도 그거다. 공권력을 투입해서 왜 문제를 환기시키고,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국민들이 알게 하겠나. 안 한다. 그래서 우리가 오히려 공권력이 들어오라고 소리쳐야 될 판이고, 가서 구속하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로 철저하게 정권은 이슈화 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공권력 투입은 5월 안엔 없을 것이다.

정권과 MBC의 불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근행 : 모든 권력은 권력이고, 언론은 언론이다. MBC는 모든 정권과 불화했다. 노무현 정권과도 FTA를 두고 싸웠다. 모든 정권은 동일하다. 하지만 상대적인 차이는 있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 사이에 상대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화가 더 커진 걸 수도 있다. 모든 정권이 동일하다는 논리에 빠지면, 우리는 정권에 대해서 비판할 필요가 없다. 다 똑같은 집단이고, 선거를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상대적인 차이 때문에 투표를 하는 것이고, 진보라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비민주적이고, 국민의 주권을 무시하고,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외면하는 정권이라면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노조위원장으로서 그간의 소회를 밝혀 달라.
이근행 : 작게는 집행부, 크게는 우리 MBC 구성원들이 함께 해 왔기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인생의 보람된 한 시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파업에 임한 모두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서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 이 시기는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싸움에서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떻겠나. 자기 스스로 떳떳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면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앞으로 굴종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시기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언론운동이라는 게 하나의 작은 영역이지만 MBC 역사와 언론의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본다.

글. 원성윤 twel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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