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혜리(김소연)는 대한민국 검사다. 동시에 외모 가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여성이며,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초적인 조직문화에 술 접대, 성상납이 공공연히 이루어진 검찰이라는 집단에서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SBS 에서 마혜리의 존재는 단순히 잿빛 양복의 홍수 속에 피어난 샤넬 트위드 재킷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른 검사들처럼 마혜리를 겉만 보고 혹은 한두 번 봐서는 그녀를 개념 없는 ‘돌+아이’로 여길 수밖에 없지만, 그녀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혜리를 조직생활에 적응 못하는 튀는 아이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와 모순으로 점철된 조직에 그녀가 끝까지 굴하지 않기를 응원하게 만든다. 강명석, 윤희성 기자가 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했다. /편집자주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를 조합하는 것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SBS 는 제목에서 적시하듯, 대한민국에서 가장 남성적이며 마초적인 집단인 검찰과 프린세스라는 극단적인 여성 판타지를 섞어 마혜리(김소연)의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마혜리는 가능한 가장 검사답지 않으며, 조직사회로부터 배척당하기 쉬운 인물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법제화되지 않았으나 당연시되는 관례들에 반항하며 ‘눈치’로 습득할 수 있는 정보들에 둔감한 이유는 이 드라마가 태생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의 충돌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충돌의 크기는 드라마의 에너지와 비례하므로, 마혜리의 캐릭터가 일상적이지 못할수록 드라마는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높은 탄성률을 갖게 된다.
마혜리를 이해하면 보이는 것들 vs <검프>│동화책을 찢고 나온 공주님" />그러나 는 단지 핀볼처럼 마혜리가 좌충우돌하며 갈등을 극대화시키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는 그녀가 충돌하거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인물의 전사를 삽입한다. 마혜리가 부킹 사건에 연루 되었을 때는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던 그녀의 꿈과 과도한 기대감으로 딸에게 감성적 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아버지의 태도가 드러났으며, 윤세준(한정수)에 대한 감정이 거절당한 후에는 그녀의 뚱뚱했던 과거가 밝혀졌다. 이러한 방식은 사건의 속도감을 떨어뜨리지만 인물에 대한 촘촘한 이해를 도우며, 인물의 현재에 대한 의문을 꼼꼼하게 해결해 준다. 이야기의 완성도를 떠나 성실하게 드라마를 본 사람들에게 마혜리가 ‘사랑스러운’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해하는 것만큼 상대방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지름길은 없기 때문이다.
이해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사실상 의 대부분 인물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마혜리를 구해주는 남자 주인공들의 역할이나 거짓말처럼 마혜리와 닮은 윤세준의 전부인, 서인우(박시후)의 기습키스 등은 로맨스의 전형적인 요소들이지만, 이러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섣불리 서로에게 반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상대방을 꾸준히 관찰하고, 타인의 심정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가장 경솔한 인물인 마혜리 조차도 연적인 진정선(최송현)에게 성급하게 호전적인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카풀에 끼어들지언정 보조석을 양보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노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척도로서 시간은 드라마에서 가장 우위에 있는 가치다. 직접 손으로 만든 쿠키가 윤세준의 딸에게 호의를 얻고, 직접 손으로 고쳐준 인형 옷이 성폭력 피해 어린이의 마음을 열었던 것은 결국 시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기적에 대한 증명이다. 그리고 시간이라는 가치에 대한 동의는 결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 검사와 마혜리가 일치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전대미문의 캐릭터, 주저앉지 말라
그 가치에 입각해서 는 6회 가량의 시간을 투입해 시청자가 주인공의 편이 되도록 서서히 마혜리의 이야기를 진행시켜 왔다. 덕분에 어떤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기대 이상의 몰입감을 주지만, 이것은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마혜리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동안 그녀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헤어핀의 모양으로 피의자의 혐의를 밝혀내는 8회의 에피소드처럼 너무나 간단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혜리의 세계를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허술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전형적으로 로맨스를 풀어나가는 작품으로 비춰질 지도 모른다. 더욱이 서인우를 중심으로 한 미스터리가 부각되면서 마혜리의 역할이 해결사의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그녀의 캐릭터는 더더욱 편견을 극복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마혜리가 ‘무엇을’ 해내는가의 문제다. 공들여 구축한 캐릭터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운명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것에 그치는 것을 원하는 시청자는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설득해 온 캐릭터를 순식간에 배반하는 것 또한 마혜리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 온 사람들이 기다리는 장면일 수 없다. 지지기반을 다졌다면, 멋진 반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에 차분한 논리로 대항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캐릭터가 겨우 직장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글 윤희성
검찰, 마혜리(김소연) 몰라요. 마혜리, 검찰 몰라요. SBS 는 마혜리와 검찰에 대한 탐구생활 같다. 마혜리는 굳이 점심까지 함께 먹는 검사들의 조직 문화를 이해할 수 없고, 검찰청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고, 스키장에 가려고 검찰청 MT를 빠지는 마혜리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는 그들을 직접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야근 문제에 대해서도 “인력이 부족하면 충원을 해야지 개인이 야근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마혜리의 입장은 그에게 “맞는 말이지만 그만”하자는 윤세준(한정수)의 입장과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대신 는 마혜리와 검찰청 사람들이 함께 공존해야 조직이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글. 강명석 two@
프린세스가 원하는 것 vs <검프>│동화책을 찢고 나온 공주님" />마혜리는 예쁘고, 부유하고, 명품을 좋아하고, 뚱뚱했었다는 이유로 편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검찰청 사람들의 편견은 뚱뚱한 여성이 “뚱뚱하니까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 날씬한 여성을 폭행했을 거라고 믿는 마혜리의 편견과 다를 바 없다. 마혜리는 그런 편견에서 벗어난 뒤에야 성추행을 당한 아이와 가난한 이혼녀인 그 어머니의 말에 보다 진실되게 다가설 수 있었다. 검사가 여성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은 사건을 공정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는 여성에 대한 시각과 여성의 일을 연결시키고, 마혜리 같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 때 보다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는 여성의 일과 사랑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과거의 ‘캔디’는 ‘밝고 싹싹하고 착한’ 성격으로 스스로 적극적으로 조직과 하나가 됐다. 하지만 이 ‘프린세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조직과 공존시키려 하고, 그의 삶의 목표는 일과 사랑의 성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마혜리가 자신과 윤세준을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이 된 진정선(최송현)에게 “선배가 먼저 좋아했으니까” 윤세준과의 카풀을 양보하고, 진정선이 마혜리에게 사적으로 악감정을 보이지 않는 건 가 낳은 새로운 결과물의 한 부분이다. 틀린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들이 만났을 때, 그들은 공존할 수 있다. 윤세준이 마혜리에게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한 것은 오히려 긍정의 메시지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드라마 설정의 전형성을 의심하면서 는 기존 트렌디 드라마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가 유지하는 여성, 일, 사랑의 균형은 아직 아슬아슬하다. 영화 같은 캐릭터의 매력과 미국 수사 드라마처럼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달콤한 한국식 로맨틱 드라마를 모두 섞은 이 드라마는 세 가지 매력을 유기적으로 끌고 가기 보다는 분산시키며 보여준다.
가 새로운 드라마가 되기 위해
1-2회에 마혜리의 캐릭터에 집중한 드라마는 3-5회에서는 사건 해결을 보여주고, 6-7회는 다시 마혜리를 중심으로 한 로맨스이며, 8회는 서인우의 정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를 한데 모으게 만드는 마혜리의 여러 사건들은 비중이 낮아지고, 그만큼 마혜리-직장-사랑으로 이어진 연결고리는 약화된다. 지금 에 필요한 건 어린아이의 성추행 사건처럼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마혜리의 일로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윤세준과 서인우가 마혜리를 더욱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짜임새 있는 에피소드다. 만약 지난 8회 동안 서인우에 대한 미스테리가 마혜리가 해결하는 사건들 속에서 좀 더 짜임새 있게 녹아들었다면 의 긴장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 는 마치 마혜리 그 자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혜리가 톡톡 튀는 캐릭터로 검찰에 들어와 어려움 끝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듯, 는 새로움이 진부한 부분과 결합하고, 그 과정에서 신선함과 미숙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혜리가 점점 검사로 성공하듯, 가 여성의 일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작품의 완성도로 이어갈 수 있을까?
글 강명석
글. 윤희성 ni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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