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익준│나를 사로잡은 영화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2010041414272039671_2.jpg)
“3-4년 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난 지금 이 과정이 지나면 변할 것이다, 라고. 실제로도 저는 예전과는 다르게 말도 잘하고 변했어요. (웃음) 그런데 지금 내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전 하나의 과정 위에 있어요. 다만 영화나 연기를 할 때 분명한 건 있어요. 연기나 작품 안에서 거짓말은 안 한다는 것. 거짓말하면 빤히 보인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거짓말과 가식, 인위적인 모든 것을 너무도 싫어하는 양익준. 그래서 그가 고른 영화들도 젠 체하지 않고 느낀 대로 말하는 그의 화법처럼 솔직하다. 인터뷰 중간 불쑥 불쑥 끼어드는 구수한 욕설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 그와의 대화처럼 신선하다. 다음은 양익준에게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와 그를 사로잡은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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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로랑 캉테
“가장 최근에 본 영화예요. 웃긴 것도 웃긴 거지만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보면서 자꾸 그 선생화가 되더라구요. 어우 이 사람이 애들한테 괜히 그런 얘길 해가지고 어휴… 그 후로 영화가 뭔가 마무리 짓지 않고 끝나지만 현재의 상황과 트러블만을 보여줘도 충분히 감흥이 있었어요. 그런 상황은 살면서 도처에서 만나게 되니까요. 영화를 보다가 고민하면 살면서 비슷한 문제에 대한 대처 요령도 생길 것이고. 그 시간 동안이라도 답답증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학생과 교사는 교실이라는 한 공간에 있지만 모든 것을 다르게 인식한다.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마랭(프랑소와 베고도)은 여전히 반항과 무시를 일삼는 아이들 때문에 뒷목을 잡기 일쑤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의 반목에도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토론하고, 학교의 정책 수립에도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프랑스의 시스템이 부러울 따름이다. 6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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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홍형숙
“잘 모르고 관심이 없는 사건이었는데, 이 영화 역시 보고 나서 답답해지더라구요. 는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한국 안에서 벌어지는 뭐랄까 버려져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랄까요? 송두율 교수는 한국에서 학자로서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하셨을 텐데… 자꾸 색깔로만 판단이 되니까 아주 훌륭한 사람들인데도 안타까워요. 한국은 좋은 인재들을 자꾸 밖으로 내모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2000년대 최고의 명대사죠, 의 대사 ‘너나 잘하세요’가 생각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를 내놓은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37년 만에 밟은 고국 땅에서 체포당했다. 거물간첩이라는 국정원의 의심은 한 철학자의 모든 것을 짓밟았다. 그리고 그 야만은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를 판결 받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한민국에서 철학자로 산다는 것은 이다지도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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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 허우 샤오시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전날 친구랑 엄청나게 술을 많이 마셔서 같이 간 친구는 조느라 정신없었는데 전 잠들 수가 없더라구요. 다 보고 나서 혼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어요. (웃음) 그 전까지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안 봤는데 으로 존경하게 됐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존경하게 된 분이죠. 작년에는 를 보시고 밥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뵈었는데 술을 마시면서 에서 상훈이 한 대사를 외쳐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웃음)”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아원과 아운은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레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또 그처럼 담담하게 헤어진다. 흔하디흔한 연애의 생성과 소멸을 그린 영화는 지나간 대만의 일상을 소박하되 아름답게 그려내며 한 편의 시로 완성됐다. 허우 샤오시엔의 청춘 4부작(, , , ) 중 마지막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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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 오기가미 나오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요. 도 재미있게 봤고, 그 분의 영화를 보면 참 편안해지잖아요. 음식을 만드는 모습처럼 인간이나 배우들의 일상을 계속 보여주다가 새로운 캐릭터가 갑자기 등장하는 것도 좋구요. 바르셀로나 아시안 영화제에서 만나 뵌 적이 있는데 같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좋아하는 분이에요. 물론 제 노트북 배경화면은 그 때 함께 찍은 사진이구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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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 빈센트 갤로
“빈센트 갤로 감독의 도 좋아하고, 는 엄청나게 좋아하는 영화예요. 그런데 사실 이런 감수성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긴 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한국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이 상영되기가 힘드니까요. 극장에 가면 7-8개의 영화들이 다 점유하고 있다는 게 참 이상해요. 맨날 콩밥에 미역국, 김치 먹는 것 같달까요? 전 햄버거도 먹고 싶다구요! (웃음)”
는 칸영화제에서 공개되자마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외설이냐 예술이냐는 해묵은 논쟁을 다시 벽장 속에서 꺼냈고,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를 둘러싼 시끄러운 잡음을 꺼두고 찬찬히 영화를 음미하면 그저 더 이상 슬플 수 없는 연가(戀歌)가 들린다. 연출, 각본, 주연까지 해낸 빈센트 갤로는 물론이고 패셔니스타 이전에 배우인 클로에 세비니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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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익준은 뜬구름 잡는 예술관이나 설익은 관념들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기쁘게 이야기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영화라는 소통수단 자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것에 압도되지 않는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리다가 정작 제 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양익준이 지금 홍대 카페에서 한가로이 보내고 있는 시간마저 치열한 이야기로 숙성시켜 꺼내놓을 것 같은 예감으로 이어진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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