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초 ‘배드 걸’ 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마친 비스트 멤버들은 테이블 위에 있던 음료수와 과자 상자를 치우기 시작했다. 비스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실 비스트의 가장 뚜렷한 정체성은 이같은 ‘태도’에 있다. 각자 결코 만만치 않았던 전초전을 치른 뒤에야 비스트로 데뷔해 최근 ‘쇼크’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은 힘든 시간을 겪었던 만큼 성실하고 어른스럽다. 그래서 이 여섯 명의 청년들은 형제나 친구라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팀메이트에 가까워 보인다. 다음은 이 진중한,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십대 초반의 풋풋하고 장난스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비스트와의 대화 기록이다.얼마 전 ‘쇼크’로 Mnet 에서 데뷔 후 첫 1위를 한 뒤 우는 모습과 수상소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때 기분이 어땠나요.
준형 : 다른 아이들도 그랬겠지만 저희가 아무래도 순탄하게 데뷔한 팀이 아니라서 그런지 발표가 났을 때 그동안 힘들었던 생각들이 많이 났어요. 안 좋은 일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고생했던 것들, 연습하면서 힘들게 땀 흘린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더라구요. 하지만 눈물에 의미를 담기보다는 얘들이랑 데뷔하고 나서 처음으로 1위를 한 거고 팬들도 너무 간절하게 원하셨던 일이니까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구멍이 없는 팀이다’이라는 말은 너무 좋다” 데뷔를 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올라오는 시간 동안 힘들거나 고비였던 때도 있을 것 같은데.
두준 : 데뷔 후 5개월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매순간 힘든 대신 매순간이 재밌어요. 특히 연습생 때 고생한 것에 비하면 몸은 더 힘들지만 즐겁게 활동하고 있어요.
팬카페 회원 수도 크게 늘었고 온오프라인 반응도 좋아졌다는 게 실감나기도 하나요.
준형 : 사실 데뷔 초에는 ‘얘네가 누구야? 얘네도 곧 없어지겠지’ 등 반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이나 비꼬는 글을 숱하게 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도 지금은 좋게 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비스트는 구멍이 없는 팀이다”라는 말 같은 걸 듣거나 하면 다들 굉장히 좋아하죠.
특히 ‘쇼크’ 무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데, ‘배드 걸’이나 ‘미스테리’ 때도 여섯 명이 안무를 딱딱 맞추기는 했지만 ‘쇼크’에서는 순간순간 근육에 계속 힘을 써 가면서 작은 동작 하나하나까지 신경 쓴 느낌이에요. 어쩌면 첫 싱글보다 이번 미니앨범 준비할 때의 각오가 남달랐을 것 같기도 한데.
준형 : 노래를 내놓을 때마다 욕심 부리고 싶은 게 많아지는데 특히 이번 앨범은 모두들 타이틀곡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고, 안무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단한 분이 해 주셨어요. 프리픽스의 하우신 단장님인데 유럽에서 선정한 세계 안무가 6인에 뽑히기도 하신 분이에요.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시고 가수 안무를 잘 안 해주시는 분인데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형이라 부탁을 드렸더니 해 주셨어요. 그런데 저희가 못해서 그분 명성에 해를 끼치면 안 되니까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했죠.
기광 : 처음 안무를 받았을 때는 정말 이 춤을 추면서 라이브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돼서 다들 긴장했어요. 그래서 안무와 함께 무조건 노래를 같이 부르면서 연습했어요.
기광 씨는 AJ로 솔로 활동을 하면서 무대 하나를 혼자 이끌어본 경험이 있을 텐데 임팩트 있는 동작들을 거의 3분 넘는 시간 동안 내내 채워넣은 ‘쇼크’ 안무를 소화하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기광 : ‘쇼크’는 저희가 연습생 시절에 했던 안무나 전에 췄던 춤과 느낌이 아예 달라요. 반대라고 봐야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원래 연습했던 건 스탑을 위주로 한 안무였는데 이건 느리게 가다가도 빨라지면서 순간적으로 근육에 힘을 줘야 하니까. 처음엔 안무 하나만 외우면서 전곡을 마스터하기 힘들었는데 계속 연습하고 따라 부르다 보니까 지금은 몸과 근육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안무도 그렇지만 요섭 씨가 부르는 후렴구도, 요즘은 오토튠을 쓰거나 해서 좀 부드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해 스트레이트로 세게 질러주는 게 독특한 느낌이에요.
요섭 : 처음에 ‘쇼크’를 들었을 때 약간 락 느낌이 난다는 얘기를 주고받다가 진짜 녹음 들어갔을 때 프로듀서분이 그냥 깔끔하게 올리는 것보다 락 부를 때처럼 포효하듯이 불러 보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그렇게 녹음하고 나서 무대에서 제가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안무 연습을 하면서 근육량도 조금씩 늘고 힘도 생기고 호흡도 많이 안정적으로 변해서 이번 안무가 오히려 라이브를 도와주는 것 같아요.
‘배드 걸’에 비해 ‘쇼크’는 각자의 보컬을 좀 더 들을 수 있는데, 그룹이니까 좀 더 한 목소리를 내고 싶다거나 각자 파트에 따라 개성이 드러나면 좋겠다거나 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생각인가요.
요섭 : 이번에 제가 락처럼 부르고 준형이가 자기 색깔로 랩을 한 것처럼 각자 평소 자신있 어 하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면 화음을 넣은 수록곡들이 또 있으니까요. 다음 앨범에서는 또 다른 걸 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다들 재치가 있고 센스가 있는 멤버들”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는데 특히 현승 씨는 ‘배드 걸’ 때에 비해 분위기가 확 바뀐 것 같아요. 화사하고 고와졌다는 느낌인데.
현승 : 그런데 개인적으로 곱다는 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리고 고와졌다는 얘기는 오히려 머리 자르고 나선 덜 듣는 것 같아요. 다행이죠 저한테는. 콤플렉스거든요 나름. (웃음) 지금 스타일은 맘에 들어요. 제가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아이라인 메이크업이랑 헤어스타일을 직접 찾았는데 원래는 이 머리가 아니라 나르샤 선배님의 스타일과 흡사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머리는 아니었어요. 패션쇼 런웨이의 모델을 보고 괜찮겠다고 생각한 건데 저는 가수잖아요. 춤 출 때 시야 확보가 안 되더라구요.
기광 씨는 그동안 MBC (이하 )에 세호 학생으로 출연하느라 헤어스타일을 못 바꾸고 있었는데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염색을 했다면서요.
기광 : 저도 계속 변신하고 싶었어요. 머리도 못 자르고 항상 까만색에 똑같은 스타일 밖에 못 했는데 끝나고 나서 염색도 확 다른 색으로 해 보고 머리도 짧게 잘라 보니까 색다른 모습이 좋았어요. 그런데 탈색이란 걸 처음 해 보니까 두피가 정말 아프더라구요. 물론 요섭이 만큼은 아니지만.
요섭 : 그 탈색은 탈색이 아니야! (웃음) 저는 노란 머리인데 안에 자꾸 검은 머리가 나면 이상하니까 계속 두피 탈색을 했는데, 아프죠.
동운 씨는 요즘 막내라는 포지션이 새삼 부각되고 있던데요.
동운 : 원래 막내인데 이제야. (웃음) 머리 자르고 나서 회춘했다는 얘기가 많은데 당연한 얘기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을 비롯해 두준 씨가 MBC ‘단비’에 출연하는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인지도가 높아진 게 체감되나요.
두준 : 많이 느껴져요. 특히 연세 많으신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하니까 확실히 활동 폭이 넓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단비’는 말 많은 형님들 사이에서 일을 해야 하는 동시에 웃겨야 하는 거라 예능 초보에게는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요.
두준 : 그렇게 웃기려는 욕심은 없어요. 저보다 웃기는 분도 많은데 굳이 저까지 그렇게 웃기려고 하면 프로그램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솔직하게 떠오르는 말 하고, 삽 푸라 그러면 푸고. (웃음)
MBC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 보면 기광 씨는 혼자 나올 때는 개인기 반응이나 예능감이 좋은데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는 왜 그렇게 무리수를 두느냐는 얘기도 있어요. 엄앵란 성대모사나 “까치한테 설날을 주세요”라던가. (웃음)
요섭 : 으하하하! 콜록, 콜록, 켁-
기광 :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의욕만 앞서다 보니까 재미는 없고….제 생각에는 여섯 명 중에 제가 제일 안 웃긴 것 같아요.
현승 : 아니, 제가 제일 안 웃겨요. 진짜로요.
두준 : 비슷해요.
기광 : 아니 저는 솔직히 현승이는 진짜 웃기다고 생각해요. 진짜로. 애들이 다 재치가 있고 센스가 있는데 저는 약간 순발력이 떨어져서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약간 무리수가 나오는 게 아닐까…(웃음)
“다 같이 거실에서 밥 먹을 수 있는 숙소가 생겼다” 비스트 활동이 성공하면서 숙소가 바뀌었다던데 어떤 점이 좋아졌는지.
동운 : 가스레인지가 있습니다.
준형 : TV도 있구요. 식기 세척기랑.
동운 : 음식물 쓰레기 분리기도.
요섭 : 베란다도 생겼어요.
준형 : 그리고 다 같이 거실에 모여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대체 예전 숙소는 어땠길래?
준형 :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 (웃음) 두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통로가 좁아서. 처음엔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사인회 같은 걸 하면 팬 분들이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만큼 선물을 주시니까, 그런 걸 수납할 공간이 없어서 계속 쌓아놓고 위로 넘어다니고 그랬는데 지금은 거실이 넓기도 하고 베란다도 있고. 그리고 예전엔 스케줄 가려면 화장실이 하나에 그 좁은 곳에 세탁기도 들어 있어서 두 시간 전부터 복잡하게 준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화장실이 두 개인 데다 세탁기 따로 두는 곳도 있어요!
진심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웃음) 데뷔 전 < MTV B2ST >에 나왔을 때는 침실 하나에서 여섯 명이 함께 잤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동운 : 지금도 그래요. 세 명씩 나눌 수 있었는데 저희가 그냥 한 방에서 자겠다고.
이번엔 누가 형광등 아래 2층 침대에서 자는지.
두준 : 계속 저요. 그런데 형광등이 좀 멀찍이 있고 천장이 높아서 괜찮아요.
요섭 : 형광등이 아니라 은은한 조명이어서 그렇게 살이 탈 것 같은 고통은 느끼지 않아도 돼요. (웃음)
그런데 숙소가 바뀌고 스케줄이 많아지면서 생활도 전과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준형 : 일단 두준이가 굉장히 바쁘고 외국에 갈 때도 있으니까 리더가 빠지면 좀 허전한 게 커요. 그리고 지금은 각자 스케줄이 조금씩 늘어나서 숙소에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좀 더 뭔가, 포근해요. 예전에는 숙소가 집이라기보다 잠자고 나오는 곳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숙소에 있으면 그냥 좀 쉬는 기분이에요. 말 그대로 집처럼.
‘쇼크’ 같은 안무를 맞추거나 그렇게 계속 같이 살다 보면 없던 팀워크도 생기고 멤버들 간의 화학작용도 좋아질 것 같은데요.
현승 : 그렇죠. ‘쇼크’는 멋있으면서도 누구 하나가 비면 무너지는 구성이라 이번 활동을 하면서 좀 더 애들 하나하나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이번 활동으로 좀 더 사이가 돈독해진 것 같아요. 아, 물론 원래 좋았지만. 하하.
인터뷰. 강명석 two@10asia.co.kr
인터뷰,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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