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조(문근영) 양은 ‘착하다’의 기준을 어디에 두시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보고 착하다고들 하더군요.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그저 상냥하게 인사를 해주고, 잘 웃어주고, 뭔가를 자꾸 퍼주면 착하다며 좋아들 하더라고요. 저만 해도 그래요. 하다못해 동네 예닐곱 살 먹은 어린아이를 두고도 방글방글 웃으며 배꼽인사를 하면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하게 되고, 말을 건네도 대답 않고 쌩하니 지나치는 아이를 보면 대번에 못됐다고 삐죽거리게 되던 걸요. 알고 보면 유달리 낯을 가려 대꾸를 못한 것일 수도 있건만 아이의 속사정은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겁니다. 오십 줄을 넘어서도 여전히 저에게 살가워야 좋은 말이 나오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죠. 어째 지금쯤 은조 양이 한심하다는 듯 ‘썩소’를 한번 날렸지 싶은데, 아닌가요? 어쨌거나 그런 기준으로 보면 은조 양은 착하다는 소릴 영 못 들을 타입입니다. 생전 먼저 인사 한번을 하나, 웃길 하나, 표정은 항상 얼음장이니 독하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죠 뭐.
은조 양도 딱하지만 효선 양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겉만 그처럼 뾰족하니 가시를 세우고 있지 실은 은조 양이 어느 누구보다 속 깊고 착한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엄마(이미숙)와 십여 번째 동거하던 장 씨네를 떠나던 날, 김치를 몇 통씩이나 담아 냉장고에 쟁여주고 밑반찬도 넉넉히, 밥도 한 솥 가득 해두고야 문을 나서는 걸 보며 감탄했거든요. 말이 쉽지, 제가 그 나이 적엔 하지도 못했을 생각이고 할 수도 없었던 일인 걸요. 늘 귀찮아하며 구박을 해왔지만 주정뱅이 장 씨 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고생할 정우(문석환)가 딱해서 바리바리 장만 해주고 나온 거죠? 또 언젠가는 엄마를 두고 떠나고 말 거다, 노래를 불렀어도 장 씨가 보낸 무서운 이들에게 엄마가 잡히자 얼마든지 혼자 도망을 칠 수 있었음에도 엄마 곁으로 돌아왔잖아요. 이 남자, 저 남자 떠도는 엄마를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엄마를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떨쳐 내지 못하는 은조 양이 안쓰러운 한편 대견하더라고요. 얼마 후 장 씨가 무작정 대성도가로 들이 닥쳤을 때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홀로 대적해 돌려보내기도 했죠. 그 난리 중에도 혹여 만취한 장 씨가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낼까봐 기훈(천정명)이에게 운전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가만 보면 마음 씀씀이가 보통 엽렵한 게 아니라니까요. 게다가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적이 있나 신세를 지길 하나,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은조 양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의 시선은 내도록 팥쥐에서 벗어나질 않으니 내심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반면 새아버지(김갑수)의 딸인 동생 효선(서우)이는 평생 착하다는 소릴 들어온 아이죠. 늘 웃으며 오가는 이들 죄다 불러 세워 인사를 하는가하면 애교만점에다가 자신이 가진 걸 아낌없이 내주는 타입이니 모든 사람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효선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이미 꿰뚫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태생이 영악해서 사람들을 속여 왔다는 게 아니라 사랑받고자 본능적으로 그리 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해온 남자 아이가 은조 양더러 사귀자고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당장 “꺼져, 거-지”라는 소리가 튀어 나온 걸 보면 마냥 착하기만 한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지죠. 평소의 효선이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특별히 착했던 게 아니라 나쁠 여지가 이때껏 없었던 걸 거예요. 그런데 그처럼 사랑에 목말라 해온 효선이가 만인으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을 일을 저지르고 말았더군요. 기훈이(천정명)가 떠나며 남긴 편지를 효선이가 중간에서 가로챘거든요. 그런데요. 저는 효선이의 심정도 백번 이해가 갑니다. 지금까지 ‘내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왔던 기훈이의 마음이 갑자기 은조 양에게 기울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갈등이 안 되겠어요. 짝사랑 해왔던 남자 친구 뺏겨, 기훈이도 뺏겨, 저라도 감추고 싶겠습니다.
힘들 때는 “은조야”하고 불러주던 그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요? 세상에 딱히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없다는 얘길 하려는 거예요. 안 좋은 상황에 처했어도 속은 올바를 수 있는 은조 양 같은 사람이 흔치 않은 거거든요. 짐작컨대 앞으로 효선이의 ‘편지 감추기’에 필적할 짓은 쭉 계속 될 전망이지만 가엽게 여겨 달라 부탁하고 싶네요. 저 역시 효선이처럼 징징대며 들이대는 건 질색이긴지만 순진하던 아이가 비뚤어지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짠해서 그럽니다. 효선이는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실은 가장 필요한 엄마가 없는 아이였고, 은조 양은 손에 아무 것도 쥔 게 없었지만 효선이에겐 없는 엄마만큼은 갖고 있잖아요. 아무리 엄마가 효선이에게 지극정성이라 해도 본심은 결코 아니라는 거 은조 양도 알려나요? 더구나 ‘니가 아니면 안 돼, 너 없이 난 안 돼’라는 절절한 노랫말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거 하나만으로도 은조 양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미소가 멋진 우리의 기훈 청년에겐 오직 은조 양만이 필요하다는 사실, 잊은 건 아니죠? 만약 의심스럽다면 “은조야” 하고 불렀을 때를 다시금 떠올리고 힘을 내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은조 양도 딱하지만 효선 양도 이해됩니다 하지만 겉만 그처럼 뾰족하니 가시를 세우고 있지 실은 은조 양이 어느 누구보다 속 깊고 착한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엄마(이미숙)와 십여 번째 동거하던 장 씨네를 떠나던 날, 김치를 몇 통씩이나 담아 냉장고에 쟁여주고 밑반찬도 넉넉히, 밥도 한 솥 가득 해두고야 문을 나서는 걸 보며 감탄했거든요. 말이 쉽지, 제가 그 나이 적엔 하지도 못했을 생각이고 할 수도 없었던 일인 걸요. 늘 귀찮아하며 구박을 해왔지만 주정뱅이 장 씨 밑에서 밥도 못 얻어먹고 고생할 정우(문석환)가 딱해서 바리바리 장만 해주고 나온 거죠? 또 언젠가는 엄마를 두고 떠나고 말 거다, 노래를 불렀어도 장 씨가 보낸 무서운 이들에게 엄마가 잡히자 얼마든지 혼자 도망을 칠 수 있었음에도 엄마 곁으로 돌아왔잖아요. 이 남자, 저 남자 떠도는 엄마를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엄마를 보호할 책임과 의무를 떨쳐 내지 못하는 은조 양이 안쓰러운 한편 대견하더라고요. 얼마 후 장 씨가 무작정 대성도가로 들이 닥쳤을 때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홀로 대적해 돌려보내기도 했죠. 그 난리 중에도 혹여 만취한 장 씨가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낼까봐 기훈(천정명)이에게 운전을 부탁하기도 했고요. 가만 보면 마음 씀씀이가 보통 엽렵한 게 아니라니까요. 게다가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적이 있나 신세를 지길 하나,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은조 양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의 시선은 내도록 팥쥐에서 벗어나질 않으니 내심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반면 새아버지(김갑수)의 딸인 동생 효선(서우)이는 평생 착하다는 소릴 들어온 아이죠. 늘 웃으며 오가는 이들 죄다 불러 세워 인사를 하는가하면 애교만점에다가 자신이 가진 걸 아낌없이 내주는 타입이니 모든 사람으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효선이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이미 꿰뚫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태생이 영악해서 사람들을 속여 왔다는 게 아니라 사랑받고자 본능적으로 그리 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해온 남자 아이가 은조 양더러 사귀자고 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당장 “꺼져, 거-지”라는 소리가 튀어 나온 걸 보면 마냥 착하기만 한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지죠. 평소의 효선이라면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특별히 착했던 게 아니라 나쁠 여지가 이때껏 없었던 걸 거예요. 그런데 그처럼 사랑에 목말라 해온 효선이가 만인으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받을 일을 저지르고 말았더군요. 기훈이(천정명)가 떠나며 남긴 편지를 효선이가 중간에서 가로챘거든요. 그런데요. 저는 효선이의 심정도 백번 이해가 갑니다. 지금까지 ‘내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어왔던 기훈이의 마음이 갑자기 은조 양에게 기울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갈등이 안 되겠어요. 짝사랑 해왔던 남자 친구 뺏겨, 기훈이도 뺏겨, 저라도 감추고 싶겠습니다.
힘들 때는 “은조야”하고 불러주던 그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요? 세상에 딱히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없다는 얘길 하려는 거예요. 안 좋은 상황에 처했어도 속은 올바를 수 있는 은조 양 같은 사람이 흔치 않은 거거든요. 짐작컨대 앞으로 효선이의 ‘편지 감추기’에 필적할 짓은 쭉 계속 될 전망이지만 가엽게 여겨 달라 부탁하고 싶네요. 저 역시 효선이처럼 징징대며 들이대는 건 질색이긴지만 순진하던 아이가 비뚤어지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짠해서 그럽니다. 효선이는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실은 가장 필요한 엄마가 없는 아이였고, 은조 양은 손에 아무 것도 쥔 게 없었지만 효선이에겐 없는 엄마만큼은 갖고 있잖아요. 아무리 엄마가 효선이에게 지극정성이라 해도 본심은 결코 아니라는 거 은조 양도 알려나요? 더구나 ‘니가 아니면 안 돼, 너 없이 난 안 돼’라는 절절한 노랫말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거 하나만으로도 은조 양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미소가 멋진 우리의 기훈 청년에겐 오직 은조 양만이 필요하다는 사실, 잊은 건 아니죠? 만약 의심스럽다면 “은조야” 하고 불렀을 때를 다시금 떠올리고 힘을 내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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