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회 SBS 토-일 밤 10시
“지금도 메가폰 하나 들고 병원 복도 돌면서 나는 게이다 외치고 싶을 때 종종 있어. 나한테 가장 큰 고통은, 내가 다르게 태어난 놈이란 것보다 세상을 속이고 있다는 거야” 미루지도, 돌려 말하지도 않았다. 주말 가족 드라마의 주인공 입에서 “나는 게이다”라는 말이 또렷하게 흘러나온 2010년 4월 3일은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스톤월 항쟁 이후 가장 유의미한 날이었다. 적어도 주말 가족 드라마에 게이 커플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찬반’과 ‘민망’ 운운하는 기사가 나오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현역 최고령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이 태섭(송창의)을 시청자들 앞에 커밍아웃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 작품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커밍아웃, 혹은 ‘여기 게이가 있다. 그래서 어쩔 테냐’라는 선전포고에 가까워 보인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대가족 판타지를 재현하는 동시에 미혼모, 이혼과 재혼, 동성애 등을 정면으로 다루며 끊임없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도전해 왔다는 점에서 김수현은 여전히 박제된 거장이 아니라 가장 핫한 창작자다. 난봉꾼 할아버지(최정훈)의 귀환과 할머니(김용림)의 분노, 장남(김영철)의 고집과 맏며느리(김해숙)의 서운함 역시 갈등을 위한 갈등이 아니라 오랜 시간 관계 안에서 쌓여 온 문제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노련함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그 무시무시한 말발의 주인공들이 코미디에도 능해, 전날 밤 싸운 형(김상중)에게 커피를 건네는 듯하다가 “나 먹을라고 탄 거야” 라며 쓱 빠지는 병걸(윤다훈)의 타이밍이라니. 어쩌면 대한민국 시트콤의 양대 산맥은 김병욱과 김수현인지도 모르겠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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