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김인규 사장은 1973년 KBS 공채 1기 기자로 입사했다. 보도국장, 뉴미디어본부장 등을 거친 그는 지난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언론 특보로 활동했으며 2009년 11월 전임 이병순 사장과 마찬가지로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며 취임했다. “저는 KBS를 지키려고 왔습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본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제가 대선캠프에 있었다고 해서 현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부 입맛에 맞게 방송을 마음대로 만들고 방송을 좌지우지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제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저와 함께 현장에서 뛰었던 후배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뀐 KBS, 수장에게서 듣는다
언론장악 전야│“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언론장악 전야│“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당당한 취임사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부 기자로 현장에서 뛰던 80년대 군사 독재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를 미화한 보도 내용이 잇따라 공개되며 파문이 일었다. KBS 기자협회는 당시의 동영상을 ‘김인규는 말한다’ 시리즈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렸으나 KBS는 동영상을 삭제하고 성실 의무 위반, 콘텐츠 유출 등의 사유로 김진우 기자협회장을 감봉 2개월의 징계에 처했다. 지난 해 12월 설립된 KBS의 새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과 관련해서는 최근 사장에서 국장으로 이어지는 임원급으로부터의 ‘새 노조 탈퇴 압력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동안 지역순환 대상 직종이 아니었던 라디오 PD들이 갑작스럽게 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서도 새 노조 활동으로 ‘미운 털’이 박힌 이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함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이 와중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주말극 는 경찰 옹호에 이어 불륜 등 막장 논란에 휩싸였고 보수 성향의 시민 단체 방송개혁시민연대는 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를 특정 집단과 정당에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2010 봉숭아 학당’의 사회비판적 캐릭터 ‘동혁이 형’을 선동적 개그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나섰다. 공포와 부조리의 시대,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KBS의 수장이자 상당 부분 그 자신이 원인이기도 한 김인규 사장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23일 오전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한 방송인들의 모임 초청강연회에서 김인규 사장이 잠시 기자들과 만났다.
“공영방송의 선정성 배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
언론장악 전야│“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언론장악 전야│“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강연에서 ‘기자 저널리즘’과 ‘PD 저널리즘’의 차이를 언급하며 MBC < PD수첩 >과 관련해)
김인규 사장 : 사실성에는 진실성과 관련성이 모두 보장돼야 한다. (다우너 소 화면을 언급하며) 이것과 광우병의 관련성은 사실이 아니다. 인터뷰를 할 때도 일부의 의견을 마치 전체의 입장처럼 쓰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터뷰를 했으니 괜찮다는 생각 자체가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다. (< PD수첩 >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지금까지도 2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계에서도 (공정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지 재판 결과로 유죄다, 무죄다를 다룰 것은 아니다.

기자 시절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민자당에 대한 리포트가 공개되어 상당한 문제가 됐는데 그와 관련해 공식적 해명이 없었던 것 같다.
김인규 사장 : 같은 정치부 기자라도 여당이나 야당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뉴스보도를 하는 거다. 내가 79년에 정치부에 갔는데 처음 야당에만 3년 나갈 때 리포트는 주로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 국민회의 후보에 관한 내용이 쫙 있었다. 그러다 80년대 지나서 여당으로 갔는데 그 때 리포트만 몇 개를 놓고 ‘왜 이런 걸 했냐’고 하면 여당 출입기자로서는 여당의 목소리를 취재해서 보도하는 게 당연한 거다. 과거의 리포트가 모두 다 있었을 텐데 일부만 놓고 기자 행적 전부인 것처럼 말하는 건 형평성에서나 균형성이 맞지 않다. 그리고 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금 북한에 대한 보도를 한 30년 전에 했다면 국가보안법에 걸렸을 텐데 지금은 30년 전 같은 북한 보도라면 납득이 안 될 거다. 그러니까 공정성의 잣대도 구조적인 영향을 받는데 이 관련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논쟁이 될 것 같으니 이 정도로만 하겠다.

리포트 공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기자협회장을 징계한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김인규 사장 : 기자협회장의 징계는 사장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아니라 KBS 내부 시스템에 의한 정당한 절차다.

지난 1년 8개월 사이 KBS 뉴스가 친정부적 성향을 띠게 되었고 프로그램들도 편향적이 되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데.
김인규 사장 : 1년 8개월이란 아마 정연주 사장 이후를 겨냥해서 말씀하는 것 같은데, 그 이후에 나빠졌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반대로 상당히 좋아졌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것은 정확한 조사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는데 전 사원들이 그 점을 항상 의식하면서 공정성과 심층성을 깊이 있게 담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지상파 사장단의 만남 자리에서 KBS 내의 선정적인 방송을 퇴출시키겠다고 했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김인규 사장 : 공영방송이 살아갈 길은 ‘확실한 공영방송’이 돼야 하는 거고 확실한 공영방송이 되는 길은 공정성 확보와 선정성 배제라고 생각한다. 선정성 배제를 위해서는 담당 PD들이 자정 결의를 하고 있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봄 개편에 맞추어 준비하고 있다.

‘막장 논란’을 빚고 있는 2TV ()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김인규 사장 : 은 뉴스와 겹쳐서 제대로 못 보다가 막장이라는 말이 많아서 지난 주말 작심하고 두 편을 봤는데 내가 본 것은 많이 좋아져 그런지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것 같더라. 다만 스토리텔링 구조가, 조강지처가 있는데 찜질방에 있던 여자와 그런 건 위험성이 있는 것 같다. 시청률이 40% 가까이로 높은 프로그램인데 그럴수록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정적으로 가야 될 필요는 없지 않나, 이런 부분에서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에 대해서는 언급을 여러 번 했고, 최근 선정적 표현이 많이 자제됐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공정보도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잣대를 재곤 한다”
언론장악 전야│“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언론장악 전야│“공정보도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KBS 새 노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김인규 사장 : 우리하고 아직 테이블을 놓고 얘기한 적이 없는 모양인데, 우리 쪽도 처음 그런(노조가 복수인) 상황이 벌어지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나도 뭐 더 모르고. 이제 관계자들의 의견을 받아봐야지.

하지만 새 노조에 가입하지 말라는 지시 의혹이나 라디오 PD들 순환 근무 문제 등 자꾸 마찰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 더 알아볼 문제인지, KBS 개혁을 위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고 있는 부분인지 궁금하다.
김인규 사장 : 분명히 얘기하지만, 잡았다고 그렇게 가겠나. 특히 노조 문제 같은 경우는 사측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도 없는 거 아닌가. 기존 노조가 있고 새 노조가 생기면 앞으로 여러 가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라디오 PD의 지역 순환은 별개 문제다.

하지만 라디오 PD들은 막말로, 정연주 사장 퇴임 과정에서 자기들이 ‘찍혀있다’는 입장이기도 한 것 같다.
김인규 사장 : 그 문제는 단편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공영방송 KBS에 지역순환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심층 취재로 들어가야 한다. ‘반발이 있다고 한다’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됐는가’를 깊이 들어가 줘야 독자들이 알고 비판할 수 있고 KBS에 지역 순환이 필요하냐 안 하냐를 알 수 있을 거 아닌가. MBC, SBS는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고 NHK나 BBC는 본사에서 신입사원을 한 명도 안 뽑고 다 지역에서 꾸려서 순환으로 간다. 그래서 NHK나 BBC는 다른 데 없는 강점을 갖는 거고. 그러면 모든 직종이 순환 근무하는 게 좋으냐, 특정 직종은 안 옮기는 게 낫냐 하는 부분을 다 알아보고 써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컨설팅을 받을 거다. 그런데 어쨌든 본사 기자, 지역 기자 같은 구분은 있을 수 없다. 빙산이 겉으로 보면 요만큼 있지만 그 아래는 이만큼 큰 게 있지 않나. 내가 다루려는 건 그런 문제다.

혹시 꼭 챙겨보는 KBS 프로그램이 있나.
김인규 사장 : 시간이 되면 을 본다. 이 프로그램을 2TV 골든타임에 넣었더니 편성에서 큰돈이 날아갔다고 하던데 그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2TV가 너무 연성으로 가지 않게 해야 했다. KBS가 1TV만 지키면 된다, 2TV는 포기해야 된다 하는 것도 아니고 2TV가 수신료 없이 광고료로만 운영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1월 1일부터 시범적으로 주말 2TV에 다큐멘터리들을 넣었는데 그런 걸 몇 가지 더 넣어보려고 한다. 1TV는 프로그램 정체성이 어느 정도 잡혔기 때문에 공정성만 더 확보되면 되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거 아니다. 신문하고 달리 방송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다. 양심을 걸고 얘기하지만 초년병 기자 때는 비교적 자유롭다. 자기 입장을 써주면 위의 선배가 걸러주는데 최종적 게이트키퍼에게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 KBS 보도국장이 굉장히 어려운 직책이다. 모든 신경을 다 써야 하니까 1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정성이나 공정보도는 영원히 끌고 갈 문제지 쉽게 나올 말이 아닌데 간혹 가다 보면 공정보도를 너무 단순화시켜서 잣대를 재곤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이항대립적 구도로 분리한다는 점이다. 다원화 사회에서 중간의 여러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둘로 갈라 갈등구조를 만드는 것도 선정적 보도다.

2월 시청자 회의록을 보니 의 ‘동혁이 형’에 대해 너무 대중 선동적이고 위험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위원들도 있었다.
김인규 사장 :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봤다. 사실 품격 있는 코미디라는 게 말은 쉬운데 상당히 창의성도 필요하고 공도 많이 들기 때문에. 평이하게 쉽게 만드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지 않을까. 값싸게 만드는 건 지양하자는 이야기를 임원회의에서 많이 한다.

보수성향 시민단체에서 ‘동혁이 형’에 대해 시비를 걸어 화제가 된 것인데 혹시 그러한 외풍을 어느 정도까지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김인규 사장 : 외풍을 막는 건 당장 ‘어떻게’가 아니라 일정한 기간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따라 보고 판단하는 거지. 사실 그 내용을 잘 몰라서 언급하기 어려운데 앞으로 지켜보겠다.

사진제공. KBS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