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공중파 방송사는 더 이상 이슈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다. 방송사는 그 자체가 뉴스거리다. 한 방송사의 수장은 청와대에서 ‘조인트’를 맞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또 다른 방송사의 사장은 개그프로그램에 대해 일일이 지적한다. 또한 몇몇 프로그램은 존폐의 위기를 맞거나 그 성격이 대폭 변화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2년 동안 한국의 방송사들은 숱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결국엔 방송사 사장과 정치권의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상 초유의 일마저 벌어졌다. 한국의 방송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가 KBS 정연주 전 사장의 KBS 퇴임과 YTN 사장 교체 이후 지난 2년여 동안 정부의 방송 정책을 짚어보고,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정리했다. 또한 KBS 김인규 사장의 방송 정책에 대한 입장과 우리가 어쩌면 맞이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였다.

언론장악 전야│보라! 이 치욕을
언론장악 전야│보라! 이 치욕을
“보라! 이 치욕을.” 현재 MBC 로비에는 이런 문구가 인쇄된 종이가 붙어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와 가진 인터뷰가 있다. 김우룡 전 이사장은 4월호에서 “이번 인사는 김재철 사장 (혼자 한) 인사가 아니다. 큰집(청와대)도 (김 사장을) 불러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라며 MBC 사장 인선에 청와대가 개입했음을 인정했고, 그를 “MBC 좌파 청소부”로 임명했다고 말했다. 김우룡 전 이사장은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MBC 노조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김우룡의 막말이 아니라 정권과 김우룡이 합작해 공영방송 MBC를 철저히 유린했다는 사실”이라며 이 사건이 현재 진행형임을 분명히 했다. 의 고재열 기자가 “이번 사건은 정부의 언론 장악이 이제 언론을 능욕할 수 있는 ‘언론 농락’의 시대가 왔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한 것처럼, 이번 사건은 정부의 방송 정책이 또 다른 단계에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현 정부는 끊임없이 방송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왔다. YTN과 KBS 사장이 교체됐고, 미디어법 개정으로 대기업 및 신문의 공중파 진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부의 방송 정책은 시기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과 MBC < PD수첩 > 오역 논란 당시 정부가 내세운 것은 법이었다. KBS 사장 교체의 교체는 법으로 명시된 정부의 권한이고, MBC < PD수첩 >의 광우병 쇠고기 관련 보도는 일부 오역에 의한 오보로 고소 대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가 법적으로 KBS 사장을 임명하되 해임할 수 없다거나, < PD수첩 >에 대한 법적 규제가 언론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문제제기는 생략돼 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적어도 법을 통해 명분을 쌓았다.

더 이상 법의 테두리에 서있지 않는 정부의 영향력
언론장악 전야│보라! 이 치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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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디어 법이 “절차상 문제가 있었지만 통과된 것은 인정”이라는 판결과 함께 통과된 것을 전후로, 정부는 법을 내세우지 않는다.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와 김제동이 MBC 과 KBS 에서 물러났을 당시 방송사는 모두 높은 출연료를 이유로 거론했다. 여당은 국정감사에서 유재석과 박명수의 출연료가 높다고 주장했다. 출연료 대비 효율성의 문제는 경영진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다. 또한 진행자 교체는 시청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안이다. 방송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정부는 방송의 더 주관적인 영역에 쉽게 개입하고, 방송 콘텐츠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우룡 전 이사장의 발언은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법이라는 딱딱한 절차나 효율성이라는 명분은 더 이상 필요 없다. MBC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장을 불러 ‘조인트’를 까면 그만이다. 그리고, 정부는 콘텐츠 하나하나에 영향력을 갖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 에서 어린아이가 ‘빵꾸똥꾸’를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인규 KBS 사장은 KBS 에서 사회 풍자를 하는 캐릭터 ‘동혁이 형’이 보수 방송단체로부터 비판 받은 것에 대해 “지켜보겠다”는 답을 내놓았고, KBS 에 대해 “스토리텔링에 문제가 있다.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콘텐츠의 내용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서라도 방송사 사장이 자사 콘텐츠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그것이 제작진에게 보이지 않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KBS 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경주 최 씨 가문을 미화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논란을 빚었다. 이념적인 문제나 콘텐츠에 대한 호오를 떠나, 시청자들은 정부의 방송 정책이 자신들이 보는 프로그램에 눈에 띌 만큼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직접 보고 판단해야할 때
언론장악 전야│보라! 이 치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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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에서 방송 제작진들은 자기 검열의 고민에 빠진다. MBC에는 국장단과 임원들,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이른바 ‘리뷰 보드’가 생겼다. 이들은 리뷰 보드를 통해 특정 아이템에 대해 다루지 말 것을 요구하거나, 방향을 지시하기도 한다. 사실상의 사전 심의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MBC의 한 직원은 “위로부터 아침 방송에서 시사 좀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면 자기 검열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세종시 문제처럼 민감한 사안을 자꾸 피하려고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막말’ 방송이 될 수 있고, 민감한 시사 이슈는 ‘리뷰’를 통해 배제될 수 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곧 시청자가 볼 수 있는 콘텐츠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방송사 사장이 ‘조인트’를 맞고, 방송통신위원장이 여기자들 앞에서 “여자는 취업하지 말고 현모양처가 돼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이미 정부가 언론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공언한 것과 같다. 김재철 MBC 사장은 김우룡 전 이사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직후 MBC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장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중에는 직원들이 제작거부까지 하며 과거의 직책에서 물러나게 했던 인물도 포함돼 있다. 특히 < PD수첩 >을 이끌며 4대강 사업, 무상급식, 용산 참사 등 민감한 문제를 다뤘던 김환균 CP는 시사교양국을 떠나
창사 50주년 기획단으로 발령 받았다가 본인이 거부 의사를 밝힌 끝에 시사교양국에 남게 됐다. 아무리 내부적으로 많은 반발이 있어도, 정부와 그들이 임명한 방송사의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연주 KBS 전 사장이 “이제는 방송 관계자들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보고 판단해야할 때”라고 말한 것은 곱씹어볼만 하다. 지금까지 정부와 방송사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방송계 내부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그 결과로 콘텐츠의 내용이 바뀌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2년 전 정연주 전 사장이 KBS에서 물러날 당시 “어쩌면 < PD수첩 >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던 우려가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의 방송 정책이 부딪치는 곳은 방송사가 아니라 시청자가 보는 TV 브라운관 앞이다. 시청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난 2년간 정부가 추진해온 방송 정책은 이제 시청자의 문제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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