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몇날 며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저보다 한참 연배 높으신 어르신께 이런 편지를 올리는 게 도리가 아니지 싶어서요. 그래도 맘먹고 글을 쓰게 건 돌아가신 제 외할머님이 생각나서입니다. 예전에 신성일 씨께서 ‘강신영’이란 이름으로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셨을 적에 우리 동네 시장 통으로 선거 유세를 나오셨어요.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 지금으로 따지면 장동건이나 배용준에 필적할 톱스타가 손을 부여잡고 하는 간곡한 부탁이거늘 어느 누가 감히 거절 따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할머님이 안 된다고,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라고요. 손까지 저어가며 말이죠. 나중에 할머니께 ‘신성일이 그렇게 싫으셨느냐’ 여쭤봤더니 싫어서가 아니라 바로 전날 다른 후보에게 이미 ‘그러마’ 대답을 하셨기 때문이라더군요.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과의 약속을 대배우의 부탁보다 소중히 여기는 할머님의 대쪽 같은 성정이 어린 마음에도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할머님이 생존해 계셨더라면 SBS 에 출연하신 신성일 선생님을 보고 노여워 하셨지 싶어요. 그리고 저에게 이런 글을 써보라고 권하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경로사상이 그나마 살아있지 않았더라면…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사실 방송 전에 공개된 “아내는 아내, 애인은 애인이다”라는 독특한 결혼관을 피력하셨다는 기사를 보고 뜨악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요량이었습니다. 아무리 기혼자라 해도 다른 사람을 향한 설렘까지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평소 지니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배우자와 소통 불가인 부분을 나눌 또 다른 친구 같은 애인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고요. 물론 완급조절과 경계를 넘지 않으려는 의지가 반드시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죠. 그런데 부인 말씀을 들어보니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해 봤자 과거 난봉꾼에 불과하시더군요. 1973년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하셨을 당시 현지에서 옛 연인과 만나 한 달이 넘게 잠수를 타셨다고요? 부인의 어조로 봐서는 그런 경력이 한두 건이 아니듯 했습니다. 말이 좋아 영화 같은 로맨스고 남다른 결혼관이지 그야말로 간통죄에 해당하는 범죄 아닙니까? 간통죄 폐지가 적극 추진되고 있는 마당에 웬 촌스러운 얘기냐 하시겠지만 그 시절엔 마땅히 콩밥 먹고 남을 일이었잖아요?

몸이 건강하면 아름다운 여자와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란 말씀도 하시던데 보통 사람들은 그 같은 발칙한 생각이 들더라도 자제라는 걸 할 줄 아는 법이랍니다. 신성일 씨 말씀대로 내숭 떠느라 저지르지 못하는 게 아니고요. ‘남자로 태어나 바람 한번 못 피우면 등신이지’라는 뉘앙스를 스스럼없이 풍기시는 걸 보며, 그리고 그런 내용들이 여과 없이 방송에 나오는 걸 보며 세상이 좋아져도 너무 지나치게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세상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어쩌면 아직 경로사상이 살아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마 일흔 넘으신 어르신의 언행을 두고 왈가왈부하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일명 ‘무플’ 상태인 걸 수도 있고요. 어느 동네 닭이 우는가보다 하는 식의 무관심 말이에요.

신성일 아니라 브레드 피트라 할지라도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더 기막힌 건 정신 나간 일부 남자들이 ‘멋지다, 진정한 카사노바다, 하루를 살더라도 저렇게 살고 싶다’며 부러워했다는 사실입니다. 스튜디오에서도 마치 전설의 무용담을 접한 것처럼 ‘존경합니다’가 몇 차례 튀어나왔죠? 바람도 개인의 취향이고 습관일 터, 또한 부인께서 기꺼이 가납하시겠다는데 남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게 무에 있겠습니까. 다만 본인처럼 살라며 한참 나이 어린 축들을 부추기지는 마시라고요. 수 없는 간통에 심지어 뇌물수수로 복역까지, 입이 열 개라도 하실 말씀이 없지 않나요? 그리고 여성 패널들을 향해 ‘뭘 그리 독점하려 하느냐. 좀 놔줘’라고 일갈하신 부인 엄앵란 씨. 역시 남성 패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었죠? 뭐 다 좋아요. 사람은 각자 그릇대로 사는 거니까요. 그래도 부디 방송에 나와 그리 살아야 쿨한 여자인 양, 지혜로운 아내인 양 말씀하지는 마시지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의 부인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온갖 고초를 참고 견디실 수 있었나 본데 천하의 브래드 피트라 할지라도 다른 여자에게 마음 함부로 주는 남자는 질색인 여자도 있답니다.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어르신, 바람 피운 게 자랑은 아니잖아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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