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과 함께한 영화 <초감각 커플>에서 주인공 수민 역을 맡아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 때문에 외로운 인생을 사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아직 진구라는 이름은 적재적소의 조연으로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그가 타이틀롤을 맡은 경우가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주연 못지않은 존재감을 새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데뷔작인 SBS <올인>에서 단순히 이병헌의 아역으로서가 아니라 진구라는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반항적 매력을 보여주었고, 영화 <비열한 거리>에선 말 그대로의 비열함으로 주인공 병두(조인성)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최근 <마더>에서 보여준 거친 질감의 연기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탄 것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깜짝 스타도 아니고, 좋은 캐릭터 하나 만나서 연기력이 과대 포장된 배우도 아니다. 그는 비중에 상관없이 언제나 작품 속에 진구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 가능성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를 성장시켰다. 남우조연상 수상에 이어 <식객: 김치전쟁> 주인공이 된 것이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래서다. 배우로서 한 단계를 넘어서며 누구보다 훈훈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그가 겨울에 들으면 좋을 따뜻한 노래들을 추천했다.
소위 ‘소몰이’라 불리는 R&B식 창법도 아카펠라도 낯설던 시절, 보이즈 투 맨은 대중적인 감성으로 흑인음악을 한국에 알린 최고의 빅네임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하모니는 과거의 명곡들에도 보이즈 투 맨만의 색을 입혔는데, 진구가 추천하는 첫 곡인 ‘Got To Be There’ 역시 그렇다. “원래는 마이클 잭슨이 어릴 때 부른 곡이에요. 원곡을 더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보이즈 투 맨 버전의 곡이 더 풍성해서 좋아요. 그 풍성함이 따뜻한 감성을 전달하는 것 같아요.” 잭슨파이브로 활동하던 마이클 잭슨이 냈던 솔로 데뷔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이다. 원곡은 사춘기 이전 잭슨의 청아한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던 반면, 보이즈 투 맨 버전은 그들 특유의 하모니가 공간감을 채우고 그 사이를 뚫고 흐르는 가성의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이번 곡도 리메이크”라며 진구가 추천한 다음 곡은 애즈 옛의 ‘Hard To Say I`m Sorry’다. “아무래도 겨울에 듣기에는 멜로디랑 목소리가 감성적인 곡이 좋잖아요. 이 곡 역시 Az Yet 멤버들이 만드는 하모니가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곡이에요.” 록과 재즈가 결합한 퓨전 재즈의 대표 아티스트인 시카고의 원곡을 5인조 R&B 그룹 애즈 옛이 리메이크한 곡이다. 하이틴 스타였던 채시라가 출연한 모 초콜릿 광고 음악으로 더 잘 알려진 원곡이 건반으로 거의 모든 파트를 채우고 후반부 기타 솔로가 폭발하는 것에 반해, 애즈 옛의 ‘Hard To Say I`m Sorry’는 리듬 파트 외에는 철저하게 멤버들의 아카펠라로만 채워졌다. 특유의 창법 때문에 원곡에 비해 멜로디는 명료하지 않게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훨씬 간드러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 자체가 정말 따뜻한 이야기를 담았잖아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죠. 곡 하나하나가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중에서도 영화와 동명인 메인테마곡 ‘Cinema Paradiso’를 좋아해요.” 아마 음악 꽤 듣는 사람치고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결코 난해하지 않고 멜로디도 단순하지만 좋은 영화가 그렇듯 간결하게 듣는 이의 감성을 관통한다. <황야의 무법자>나 <미션>의 O.S.T 등 그가 남긴 수많은 마스터피스 중에서도 <시네마 천국> O.S.T의 ‘Love Theme’ 같은 곡은 엄청난 대중적 인지도를 자랑하는데, ‘Cinema Paradiso’ 역시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감성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는 명곡이다.
테마에 맞게 진구는 유독 R&B 타입의 흑인 음악을 많이 소개해줬는데 제임스 잉그램의 ‘Just Once’ 역시 마찬가지다. 흑인 음악의 대부 퀸시 존스가 마이클 잭슨의 메가 히트 앨범 < Thriller >를 프로듀스하기 1년 전 냈던 프로젝트 앨범에 실린 ‘Just Once’는 퀸시 존스 특유의 재즈적인 느낌과 제임스 잉그램의 허스키하되 거칠지 않은 목소리가 최상의 형태로 결합한 곡이다. 역시 레전드인 레이 찰스의 백업 보컬이던 제임스 잉그램은 이 곡으로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뭐랄까, 도시의 겨울 남자를 위한 BGM이랄까, 그런 멋있는 느낌이 나는 곡이에요. 그래서 혼자 운전할 때나 집에서 와인을 마실 때, 아니면 괜히 분위기를 잡고 싶을 때 틀어놓는 노래죠.” 진구의 설명대로 이 곡의 매력은 ‘소몰이’ 특유의 간지러움이 배제된 잉그램의 아름다우면서도 남성적인 목소리에 있다.
“곡을 추천하다 보니 제가 목소리가 풍성한 곡들을 좋아하는 걸 알겠네요.” 진구는 마지막 곡으로 포맨&박정은의 ‘How Do You Keep The Music Playing’을 고르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추천 리스트는 <시네마 천국> O.S.T를 제외하면 상당히 일관성이 있는데 ‘How Do You Keep The Music Playing’의 경우 ‘Just Once’를 부른 제임스 잉그램과 패티 오스틴이 함께 부르며 남녀 혼성의 진수를 보여준 곡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정통 소울 타입 여가수 박정은과 역시 탁월한 소울 보컬인 강태우가 리메이크한 ‘How Do You Keep The Music Playing’은 기본적으로 원곡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고 있다. 중반 이후 남성과 여성 보컬이 겹쳐지며 절제되던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은 곡의 하이라이트로 박정은과 강태우의 고음 처리와 테크닉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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