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떨어지는 단발머리에 야무진 립라인, 짙은 아이섀도.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드라마 속 악녀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 정석이 송윤아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지금의 그녀에게서 떠올리기 힘들다. 드라마 의 독한 디자이너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송윤아는 악역으로 인기를 얻게 된 배우들이 부딪치는 한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지적인 호텔리어(MBC ), 푼수 같은 다방 아가씨(), 어른스러운 부잣집 딸(MBC ), 공포영화 속 형사() 등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그녀는 매 작품 다른 캐릭터를 수집하는 콜렉터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배우로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행보와 달리 스타로서 송윤아의 이미지는 제법 일관됐다. 지적이고 여자답고 애교까지 겸비한 여자. 송윤아는 대중의 시선 안에서 언제나 ‘여자’였다. 에서 늘어진 티셔츠에 담배를 피워 물때도, 에서 구겨진 트렌치코트를 입은 형사일 때도 캐릭터의 모습이 생경할 정도로 송윤아의 여성성은 쉬이 감춰지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선머슴 같은 연수()는 짝사랑에 아파했지만, 극장의 불이 켜지면 송윤아는 다시 만인의 이상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본인도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던 송윤아의 이미지는 엄마라는 캐릭터와 만나 배우를 드러낼 수 있었다. 살림에는 무지하고, 아이보다 시청률에 목멘 싱글맘 영은(SBS )은 애교라고 주장하는 주책과 훈수라고 포장된 투정이 특기.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던 서영은은 늘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그 위에 부유하던 송윤아의 이미지를 깨끗이 닦아냈다. 조용조용 말하다가도 간간이 터지는 송윤아의 하이톤 웃음소리는 그대로 서영은의 평소 말투가 되었고, 고집불통 드라마 감독에게 눈을 흘기다가도 그의 사랑고백에 요동치는 서영은의 동그란 눈은 송윤아의 것이었다. 그렇게 송윤아는 배우의 진심을 보여줬다. 그리고 짧지만 강력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또 다른 엄마 의 지연도, 딸에게 영원히 우산이 되고 싶었던 의 고운도 관객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그녀의 무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송윤아가 강한 엄마들의 영화를 고른 것은 필연적이다. 다음은 얼마 후면 태어날 아기에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녀가 모성을 발견한 영화들이다. 1. (Malaton)
2005년 | 정윤철
“제가 을 선택한 이유는 장애를 이겨내고 꿈을 이룬 초원이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런 아들을 지켜낸 엄마의 마음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할 수 있는지, 얼마나 끝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실화이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도 굉장하구요. 실제로 배형진 군과 어머니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대단했어요. 자식을 위해 평생을 다 내어주는 모습에, 저게 엄마의 힘이구나 느꼈죠.”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라며 이백만 불은 넘어 보일 만큼 빛나게 웃던 ‘말아토너’ 초원(조승우). 그가 세렝게티의 얼룩말처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꿈을 꾸는 자의 특권이었고, 엄마(김미숙)는 그 꿈이 모진 말에 혹은 날선 눈빛에 상하지 않게 지켜냈다. 실제로 영화의 모델이 된 배형진 선수는 철인3종 경기도 치러 낼 만큼 강한 사람이었고, 은 그 강인함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2. (Flightplan)
2005년 | 로베르트 슈벤트케
“모성보다도 우선 너무 재밌게 본 영화예요. 정말 짜증나게 잘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웃음)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긴박감 있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너무 부러웠구요. 그리고 조디 포스터가 그 많은 사람들한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면서까지 자기 아이에 대한 믿음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엄마가 얼마나 강한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 같아요.”
조디 포스터는 밀실 그리고 모성과 인연이 깊다. 데이빗 핀처의 에서도 패닉룸에 갇혀 딸을 지켜낸 강한 엄마로, 에서도 비행기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결국 자신의 힘으로 딸을 찾아냈다. 스릴러물로서 다소 헐거운 이음새와는 별개로 그 어떤 음모보다 강력한 모성을 보여준 조디 포스터가 돋보인다. 3. (Seven Days)
2007년 | 원신연
“작년 개봉한 을 연출하신 윤재구 감독님이 각본을 쓰셨죠. (웃음) 장르적인 장치가 잘 갖춰진 스릴러지만 원제가 일 정도로 영화가 근본적으로 보여주려던 것은 엄마가 자식을 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영화 속의 상황이 현실에서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절절했구요. 의 엄마들은 의 지연과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그녀들을 통해 스릴러지만 가슴 절절한 모성이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요.”
는 윤재구 감독의 ‘구원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자식을 구하려는 엄마의 절박함을 스릴러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능력 있는 변호사이자 싱글맘인 지연(김윤진)은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살인범을 무죄방면 시켜야하고, 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또 다른 엄마(김미숙)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적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스릴러 장르임에도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2008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김윤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4. (The Joy Luck Club)
1994년 | 웨인 왕
“굉장히 오래 전에 본 영화예요. 그래서 처음 봤을 때는 어려서 별 공감을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고선 이 영화가 가끔 생각나요. 엄마와 아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다룬 영화가 아닌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나봐요. 이제 저도 살아보니까 정말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엄마와 자식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그럴까요? (웃음) 엄마니까, 가장 가까운 존재니까 막 대하기도 하고 살면서 실수도 많이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다양한 엄마와 딸들을 통해서 잘 그려진 것 같아요.”
가진 것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중국여자들이 미국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딸은 자기처럼 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관의 차이로, 과도한 애정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모녀는 조금씩 어긋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딸과 어머니라면 알 수 있다. 조이럭 클럽의 엄마와 딸들은 결국 울고 싸우고 지겨운 과정을 거쳐 다시 마주보고 웃게 되리란 걸. 그게 바로 모녀니까. 5. (Voice Of A Murder)
2007년 | 박진표
“가 납치된 아이를 찾는 엄마의 슬픔을 스릴러로 영화적 포장을 했다면 는 실화를 그대로 담은 영화죠. 박진표 감독님이 실화에 맞춰서 영화를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만들어서 더 공감이 갔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관계자분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로 아이가 납치된 놀이터에서 촬영을 해서 더 조심스러웠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라구요. 보는 저 역시도 내내 가슴이 아팠구요.”
1991년 발생했던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재연에 가깝도록 그려낸 영화. 어느 날 사라진 아들, 그리고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부부는 40여일을 끌려 다닌다. 남편(설경구)은 말라가고, 아내(김남주)는 멍이 들도록 가슴을 쳐보지만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도시적인 이미지로 각인됐던 김남주의 눈물로 부은 얼굴은 자식을 잃어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앞으로 엄마 역할만 해도 상관없어요. 계속 같은 역할만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부담은 없고, 이젠 난 엄마 역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요. 오히려 지금 상황이 감사해요. 다행스럽게도 서른이 훨씬 넘고 마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많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역할을 앞으로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요. 16년 전에 일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좋은 시기에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축복받은 세대 아닌가요? (웃음)”
에 까지 기어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엄마로 숨 가쁘게 찾아오고 있는 송윤아. 그러나 그녀에게는 엄마 역할로 고정될지 모르는 불안보다는 오히려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엔진을 얻은 자의 활기가 느껴졌다. 많은 여배우들이 운신의 폭이 좁고, 남자배우들에 비해 캐릭터의 한계가 뚜렷한 자신들의 처지를 토로하는 것에 익숙한 분위기에서 그녀의 말은 예상 외였다. 하지만 그 의외를 반문하는 동그란 눈에 가득 찬 자신감은 십 년이 지나도 누구의 엄마가 아닌, 단 한 명의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로 남겠다는 의지로 출렁였다. 그렇게 송윤아는 진심을 보여준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그러나 배우로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행보와 달리 스타로서 송윤아의 이미지는 제법 일관됐다. 지적이고 여자답고 애교까지 겸비한 여자. 송윤아는 대중의 시선 안에서 언제나 ‘여자’였다. 에서 늘어진 티셔츠에 담배를 피워 물때도, 에서 구겨진 트렌치코트를 입은 형사일 때도 캐릭터의 모습이 생경할 정도로 송윤아의 여성성은 쉬이 감춰지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선머슴 같은 연수()는 짝사랑에 아파했지만, 극장의 불이 켜지면 송윤아는 다시 만인의 이상형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본인도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던 송윤아의 이미지는 엄마라는 캐릭터와 만나 배우를 드러낼 수 있었다. 살림에는 무지하고, 아이보다 시청률에 목멘 싱글맘 영은(SBS )은 애교라고 주장하는 주책과 훈수라고 포장된 투정이 특기.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던 서영은은 늘 캐릭터를 소화하고도 그 위에 부유하던 송윤아의 이미지를 깨끗이 닦아냈다. 조용조용 말하다가도 간간이 터지는 송윤아의 하이톤 웃음소리는 그대로 서영은의 평소 말투가 되었고, 고집불통 드라마 감독에게 눈을 흘기다가도 그의 사랑고백에 요동치는 서영은의 동그란 눈은 송윤아의 것이었다. 그렇게 송윤아는 배우의 진심을 보여줬다. 그리고 짧지만 강력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또 다른 엄마 의 지연도, 딸에게 영원히 우산이 되고 싶었던 의 고운도 관객의 심장을 찌를 수 있는 그녀의 무기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송윤아가 강한 엄마들의 영화를 고른 것은 필연적이다. 다음은 얼마 후면 태어날 아기에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그녀가 모성을 발견한 영화들이다. 1. (Malaton)
2005년 | 정윤철
“제가 을 선택한 이유는 장애를 이겨내고 꿈을 이룬 초원이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런 아들을 지켜낸 엄마의 마음과 노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할 수 있는지, 얼마나 끝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에요. 실화이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가 주는 감동도 굉장하구요. 실제로 배형진 군과 어머니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대단했어요. 자식을 위해 평생을 다 내어주는 모습에, 저게 엄마의 힘이구나 느꼈죠.”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라며 이백만 불은 넘어 보일 만큼 빛나게 웃던 ‘말아토너’ 초원(조승우). 그가 세렝게티의 얼룩말처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꿈을 꾸는 자의 특권이었고, 엄마(김미숙)는 그 꿈이 모진 말에 혹은 날선 눈빛에 상하지 않게 지켜냈다. 실제로 영화의 모델이 된 배형진 선수는 철인3종 경기도 치러 낼 만큼 강한 사람이었고, 은 그 강인함이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2. (Flightplan)
2005년 | 로베르트 슈벤트케
“모성보다도 우선 너무 재밌게 본 영화예요. 정말 짜증나게 잘 만들었다 싶을 정도로. (웃음)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이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긴박감 있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너무 부러웠구요. 그리고 조디 포스터가 그 많은 사람들한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면서까지 자기 아이에 대한 믿음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엄마가 얼마나 강한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 같아요.”
조디 포스터는 밀실 그리고 모성과 인연이 깊다. 데이빗 핀처의 에서도 패닉룸에 갇혀 딸을 지켜낸 강한 엄마로, 에서도 비행기에 갇힌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서도 결국 자신의 힘으로 딸을 찾아냈다. 스릴러물로서 다소 헐거운 이음새와는 별개로 그 어떤 음모보다 강력한 모성을 보여준 조디 포스터가 돋보인다. 3. (Seven Days)
2007년 | 원신연
“작년 개봉한 을 연출하신 윤재구 감독님이 각본을 쓰셨죠. (웃음) 장르적인 장치가 잘 갖춰진 스릴러지만 원제가 일 정도로 영화가 근본적으로 보여주려던 것은 엄마가 자식을 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영화 속의 상황이 현실에서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절절했구요. 의 엄마들은 의 지연과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그녀들을 통해 스릴러지만 가슴 절절한 모성이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요.”
는 윤재구 감독의 ‘구원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자식을 구하려는 엄마의 절박함을 스릴러라는 그릇에 담아냈다. 능력 있는 변호사이자 싱글맘인 지연(김윤진)은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살인범을 무죄방면 시켜야하고, 살인범에게 딸을 잃은 또 다른 엄마(김미숙)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적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드물게 스릴러 장르임에도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2008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김윤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4. (The Joy Luck Club)
1994년 | 웨인 왕
“굉장히 오래 전에 본 영화예요. 그래서 처음 봤을 때는 어려서 별 공감을 못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고선 이 영화가 가끔 생각나요. 엄마와 아이의 아름다운 사랑을 다룬 영화가 아닌데도 오히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나봐요. 이제 저도 살아보니까 정말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엄마와 자식만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서 그럴까요? (웃음) 엄마니까, 가장 가까운 존재니까 막 대하기도 하고 살면서 실수도 많이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다양한 엄마와 딸들을 통해서 잘 그려진 것 같아요.”
가진 것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중국여자들이 미국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딸은 자기처럼 살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치관의 차이로, 과도한 애정으로 혹은 무관심으로 모녀는 조금씩 어긋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딸과 어머니라면 알 수 있다. 조이럭 클럽의 엄마와 딸들은 결국 울고 싸우고 지겨운 과정을 거쳐 다시 마주보고 웃게 되리란 걸. 그게 바로 모녀니까. 5. (Voice Of A Murder)
2007년 | 박진표
“가 납치된 아이를 찾는 엄마의 슬픔을 스릴러로 영화적 포장을 했다면 는 실화를 그대로 담은 영화죠. 박진표 감독님이 실화에 맞춰서 영화를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만들어서 더 공감이 갔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관계자분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실제로 아이가 납치된 놀이터에서 촬영을 해서 더 조심스러웠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라구요. 보는 저 역시도 내내 가슴이 아팠구요.”
1991년 발생했던 이형호 군 유괴사건을 재연에 가깝도록 그려낸 영화. 어느 날 사라진 아들, 그리고 걸려오는 협박 전화에 부부는 40여일을 끌려 다닌다. 남편(설경구)은 말라가고, 아내(김남주)는 멍이 들도록 가슴을 쳐보지만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한다. 도시적인 이미지로 각인됐던 김남주의 눈물로 부은 얼굴은 자식을 잃어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의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앞으로 엄마 역할만 해도 상관없어요. 계속 같은 역할만 들어오면 어쩌지 하는 부담은 없고, 이젠 난 엄마 역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요. 오히려 지금 상황이 감사해요. 다행스럽게도 서른이 훨씬 넘고 마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많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역할을 앞으로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요. 16년 전에 일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좋은 시기에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축복받은 세대 아닌가요? (웃음)”
에 까지 기어코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엄마로 숨 가쁘게 찾아오고 있는 송윤아. 그러나 그녀에게는 엄마 역할로 고정될지 모르는 불안보다는 오히려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엔진을 얻은 자의 활기가 느껴졌다. 많은 여배우들이 운신의 폭이 좁고, 남자배우들에 비해 캐릭터의 한계가 뚜렷한 자신들의 처지를 토로하는 것에 익숙한 분위기에서 그녀의 말은 예상 외였다. 하지만 그 의외를 반문하는 동그란 눈에 가득 찬 자신감은 십 년이 지나도 누구의 엄마가 아닌, 단 한 명의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로 남겠다는 의지로 출렁였다. 그렇게 송윤아는 진심을 보여준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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