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년, 역시 ‘재미있어 보여서’ 방송 일을 시작한 이후 다양한 예능,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던 그는 를 기획했던 정환석 감독의 부름으로 드라마에 첫 발을 디뎠다. “를 하게 되면서 연출의 매력을 새삼 느꼈어요. 대본 작업, 촬영, 편집 등 모든 과정에 관여하면서 그걸 조합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좋아요.” 하지만 는 연출보다 작가의 드라마고 자신은 앞으로 배울 게 더 많은 신입 연출가일 뿐이라며 또 다시 ‘빨개진’ 박준화 감독이 한번 보기 시작하면 밤새 빠져들 수밖에 없는 드라마들을 추천했다.

2004년. 극본 이경희. 연출 이형민
“방송 당시 유행어도 많이 만들었고 배우들의 의상이나 스타일도 모두 유행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약간은 암울하면서도 묘한 특유의 분위기에, 극단적인 설정조차 진짜처럼 느끼게 할 정도로 드라마 안에서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명장면과 명대사가 참 많았는데 특히 소지섭 씨가 어머니인 이혜영 씨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찾아가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저도 연출을 하지만 보는 사람이 그렇게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눈물 흘릴 만한 신을 만드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그리고 이 작품 때문에 임수정 씨가 이상형이 되는 바람에 눈이 높아져서 한동안 참 힘들었죠. (웃음)”

2006년
“연애도 안 하고 결혼할 생각도 없이 자기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40대 초반의 남자가 겪는 다양한 상황이나 내면을 정말 디테일하게 잘 그린 작품이에요. 주인공을 맡은 아베 히로시가 같은 전작의 이미지와 달리 영락없는 결벽증 노총각을 완벽하게 그려내는데, 특히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능청스럽게 잘 표현하는지 당시 노총각이었던 저도 감탄했어요. 상대역인 나츠카와 유이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평범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빠져들고 예쁘게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이상형은 임수정 씨, 내면의 여인상은 그 배우가 됐죠. (웃음) 40대의 남녀가 만나 서툴고 낯설어하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풋풋한 모습도 좋았고 주인공 쿠와노의 변화가 느껴지는 엔딩도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

2007년. 극본 이기원. 연출 안판석
“한 인간의 성취와 몰락을 너무나 잘 그려내면서 미워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미워하는 대신 이해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작품이에요. 주인공 김명민 씨의 연기도 좋았고, 예상치 못한 변신을 보여준 김창완 씨의 캐릭터도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 연출의 힘을 느끼게 해 준 드라마에요. 컷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움직이고 컷 수도 굉장히 많은데, 사실 컷이 많이 쪼개지면 몰입을 깨뜨릴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은 그 많은 카메라 무빙과 화려한 편집 사이에서도 어색함이나 산만함이 느껴지지 않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수많은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려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안판석 감독님의 연출력이 더 존경스러웠던 것 같아요.”
는 최근 방송 100회와 함께 막장 드라마 버전의 특집 ‘막돼먹은 상상극장’을 방송했다. 본편에서 늘 ‘찌질한’ 캐릭터만 보여주던 배우 정지순은 재벌 2세 ‘알렉스 정’을 연기하는 데 심취해 화려한 손동작을 준비해왔지만 박준화 감독은 구준표에 필적할 알렉스 정의 캐릭터에 비해 지나치게 평범한 의상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 막내 카메라 감독이 점퍼 모자의 장식 털을 떼어서 정지순의 코트 깃에 양면테이프로 붙이고 촬영을 재개했다. 이 같은 궁상과 웃음, 눈물 사이에서 한 회씩 쌓인 100회를 맞아 제작진의 감회가 남달랐음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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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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