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만약 당신의 인생이 과거 누군가의 것과 똑같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타임머신을 타지 않아도 과거의 그를 통해 예정된 나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영화 은 미국의 대통령 링컨과 케네디의 일화로 시작한다. 100년의 시간 차를 두고 너무도 흡사한 인생을 산 두 사람처럼 최연소로 부장판사가 된 김석현(지진희)은 점점 자신이 평행이론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상황이 30년 전 일가족이 살해된 한상준 판사와 동일하게 돌아가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김석현의 두뇌게임이 시작된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속도감을 자랑하는 빠른 편집과 평행이론이라는 대전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야기들은 모든 것을 뒤엎어버릴 마지막을 향해 에너지를 집중한다. 덕분에 결말로 향하는 길은 아우토반처럼 쭉 뻗었지만 반전을 위해 편의적으로 차용된 캐릭터들은 김석현을 제외하고는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일견 헐거워 보이는 평행이론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어딘가 익숙하지만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목격할 수 있다. 2월 18일 개봉한다. 다음은 영화의 기자 시사 후 이루어진 간담회 내용을 정리했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평행이론’처럼 당신은 운명주의자인가, 아니면 운명 개척주의자인가?
권호영 감독: 평행이론으로 인해 미래를 알게 된다면 과연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풀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됐다. 운명이라는 건 개인의 의지로 개척해 나갈 수도 있지만 그게 쉽진 않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많은 영화들을 준비하다 엎어졌는데 그러면서 느끼는 건 몸부림을 열심히 쳐도 안 될 땐 안 되고, 오히려 마음을 놓았을 땐 작품이 쉽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흐름을 타자, 운명을 따르자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영화에 묻어난 거 같다.
지진희: 을 찍기 전에 케네디와 링컨의 평행이론 사례에 대해 접했는데 너무나 재밌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케네디와 링컨이은 워낙에 유명하니까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많이 있어서 그 같은 이론이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결론내리기도 했다. 만약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30년 전에 나랑 똑같이 살았다면 아무도 모를 거다. (웃음) 하지만 영화 찍으면서 어느 정도는 운명이 존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종혁: 운명 같은 걸 믿는 편은 아니다. 신년에 운세나 점 같은 것도 안 본다. 그런데 영화처럼 정말로 그런 증거들이 다가온다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주인공처럼 거기에 말려들지 않을까?

“지진희의 액션은 무술팀보다 뛰어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의 경우 판사 역할임에도 액션 신이 많았다. 힘들진 않았나?
지진희: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가는 같은 하드보일드 액션영화를 찍어봤기 때문에 쉬웠다. (웃음) 오히려 주변의 스태프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재밌게 찍었다.
권영호 감독: 무술감독도 지진희가 여타 무술팀들 보다 몸이 좋다고 하더라. 기본적으로 액션에 맞는 몸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 추격신이나 차 관련 장면은 모두 직접 운전을 했고. 아무리 무술팀이 호위하고 촬영한다 해도 한순간 실수로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참 잘 하더라.
지진희: 힘들었던 건 여러 가지 감정 신들이었다. 처음엔 운명을 믿지 않는 석현, 운명을 믿어야 되는 상황이 됐을 때 그의 느낌 등 많은 감정의 변화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걱정했다. 다행히 촬영 두 달 전부터 대본 리딩을 하고, 감독님과의 만나서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여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남자들이 가득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지진희: 남자들만 나오니까 딱딱할 거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배우들이 다들 취미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해서 재밌었다. 촬영 전에 술도 물론 먹고, 등산도 하고, 대화를 많이 했다. 그런 사전 작업이 촬영에 도움이 많이 됐다. 그 덕분에 본 촬영에서 힘 낭비도 하지 않았고, 회차도 줄이고 제작비 남길 수 있었다. (웃음) 같이 촬영하는 내내 너무 재밌고 행복했다
권영호 감독: 지진희와 이종혁 같은 경우는 야구단 플레이보이즈 소속이라 쉬는 시간에 캐치볼도 자주 하고 분위기가 좋았다.

살인 용의자로 출연하는 하정우의 캐스팅에 지진희의 영향이 컸다던데.
지진희: 하정우에게 정말 미안했다. 살인자 역할만 벌써 세 번째라 사람들이 자기만 보면 무서워한다더라. (웃음) 그런데 하정우가 아닌 다른 대안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네가 안 해도 된다, 근데 너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 이렇게 설득하니까 자기가 이번에 출연하면 나중에 자기 영화에 나도 출연해야 한다더라. 그렇게 계약이 성립됐다. 하정우는 워낙 있는 모습 그대로가 살인자 같았지만 (웃음) 머리도 기르고, 이에 보철도 하고, 렌즈도 끼면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려는 노력을 해줘서 고마웠다.

그동안 부드럽고 반듯한 이미지로 오랫동안 기억됐는데, 에서의 모습은 어느 정도 그 틀을 깨는 것 같다.
지진희: 부드러운 이미지라는 게 TV를 통해서 보여진 모습이다. TV는 매체 특성상 온가족이 봐야하니까 그런 역할이 많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선 오히려 반대되는 캐릭터를 해왔는데, 그 영화들이 흥행보다는 마니아층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이어서 아직도 부드러운 이미지로 생각하시는 거 같다. 하지만 은 다분히 흥행성이 있는 영화다. 스릴러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아도, 운명을 믿거나 안 믿어도 모두가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의 차별점”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지진희 “하정우에겐 정말 미안하다”
에서 김석현 판사의 부성애가 강조되기도 하는데, 실제 아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인가?
지진희: 음… 애는 잘 모르겠다. (웃음) 아이를 낳고나서 생각해봤는데 아이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와 아내를 통해서 나온, 나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자고 생각한다. 옆에서 보면 잘못됐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웃음)

도 아직 흥행에 있어 건재하고, 한국영화들도 속속 개봉하고 있다.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만의 강점을 무엇일까?
권영호 감독: 아무래도 소재가 차별화되지 않나 싶다. 한국에서 이런 판타지적인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도 쉽지 않고, 투자받기도 힘들다. 물론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다는 것도 힘들고. 그래도 좋았던 건 할리우드에서도 벌써 나왔어야 하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먼저 만들었다는 것이다. 음악작업을 미국에서 했는데 의 내용을 들으면 다들 흥미롭게 생각하더라. 외국의 영화 관계자들도 평행이론에 대한 흥미를 많이 갖고 있고. 다른 한국영화들과 다르게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게 차별점이 아닐까?

영화를 본 관객이 어떤 느낌을 받고 돌아가길 원하는가?
권영호 감독: ‘아, 운명이라는 건 역시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되는구나’ 혹은 ‘이건 말도 안돼’ 이럴 수도 있는데 그저 영화적 재미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영화는 영화니까.
지진희: 권영호 감독 말이 답인 거 같다. 그리고 영화 속에 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으니까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볼 수 있을 거 같다. 아이에게 초점을 맞추면 ‘애를 살려야 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운명에 집중하면 ‘운명을 막아야 돼’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이종혁: 그냥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개척할 것인가, 나에게도 평행이론이 있을까? 이런 갑갑한 마음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다. (웃음)

그렇다면 살면서 ‘어, 이게 운명인가’ 하고 느꼈던 순간이 있나?
지진희: 몇 년 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었다. 차는 덤프트럭 3대가 덮쳐서 흔적도 없는데, 난 티끌 하나 안 다치고 멀쩡한 걸 보면서 내가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가라고 생각해봤다. 그리고 지금 든 생각인데 십여 년 전에 < H >라는 영화를 찍었고, 지금도 이란 스릴러 영화를 찍었다. 그런데 < H > 이후엔 을 찍었고, 이후에는 역시 이병훈 감독의 를 찍는다. 게다가 이후엔 이란 코미디영화를 찍었는데 이번에 이후엔 이란 코미디 영화가 개봉한다. 이것 또한 반복되는 운명 아닌가? (웃음)
이종혁: 와, 그렇게 계속 반복되면 작품 많이 했겠다. (웃음) 난 운명을 믿는 편이 아니지만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로 전문대 연극영화과 붙은 게 운명이었던 거 같다. (좌중 폭소) 음…진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리고 아내를 만난 것도 운명이고. 하지만 운명은 개척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여러분, 운명은 개척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진희: 이래서 현장이 재밌었다. (웃음)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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