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키는 컸지만 몸치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던 시기에 극단 오디션 전단을 봤다. 그저 나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그리고 덜컥, 붙어버렸다. 최다니엘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길을 걷다 주운 동전이나 머리 위로 떨어진 낙엽처럼 그렇게 우연히 다가왔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극단의 문을 두드렸던 고등학생 때부터 KBS2 <그들이 사는 세상>의 ‘미친 양언니’ 양수경을 연기하게 되기까지의 수년 동안 최다니엘은 여러 CF의 단역을 거쳤지만 그 하나하나의 이력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스스로를 연기하는 사람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은 많아지고,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그나마 내 안에서 잘할 수 있는 게.” 물론 그것이 작품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때 어떤 절실한 바람도 공허한 수사가 될 뿐이다. 하지만 이 젊은 배우는 자기 성질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민폐형 캐릭터 양수경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며 성공적인 연기 데뷔를 했고, 현재 그 반대 지점에 있는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의 냉혈인간 이지훈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끌어 모으고 있다.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필모그래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배우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이지훈 캐릭터의 인기를 수직 상승시킨 <지붕 뚫고 하이킥>의 러브라인에 대해서도 그를 통한 인기보다는 세경과 정음에 대한 지훈의 마음을 분석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그런 ‘배우’ 최다니엘이 “별 감정 없이 듣지만 듣다 보면 감정이 어느 한 쪽으로 움직이는” 경험을 선사하는 애청곡들을 추천했다. 그가 양수경과 이지훈이 되어 전달했던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연기가 아닌 음악으로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1. Damien Rice의 < O >
“‘The Blower`s Daughter’를 통해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을 처음 접했어요. 그 곡이 들어 있는 < O > 앨범을 들으면서 그 사람의 곡들을 좋아하게 됐죠. 크리스마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새벽까지 그 앨범에 있는 ‘Delicate’를 들었어요. 사실 빨리 씻고 자야 되는 상황인데 마냥 듣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데미안 라이스에 대한 글을 남겼고요.” 영화 <클로저>와 함께 이제는 국민 팝송이 된 ‘The Blower`s Daughter’로 이제 데미안 라이스는 너무나 낯익은 이름이 됐다. 서로 만들어 가는 사랑에 대해 ‘그저 연약할 뿐’이라고 정의하는 ‘Delicate’는 아마 데미안 라이스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하는 제목이지 않을까. 연약하다는 뜻과 섬세함, 우아함을 뜻하는 이 단어는 너무나 섬세해 부서질 것 같은, 그래서 아름다운 데미안 라이스 특유의 감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2. 양동근의 < Travel >
“개인적으로 양동근 씨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음악 역시 연기처럼 하는 거 같아서 좋아요. 어쩌면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가수가 부르는 게 더 나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양동근 씨의 경우에는 음악 외에 연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묻어 나와서 좋아요. 그 중 ‘You Sir’를 되게 좋아하는데 사실 욕설 때문에 가사가 대중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거예요.” 사실 정규 4집까지 발매하고 탁월한 비보잉 실력까지 갖춘 양동근을 ‘연기자 출신’뮤지션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제는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착하게 살어’ 같은 곡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그에게서는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강한 자의식이 느껴진다. 하지만 최다니엘의 말처럼 느릿하되 세상을 향한 공격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You Sir’와 같은 곡에서 그는 단순히 라임을 맞추는 것을 넘어 마치 일종의 목소리 연기를 들려준다. 말하자면 뮤지션과 연기자의 행복한 교집합인 셈.



3. Aerosmith의 < Armageddon O.S.T >
“사실 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에어로스미스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영화 <아마겟돈>을 통해 에어로스미스의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을 듣게 됐는데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노래 부르는 아저씨(스티브 타일러)가 거의 절규하듯 ‘으아악’ 하고 내지르는 부분이요.” 아메리칸 하드록의 살아있는 전설인 에어로스미스가 보컬 스티브 타일러의 딸인 리브 타일러의 영화 <아마겟돈> OST에 참여하며 부른 곡이다. 특히 현악 인트로에 이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과거 록킹하기만 했던 시기보다 훨씬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그 모든 악기의 음색을 뚫고 울려 퍼지는 스티브 타일러 특유의 거친 목소리는 그가 왜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인지 증명한다.



4. Ryuichi Sakamoto의 < Playing The Piano >
“류이치 사카모토나 이루마 같은 연주인들의 피아노곡 듣는 걸 좋아해요. 특히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뭔가 잔잔하다가 쾅쾅거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난 것 같은, 시각적인 영상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에요.” 류이치 사카모토의 첫 영화음악 작업이었던 <전장의 크리스마스> 수록곡이자 영화 원제이기도 한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류이치 사카모토다운 뉴에이지풍의 연주곡이다. 신시사이저의 잔잔한 울림으로 시작되며 서서히 동양적인 느낌의 멜로디라인과 리듬파트가 덧입혀지며 점차 버라이어티해지는 구성을 보여주는데 그 특유의 입체적 사운드는 최다니엘의 추천 이유처럼 시각적인 이미지를 자극하는 수준이다.



5. 리쌍의 < HEXAGONAL >
“장기하와 리쌍이 함께 한 ‘우리 지금 만나’는 지금 제 컬러링이기도 해요. 장기하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작가님을 통해 국제기아·질병·문맹퇴치기구 JTS(Join Together Society) 행사에 가게 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만나서 참 좋더라고요. 빨리 2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리쌍의 여섯 번째 앨범 < HEXAGONAL >이 탁월한 점은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해 이적, 캐스커, 윤도현 밴드 등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특히 최다니엘이 추천한 ‘우리 지금 만나’는 전혀 다른 음악을 하는 두 뮤지션이 부딪힐 때의 긴장감보다는 서로의 세계를 받아들이며 벌이는 난장의 흥겨움이 살아있는 곡이다.




“워낙 밖에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촬영 때문에 만날 차에 있고 촬영장에 있어서 인기나 그런 건 못 느끼겠어요.” 이제 막 대중의 인기를 얻기 시작한 신인의 속 보이는 겸손일까. 하지만 연기를 하게 되며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에 대해 “나란 사람이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란 걸 얻었다”고 말하는 모습에는 첫 오디션을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를 지탱하게 해준 어떤 절실함이 느껴진다. 대중적 인지도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포털 CF의 한 장면을 위해 운동장 40바퀴를 군소리 없이 뛰던 시절이나 크리스마스나 연말도 없이 <지붕 뚫고 하이킥> 촬영을 위해 세트에서 대기하는 지금이나 그는 여전히 연기를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고, 심지어 잘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스타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단 세 개의 작품만으로 그 이후를 기대하게 만드는 배우는 스타보다 흔치 않은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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