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인터뷰라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가장 사적인 만남을 가장한 가장 공적인 만남”이라고 답한 적이 있습니다. 1시간, 길게는 3, 4시간 남짓, 결국 기사생산을 위한 자리라는 전제를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터뷰는 최근의 성과에 대한 평가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 꽤 안타까웠습니다. 좀 더 가깝게 의자를 당겨서 듣는 소소한 대화에의 갈망. 편집장인 백은하가 필름 카메라로 직접 찍고 직접 인터뷰하고 직접 쓰는 순도 100% 아날로그 인터뷰, ‘인터뷰 100’은 그렇게 시작 되었습니다. 게으름을 떨지 않는다면 격 주 목요일 마다 새로운 대화 상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 풍경의 첫 번째 초대손님은 영화 의 배우 설경구 입니다.설경구: 우와- 정말 오래간 만이야, 오늘은 인터뷰 말고, 정말 옛날 친구 만나는 마음으로 나왔어. 우리가 마지막 인터뷰 한 게 촬영 할 때였나? 부천 세트 분장차에서?
100: 네, 기억하시네요. 그게 마지막이었죠. 설경구: 하 아- . 내가 그 때부터가 힘들었지. 망하고 (웃음) 8개월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러다가 찍는다고 해서 한 달 만에 살 겁나게 빼고, 사람 패닉 되고. 오죽하면 찍을 때는 ‘감독님 오늘 고만 찍으면 안 돼요?’라고 물어봤겠어.
100: 정말? 다시 찍자고 조르는 사람이지, 그만 찍자는 그런 말 안 하는 사람이잖아요
설경구: 그러니까 말이요.
100: 사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설경구라는 배우의 행보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어, 이건 뭐지? 뭔가 다른 세계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설경구: 응, 맞아요. 나 다른 세상에서 살았어. 뭔가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영화판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영화전문매체는 줄줄이 없어지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들도 하나 둘씩 사라지고, 뭔가 낯설어졌어. 그래, 이 기점이었네. 개인적으로 일도 많았고, 때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어디로든 그냥 끌리듯이 갔어.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아닌 거 알면서도 갔던 적도 있었고.
100: 그래서인지, 이후 스크린 위의 설경구는 어쩐지 낯설어 보였어요.
설경구: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좀 피폐해졌다고 하나? 황폐해졌다고 하나. 주변이 계속 어수선했고.
100: 이젠 좀 나아진 것 같으세요?
설경구: 응, 좀 많이 나아진 것 같아. 개봉하면서부터 정신적인 충격도 왔고 흥행도 그렇지만 뭔가 참 이상했어. 어쩌면 지금도 연장선상인지도 모르지… 영화 하는 사람들하고 잘 안 어울리게 되고, 아예 나다니질 않았으니까.
100: 영화 데뷔 이후 오로지 칭찬과 찬사 일색이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등을 돌려버린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설경구의 연기이야기 보다 개인사에 대해 왈가왈부 하게 되면서부터 언론과 대중의 숨겨진 이빨을 본 느낌이 들진 않았을까 하는.
설경구: 그래서 좀 닫고 있었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을 하든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들이 들어오니까. 할 말만 하게 되었던 거지. 전에는 욕이라도 많이 했지, 지금은 욕도 안 해. (웃음)
“외롭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가슴 찢고 싶은 경우도 많고” 100: 도 그렇고 도 아버지라는 정체성이 캐릭터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동력이 되잖아요. 혹시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설경구: 내가 우리 아버지 말을 잘 참 안 들어서 말이야. (웃음) 별로 안 친하지 뭐. 그런데 한국, 특히 우리 세대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친한 경우 거의 없는 거 같지 않아? 엄마랑은 그나마 말은 하는데, 어쩌면 아버지가 외롭다는 걸 아니까 오히려 감상적으로 되는 게 싫어서 그런가 봐.
100: 본인도 외로우세요?
설경구: 나도 외롭지. 표현을 안 하려 해서 그렇지 가슴을 찢고 싶은 경우도 많고. 그리고 내 아버지, 당신도 나만큼 외롭다는 거 아는데, 알면서도 가까이 안 가려고 하거든. 40 넘고 나니까 잔소리하는 거 듣기도 싫고 (웃음). 친구 놈들 보면 아들 중학교 올라오면서부터 멀어진다고 하더라고. 외로운 사람들이야 아버지들은.
100: 충남이 고향이시죠? 그래서인지 충청도 사람 같은 느낌이 여전히 살아 있어요. 느리면서 할 말 다하는 징글징글한 말투. (웃음)
설경구: 하하하하. 태어나기만 했지. 거기서 땅을 딛고 걸어 다닌 적이 없으니까 기억은 없어. 어릴 때 바로 마포로 왔으니까. 아버지가 군산이고 집에서도 쓰시니까 그럴 거야. 충청도 말을 가끔 하면 재미있어.
100: 어릴 땐 어떤 학생이었어요?
설경구: 뭐야, 오늘 무슨 호적 조사하는 날인가? (웃음) 있으나 마나 한 아이? 평범 그 자체! 연극영화과 간다고 했을 때 담임 선생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나네. 헉, 진짜 황당하다는 표정. 사실 배우가 아니라 연출을 하겠다는 거였는데 남들처럼 어릴 때 집에 캠코더가 있어서 비디오를 찍어봤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막연히 감독을 꿈꿨던 거지. TV 연예프로그램에 가끔 나오는 촬영현장의 감독들을 보면, 아 저게 정말 남자 직업이구나, 생각했었던 거야. 야상 같은 거 입고 머리도 막 헝클어져있고 인상도 구기고 뭔가 야전사령관 같달까? 그 겉멋에 감독한다고 한 거지. 그런데 막상 대학을 들어가 보니 다들 구체적으로 준비들을 한 녀석들이더라고. 프랑스 영화네, 문화원이네, 그 친구들 비하면 나야 그냥 일반인 수준이었고.
100: 그러던 사람이 영화 연출도 아니고 결국 연극 배우 일을 했단 말이죠.
설경구: 보통 당시 극단일 시작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봉 10만원이라고 했는데, 나는 4학년 2학기 때 연극판에 나가서 월급을 50만원을 받았어. 정말 너무 부자가 된 것 같은 거지. 만 원권으로 50장을 반으로 딱 접어서 쑥 찔려 넣으면 주머니가 빵빵- 한 거야. 다들 배고픈 연극판이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배고팠던 적이 없었어. 다음 달 되니까 60만원을 주네? 끝날 때쯤 80만원을 받았어. 남들 몇 년치 연봉을 이미 다 받은 셈이었지.
“이제는 영화판도 연대의식 같은 게 없어졌어” 100: 그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면서요.
설경구: 하하.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야. 한양레파토리에서 너무 나오고 싶은 거야. 이미 졸업은 했는데 거긴 학교의 연장이었으니까 뭔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그냥 나간다고 하면 안 놔줄 것 같아서 최형인 선생님에게 공무원시험 본다고 뻥을 친 거야. (웃음) 그런데 내가 참 즉흥적인 게, 싫어서 나오긴 했는데 당장 아무것도 없었지 뭐. 돈은 필요한데 집에 손 벌릴 수 없으니까 결국 바로 다음날 학전에 있는 선배한테 포스터 아르바이트라도 달라고 한 거야. 그런데 참 신기한 게, 내가 그 바닥을 결국 안 떠났다는 거야. 물론 그때 떠났으면 결국 인간 말종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웃음) 어쨌든 그렇게 학전에 한 달 반쯤 있었나? 갑자기 안 할래? 하더라고. 김민기 선생이 오다가다 포스터 붙이는 나를 보고, 쟤 성실한 것 같다고 같이 하자고 한 거지. 그게 유일한 오디션이었어. 각계각층 온갖 경력을 가진 배우들이 모여서 3개월 연습을 했는데 와 이건 너무 재미있는 거야. 그게 의 시작이었지. 게다가 이게 또 장사도 잘되었고. 영화 하기 전에는 월 200, 내가 세피아를 몰고 다녔다니까. (웃음) 그런데 끝내고 나니 진짜 일이 없더라고. MBC 썼던 이선미 작가가 연극출신인데 그때 나를 정성주 작가에게 추천 한 거야. 그게 아침드라마 였던 거지. 내가 인복이 정말 좋아.
100: 이후로 다시 드라마 할 생각은 안 한 거예요?
설경구: 왜 안 해? 불려 다니기도 많이 불려 다녔지. 공식 오디션은 아니었지만 1대 1로 보자는 경우가 있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쓱 훑어보는 그런 거 있잖아. 나는 그 눈빛이 너무 싫더라고. 그러다 찍고 찍고 나니까 이창동이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 거야.
100: 를 보구요?
설경구: 응, 원래 그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는데 친구들이 설경구란 애를 꼭 보라고 해서 봤대요. 보고 싶었다면서 시나리오를 주더라고. 그런데 영화가 들어가려면 투자가 되어야 하는데 설경구로는 힘들다고. 이번엔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난 거니까, 다음 작품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하자고 하셨지. 지하철 타고 오면서 한방에 읽었는데, 와 이 시나리오가 무슨 소설책 같더라고. 그러던 어느 날 밤 혹시 지금 집에 가면 만날 수 있냐고 전화가 왔어. 이창동 감독님이랑 명계남 대표랑 찾아와서, 너 이 영화 하고 싶냐? 고 묻더라고. 그래서 하고는 싶지만 능력이 안돼서 못하겠는데요, 라고 했지. 민폐 끼칠 것 같았거든. 어쨌든 내일 와서 오디션 한번만 보라고 해서 결국 그 다음날 가서 머리에 총 겨누는 장면을 연기 한 거지. 뭐 들게 없어서 빗 들고. 그런데 다음날 나더러 김영호를 하라고 연락이 온 거야. 오디션 영상을 보던 이창동 감독 사모님이 지나가면서 툭 던진 한마디 “쟤가 김영호네” 했다 더라고. 소름이 끼치더라고. 그리고 미술감독이 시나리오 보고 그린 몽타주가 딱 나였다더라고.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한 열흘 너무 무서워서 오케이를 못했어. 그것도 그럴 것이 로 영화판에 잘 안착한 이창동 감독도, (명)계남이 형도 넉넉하게 영화사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내가 조지면 다 조질 것 같아서 무섭더라고. 그런데 결국 그냥 하겠다고 결심했어. 내가 언제부터 영화한 놈이라고 망하면 영화 더 하지 말지 뭐. 연극판 돌아가자. 이게 끝이다, 끝! 하고.
100: 아 그게 벌써 10년 전이네요.
설경구: 얼마 전 한 기자가 지금 돌아간다면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서 개봉하는 날, 이라고 답했어. 난 지금 그때 그 시절이 간절해. 그때의 사람들이나 그 시절의 기운들이. 오늘도 인터뷰하러 나오면서 되게 설ㄹㅔㅆ거든. 그때 이랑 인터뷰 하면서 울었던 거 그런 게 너무 그리운 거야. 2000년 1월 1일 0시 피카디리 극장 마당 앞에서 가짜 눈 뿌리면서 즐거워하던 그 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이은주가 엄마랑 놀러 와서 네잎 클로버 선물해주고 갔던 것도 기억나고. 개봉이 딱 1월 7일인데 어쨌든 1월 첫째 주니까. 10년이 된 거야. 딱 10년. 그땐 영화 만드는 사람도 배우도 기자들도 다 동료 같았는데 말이야, 같은 일을 하는 사람 같은 연대의식. 이제는 그런 게 없어. 10년이 짧다고 생각했는데 길더라고.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 100: 그러다가 2002년쯤인가. 에 줄줄이 출연하는 설경구를 보면서 이거 참 연구대상이네, 했어요. 아니 어떻게 이창동이랑 일하던 배우가 강우석에 이어 김상진 감독과 저렇게 죽을 맞춰서, 그것도 잘 맞춰서 일을 할 수 있나 하는 의문. 물론 배우가 감독의 취향과 성향을 따진다는 것도 우습지만, 이 감독들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다는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의 가정은 1. 설경구는 의외로 계산하면서 사회생활을 잘하는 구나 2. 설경구는 혹시 아무 취향도 없는 무대뽀 아냐? 였어요. 당시에는 전자에 더 혐의를 두고 있었지만 돌이켜 보니 결론은 후자, 이 사람 정말 무대뽀구나 더라구요. (웃음)
설경구: 나? 무대뽀지. 꽂히면 그냥 가는 거야 앞 뒤 계산 없어. 물론 어떤 사람에 대한 내 나름의 선입견은 있지만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건 없어. 강우석 감독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별로 신경을 안 썼고, 그냥 시나리오를 봤는데 재미있더라고, 진짜 골 때리게 엉뚱하고. 그래서 그냥 하자고 했지 뭐. 오히려 끝나고 생각이 많아져서 그게 문제였지. 그 때는 촬영하고 있는 중에 일부러 다음 작품을 미리 결정을 해버렸어. 시나리오 받는 게 너무 부담스럽고 거절하는 게 너무 힘들었으니까. 그러면서 강약을 조절한다고 이런 영화 다음엔 이런 영화, 하는 식의 머리를 썼던 것 같아. 그게 얼마나 멍청한 짓 이였는지를 지금에야 알지. 나 같은 놈은 머리를 쓰면 안 되는 거더라고. (웃음) 도 그냥 계산 안하고 결정 한 거야. 시나리오를 읽는데 엔딩 30분이 너무 아팠거든. 꼬이고 꼬인 인생을 풀려고 하는데 그게 풀어지지 않을 때의 막막함. 물론 김우형 촬영감독이 있으니까 하자, 하는 계산 정도는 했지 (웃음).
100: 촬영감독과의 교감은 확실히 배우에게는 감독이상으로 중요한 것 같아요.
설경구: 어휴, 너무 중요하지. 결국 연기를 담아내는 마지막 사람은 촬영감독이니까. 찍으면서 김우형 촬영감독과 서로 참 좋아하고 믿었어. 도 김우형을 잡으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웃음) 김우형과 같이 라면 언제라도 또 작품하고 싶어. 말수가 없어서 그렇지 얼마나 귀여운데. 문자 메시지도 귀엽게 보내고. (웃음)
100: 한때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가 한국영화계를 다 이끌어간다고 말하던 시절에 비하면 현재 남자배우의 풀이 넓어진 것 같아요. 물론 그때는 서로 비교된다는 부담은 있었겠지만 그래도 서로 많이 이야기도 하고 챙기고 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좀 외롭게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설경구: 에이, 그렇진 않아. 언제는 안 외로웠나? 배우는 결국 혼자 가는 거야. 독고다이. 그래서 다들 정신병도 좀 있고. 그나마 배우들하고는 좀 다른 느낌이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자꾸 보고 자주 만나고. 그 팀은 참 묘해. 지방에 쳐 박혀 촬영을 해서 그런가, 영화가 잘 되서 그런가. 생일파티도 하고 누구 촬영장 놀러 가자 그러면 다 와. 자꾸 모이게 되더라고.
“날 가두지만 않으면 어떤 감독이든 다 맞출 수 있어” 100: 사실 는 설경구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이상한 좌표에 있는 영화예요. 늘 원톱에 가까운 영화를 선택했던 것에 비해 는 사실 꼭 설경구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그런 영화였거든요. 게다가 설경구와 달리 윤제균이란 감독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감독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런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설경구: 어떤 감독이랑 제일 잘 맞으세요?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나는 그랬어. 다 안 맞는다고. 모두 맞춰가는 거라고. 는 뭔가 사고 칠 것 같은 영화였어. 사고 치면 제대로 치고 아니면 제대로 쪽박 찰 것 같은 느낌. 사실 윤제균이란 감독이 그냥 보면 똑똑하고 약은 사람인데, 내 눈에는 순수하더라고. 탁해 보이지가 않았어. 나는 그리고 감독한테 정말 잘 맞춰줘. 찍으면서 (류)승범이가 놀래더라고. 경구 형은 다 맞춰주려고 한다고. 내가 감독이 아닌데 어쩔 거야. 배우가 맞춰야지. 물론 내 행동을 불편하게 하면 짜증나지. 앵글 속에 배우를 가두려고 하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경우엔 좀 힘들어. 일단 날 가둬두지만 않으면, 나는 다 맞춰서 갈 수 있어.
100: 때 인터뷰를 보면 유독 그때 힘들어하고 있구나, 외로워하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설경구: 개인적으로 힘들었지. 이어져서 때는 최악이었어. 그때 같이 다니던 매니저한테 미안할 정도로. 개인사가 일에 영향을 안주는 사람이 아니거든. 카메라 앞에서 감정 상태를 무 자르듯이 싹 자르고 들어가진 못하는 것 같아. 표정을 못 숨겨, 다 나와. 송해성 감독이 그랬거든. 얘는 NG나면 얼굴에서 다 티가 난다고. 한지승 감독이나 (김)태희에게 정말 미안하지. 때가 정점! 그 즈음에 내가 자주 했던 말이 ‘바닥까지 다 쳐봤다’였거든. 정말 그랬지 뭐. 그런데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니까 편해져. 요즘은 자주 하는 말이 ‘물 흐르듯이 가자’야. 어쩌면 예전보다 더 무대뽀가 된 건지도 모르지. (웃음)
100: 이제 올해로 마흔 셋이고, 머리 보다는 몸으로 직감으로 연기하는 타입인데 에너지가 딸린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설경구: 체질이 건강체질인가, 잘 안 아프고 아직은 팔팔해. 부검장면을 아침에 시작해서 밤을 꼴딱 새면서 찍었어. 그런데 나는 계속 찍었으면 좋겠더라고. 다크 써클 확 패이고 눈 풀려서 맛이 가고 있는 내 얼굴이 이 신에 너무 잘 맞아서 좋더라고. 그래서 오늘 끝내자, 몇 시가 되더라도! 라고 했지. 그런데 아침 7시쯤 되니까 나만 팔팔하고 다 찌그러져서 자고 있는 거야. 거기다 대고 어떻게 촬영하자고 해 그냥 접었지. 나는 잠이 안 와 현장가면. 절대 잠이 안 와. 정신력이 잠을 이겨. 100: 그나저나 그 손은 언제 봐도 참 크고 두툼해요. 에서 내 손 참 착하죠, 하던 그 손.
설경구: 이 손 때문에 때 인서트 찍으려고 촬영 없는데 파주까지 갔었잖아. 갑자기 손이 필요한데 대역을 못 찾은 거야. 이렇게 생긴 손이 없어서. (웃음) 때 (정)준호랑 수영장에서 싸우는 신 찍고 내 손을 보는데 이 큰 손이 퉁퉁 불기까지 해서 꼭 피 빠진 돼지족발 같더라고.
100: 손도 그렇게 생기고 강철중 같은 캐릭터 때문인지 ‘설경구=거친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설경구: 잘 모르는 사람은 날 진짜 거친 사람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 폭력적이고. 그런데 만나고는 의외의 모습이라고 하더라고. 뭐가 의외야 이게 나지? 쑥스러운 게 많은 그냥 그런 사람이야
100: 요즘 젊은 남자배우들은 멜로영화를 하면 뭔가 배우로서 한 단계 낮아지는 거라고 인식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강하고, 더 거칠고 더 남성적인 역할을 쫓고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설경구 씨는 때부터 자신의 모든 영화가 멜로라고 주장하고 계신데 (웃음) 여전히 제대로 된 멜로 영화에 대한 기대가 있으신가요?
설경구: 글쎄 멜로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40이 넘어야 제대로 된 사랑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이벤트 이야기, 연애 이야기 말고. 진짜 사랑의 진액 같은 거.
100: 여전히 잘 우세요? 때 시나리오 읽다가 여관방에서 혼자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는 어제 들었던 것처럼 생생하거든요.
설경구: 물론 개인사에도 변화가 많고 주변도 많이 바뀌었지만, 나는 내가 별로 변한 것 같지가 않아. 여전히 눈물이 많고 아직도 울컥울컥할 때 많고. 물론 최근엔 눈물이 올라와도 참으려고 하는 편이지. 오히려 요즘은 가만히 있다가 눈이 촉촉이 젖을 때가 있어. 우울증은 아니고 (웃음)
100: 어쨌든 그렇게 2010년이 왔네요.
설경구: 그러게, 또 다른 10년이 시작 될 텐데… 남은 10년이 꽤 재미있을 것 같아. 10년이란 시간이 너-무 길더라고. 물론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웃음) 그러니까 우리 오래오래 자주자주 보자고.
글, 사진. 백은하 on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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