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T’ 광고에서 부장 몰래 농땡이를 피우는 신입사원을 연기한 신인은 1년 반이 지나 ‘대세’인 MBC 에서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이지훈을 연기하고 있다. 물론 지금 그 최다니엘을 만나는 가장 큰 이유는 준혁, 세경, 정음과 함께 시트콤 속 러브라인의 한 축을 이루는 이지훈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방점은 이지훈에서 연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연기에 대한 절박함과 자의식은 최다니엘이라는 배우에 대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이지훈으로 시작해 최다니엘로 끝이 난 인터뷰의 과정을 공개한다.크리스마스 이브에서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새벽에 미니홈피에 글을 올렸더라.
최다니엘 : 봤나. 그 때 촬영이 끝나서 집에 들어왔다. 그러다 또 크리스마스에 나가서 촬영하고.
“내가 시트콤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 같다.
최다니엘 : 시트콤은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 바빠서 깜짝 놀랐다. 일주일 내내 계속 촬영만 하는 것 같다. 밤 신 없이 낮에 두 신 정도만 있는 날은 쉬는 날이구나 생각한다. (웃음)
밤 신도 유독 많은 거 같던데?
최다니엘 : 병원 신은 장소 빌리는 문제 때문에 하루에 다 몰아서 찍는다. 그러다보니까 밤낮 없이 해가 뜨는지 지는 지도 모르는 채 촬영한다.
의 일정도 그렇지만 당신의 최근 활동 자체도 쉬는 시간이 없는 것 같다. MBC 끝나고 거의 바로 이 작품에 들어가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최다니엘 : 끝나고서도 별로 못 쉬어서 이후에는 한 달 정도 쉬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들어와서 김병욱 감독님과 미팅을 갖게 됐다. 정말 쉴 시간도 없이 크랭크 인이 촉박한 상황이긴 했는데 내가 나중에 또 시트콤을 접할 기회가 생길까, 기회가 있을 때 잡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택하게 됐다. 지훈 캐릭터도 재밌었고.
처음에는 시트콤을 할 생각이 없었다는 얘기가 있던데.
최다니엘 : 우선 시트콤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당장 내일 뭐 먹을지 모르지 않나. 어쩌다 스테이크를 먹을 수도 있고, 과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사과 샐러드를 먹을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다.
그러면 이번 메뉴가 입맛에는 맞나.
최다니엘 : 어쨌든 음식이고 먹으면 내가 살 수 있는 거니까.
말은 그러지만 김병욱 감독은 자기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질문 많이 하는 배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어떤 질문을 던진 건가.
최다니엘 : 감독님과 작가님이 생각하는 캐릭터와 내가 생각하는 캐릭터 사이를 조율해서 구축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던 거 같다. 지훈이의 감성적인 부분도 있고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자아와 사회적 가면 같은 거에 대해 얘기했었다. 가족 안에서 이십 몇 년 동안 살며 몸에 밴 언어 습관과 의사라는 상위 클래스의 차이 같은 걸 묻어나오게 하고 싶었다.
초반에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최다니엘 : 솔직히 말하면 못 잡아서 헤맸다. (웃음)
사실 보는 입장에서도 솔직히 말해 KBS 의 양수경만큼 백퍼센트 표현해낸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고.
최다니엘 : 초반에 시간이 너무 없었다. 끝나고 바로 투입됐으니까. 나는 내 캐릭터를 납득해야 하는 스타일인데 시트콤 특성상 매 에피소드마다 인물의 행동이나 톤이 변하니 많이 헷갈렸다. 얘는 이런 애인 거 같다고 내가 스스로 못을 박아놓으면 다음 에피소드에서 그게 흔들리고, 다시 조정해서 박으면 다음에 그건 또 아닌 식인 거다. 그렇게 번복되다가 그냥 ‘에라 모르겠다’는 식이 된 거 같다.
“지훈은 굉장히 멋진 남자” 그럼 맞건 틀리건 본인이 생각하는 이지훈은 어떤 남자인가.
최다니엘 : 굉장히 멋있는 남자인 거 같다. 실생활에서는 하기 싫어도 인사치레라는 게 있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있어서 웃는 시늉할 때도 있지 않나. 그런데 지훈은 그런 거 없이 자기 할 것만 하고 그러니 된 거 아니냐고 가버린다. 세상에선 찾아보기 힘든, 자칫 매장될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 게 제일 멋있는 거 같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아낀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걸 뿌리에 둔 상태에서 정음에게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잘해주는 행동 같은 것이 지엽적으로 뻗어나가는 거 같다.
사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바로 그 지엽적인 부분이다. 키스 이후에 한동안 별 얘기 없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를 같이 보내고, 또 별 얘기 없다가 여자친구라고 공표하는 그 심리가 궁금하다.
최다니엘 : 만약 완결된 대본이 나왔다면 정의를 내릴 텐데 이게 계속 바뀌니까 나도 무슨 마음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예상하는 건 상대를 옭아매고 싶지는 않은데 잘해주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것 때문에 헷갈린다면 안심시켜주기 위해 여자친구라고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닐까. 말로 딱 설명하긴 어렵다.
그럼 세경에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다니엘 : 내 생각에 지훈은 제대로 된 성장통을 겪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 같다. 어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섞이지 못하고, 친구들이 떠나가면 가지 말라는 말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그냥 관찰하며 즐거워하게 된 것 같다. 의사 일을 하게 되면서 가족이 잘한다 잘한다 하는 걸 보고 스스로 사랑 받는다 느끼며 일에 매달리게 된 건 아닐까. 그런데 세경은 지훈이 겪지 못했던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그걸 보며 어딘가 측은해하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확인하는 거 같다. 그와 달리 정음은 지훈이 가지지 못한 밝은 면을 가진 통통 튀는 사람이고. 사람은 어두울 때 밝은 사람을 찾지 않나.
한 쪽은 약점을 환기시키고, 한 쪽은 약점을 잊게 만드는 존재라고 보면 될까.
최다니엘 : 그럴 수도 있는데 그렇게 극단적으로 분리해서 말하면 그들 관계의 의미가 퇴색될 거 같다. 사실 말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게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시청자에게 어떤 오해나 선입견을 만들고 싶진 않다. 언젠가 지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때서야 나나 시청자나 좀 더 확실한 선을 그을 수 있겠지. 현재로서는 약간 안개 같은 그런 느낌이다.
배우는 캐릭터에 대해 작품으로만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보다.
최다니엘 : 그렇다. 작품과 그 바깥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타입이다.
굉장히 진중한 성격이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 만큼 일에 있어서 철저할 거 같고.
최다니엘 : 사실 나는 내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는 좀 말도 안 되는 오기를 부릴 때가 있다. 내게 어떤 명분이 있고, 그게 객관적으로 봐도 틀리지 않았을 땐 절대 안 굽힌다. 예를 들어 의견 충돌이 있으면 의아할 정도로 굉장히 날카로워진다.
“어딘가에 설 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런 면에서 앞서 말한 김병욱 감독과의 대화도 단순히 답을 구하기보다는 치열하게 부딪혀 피드백을 받는 방식이었을 것 같다.
최다니엘 : 그렇지. 답을 구한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피드백인 거다. 나 혼자 생각하면 내 울타리에 갇히니까 사고를 좀 더 열겠다는 거지.
스스로 생각한 것과 연출자가 예상한 것 사이의 갭이 클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
최다니엘 : 내가 생각한 것과 감독님이 생각한 것 두 가지를 찍고 나서 보고 고르는 경우도 있고, 절충점을 찾아서 찍기도 한다. 일단 내가 연기할 감정선을 찾아야 하니까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대화하고 고르는 거지.
그렇게 날선 태도로 자기 연기를 찾아가는 게 배우에겐 필요한 덕목이란 생각도 든다.
최다니엘 : 그래서 성질 더러운 배우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퍼지고 기사화되는 게 안타깝다. 가령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상대방과 좀 부딪혀서 감정적으로 안 좋은 상태라고 치자. 그래도 우선 매듭은 지어야 하니까 널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그 짜증은 말도 못한다. 그러다가 버스라도 지나가서 다시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욕이 나오지. 그런데 그런 전체 맥락은 생각하지도 않고서 저 사람은 싸가지가 없다더라고 말하는 거다. 사실 어떤 사람이 굳이 나쁘게 굴고 싶겠나.
사실 일반 회사 직원이라면 그 소문 자체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만 돌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오해를 풀 수도 있다. 하지만 배우는 그렇지 않다.
최다니엘 : 만약 내가 현장에서 나름의 명분을 가지고 요구할 걸 다 요구하고 일을 마친다면 그 이후에 이상한 얘기 들리는 거에 신경 쓸 것 같지 않다. 다만 그것 때문에 내가 연기할 장이 좁아지는 건 싫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웃음) 그런 소문이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일을 하는 게 굉장히 소중한가 보다.
최다니엘 : 과거로 거슬러가자면 하고 싶은 것도, 꿈도 희망도 없는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오디션 공고를 보고 별 생각 없이 이 일을 하게 됐는데, 일을 하다 보니 허황된 꿈은 사라지고,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은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 밖에 없는 거다.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몸치에 음치에 박치에 난리가 나는데 그나마 내 안에서 잘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인 거다. 그러니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으로 필사적이 됐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날카로워진 것 같다. 어떤 욕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내가 살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럼 이 일을 통해 얻고 싶은 것, 혹은 얻고 있는 건 무엇인가? 딱히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최다니엘 : 내가 어딘가에 설 자리가 있다는 것? 나란 사람이 어디엔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얻은 거 같다. 사실 내가 이걸 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그걸 마다하진 않겠지. 부수적으로 삶의 여유가 생긴다면 좋은 거고. 그런데 우선 내가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내가 죽어도 모를 판이지 않나. 차에 치어도 60억 명 중 이름 모를 하나가 죽는 건데 지금은 나란 사람이 어느 곳에서는 되게 필요한 존재가 됐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됐고. 그게 제일 크다. 되게 고맙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인터뷰. 최지은 five@10asia.co.kr
인터뷰,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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