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은 나도 스키로 해볼까?
오늘 출근은 나도 스키로 해볼까?
진짜 엄청난 폭설이었지? 너는 이렇게 눈이 가득 쌓이면 뭘 하고 지내?
뭐하긴. 출근하고 원고 마감하고 퇴근하고 원고 마감하고 출근을 하지. 간혹 시간나면 숨도 쉬고.

뭐야, 진짜 멋대가리 없다.
나한테 무슨 감수성 있는 대답이라도 원한 거야? 나도 청담동의 용자처럼 지하철 대신 스키라도 탈까?

아하하하, 그 생각까진 못했는데 진짜 그 정돈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야? 명색이 ‘10관왕’인데.
나는 하계 종목으로만 10관왕이야. 사실 나도 그분 보면서 아파트 빙벽 타기 이후, 다시 한 번 세상이 넓다는 걸 느꼈어. 나 같은 사람이야 쌀 포대로 썰매 만들어 탈 생각이나 하지 누가 감히 스키에 도전하겠어.

근데 솔직히 좀 튀려고 무리수 던지는 거 같긴 하더라.
무리수는 이순신 장군 동상 있는 앞에다가 슬로프 짓고 스노보드 타는 게 무리수고. 만약 지하철 몇 개 역에 달하는 장거리가 아닌 단거리 이동이라면 스키가 훨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어. 보통 차가 막히는 날에는 걷는 게 더 빠를 때가 있는데 이번처럼 눈이 잔뜩 쌓였을 땐 걷거나 뛰는 것도 여의치 않잖아. 스키는 바로 이럴 때를 위해 만든 도구야.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눈이 쌓였을 땐 그 위로 미끄러지는 게 더 낫다는 걸 알고 썰매와 스키를 사용했어. 19세기 즈음 노르웨이에서 우편배달부와 군인의 이동을 용이하기 위해 현대적 스키를 만들어 사용할 때도 가장 큰 목적인 이동이었고. 우리나라처럼 눈이 많이 쌓일 일이 없는 나라에선 스키가 생활이라기보다는 스키장에서만 가능한 레포츠지만 이번처럼 백년 만에 폭설이 오는 상황에선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이야.

그럼 스포츠로서의 스키와 교통수단으로서의 스키는 다른 거야?
어려운 질문인데? 사실 테크닉적인 면으로는 같다고 봐야겠지. 결국 개념의 차이가 있는 건데, 그게 어쩌면 현대 스포츠와 생활의 괴리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출근은 나도 스키로 해볼까?
오늘 출근은 나도 스키로 해볼까?
뭘 몰라. 좀 더 쉽게 얘기해봐.
그러니까 이런 거야. 스포츠라고 묶이는 여러 가지 종목의 육체 활동들은 생활의 일부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아. 수영은 박태환의 금메달 종목이 아닌 그냥 물에서의 이동 방식이었고, 이제 아웃도어 스포츠로 분류되는 등산은 말 그대로 산을 넘는 일이었지. 올림픽 아니면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양궁은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사냥 방식 중 하나일 테고. 심지어 축구의 종주국 영국에서도 근대적 축구 이전의 축구는 동네 간 집단 패싸움 같은 것이었으니 조기 축구회가 아니더라도 참가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어쨌다는 건데?
말하자면 과거의 사람들은 따로 스포츠라는 활동을 하지 않아도 몸의 근육이 발달하고 여러 가지 육체적 테크닉을 습득할 수 있었는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운동 중 하나인 걷기와 달리기조차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지. 사실 그조차 도심 속에서는 근처에 좋은 자전거 도로 같은 게 없으면 결국 피트니스 클럽의 러닝머신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고.

그럼 그런 상황이 아쉽다는 거야?
기술 발달로 내 생활 자체가 편해졌는데 그걸 가지고 아쉽다고 하기는 좀 뭐하지. 다만 도시에서도 운동이 생활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 요 몇 년 사이 확 붐이 일어난 자전거 타기가 좋은 예겠지. 소수 마니아나 배달원, 혹은 등교하는 학생들이나 타던 자전거가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전파되면서 자전거 인구가 많이 늘었잖아. 출퇴근을 자전거로 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나는 그렇게 생활 자체가 스포츠가 되는 걸 참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래서 이번 청담동 용자도 그런 맥락으로 보신다?
이번 폭설 자체가 흔하지 않은 일이니만큼 청담동 용자의 등장은 일회적인 이벤트로 끝날 수 있겠지. 나는 그럴수록 그의 용기를 보고 사람들이 생활 스포츠의 철학을 마음에 담았으면 싶은 거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도심 속 스포츠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괴짜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
오늘 출근은 나도 스키로 해볼까?
오늘 출근은 나도 스키로 해볼까?
이번 용자 말고도 또 다른 부류의 괴짜들이 있는 거야?
흔히 야마카시라고 부르는 파쿠르가 가장 극단적 형태의 도심형 스포츠겠지. 사람들은 맨손으로 빌딩을 오르고, 두 다리를 이용한 도약만으로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걸 보면서 그 화려함과 위험함 때문에 그냥 익스트림 스포츠라고만 말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파쿠르야말로 산을 잃은 현대인들이 도시에서 찾은 아웃도어라고 할 수 있어. 물론 프리 러닝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화려한 동작 위주로 변모한 감이 있지만. 사실 이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냥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붙잡고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종아리 운동만 해도 다들 이상하게 쳐다볼 걸.

좀 더 자기 생활에 맞게 특화된 건 없을까? 지난번 네가 말한 의사 선생의 근육 단련법 같은 거 말이야.
글쎄? 그건 사람들마다 하는 일과 주변 지형지물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 어떤 하나를 콕 집어 말하기가 어렵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기가 좋아서 할 만한 걸 고르는 게 중요하기도 하고. 야구가 좋은 사람이면 그냥 남들처럼 주말에 사회인 야구 하는 게 맞지 않겠어?

그럼 지금 국정 운영 때문에 바쁜 대통령을 위한 생활 운동을 추천해보는 건 어때? 항상 잠도 안 잔다는데 따로 운동하거나 건강 관리할 시간도 부족하시지 않을까?
오, 그건 쉽지. 언제든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는 스카이 콩콩을 추천해드려야겠다. 나 이러다 문화‘체육부’에 자리 생기는 거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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