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is 강승현. 영어 이름은 Hyoni (효니). 원래 중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들이 부르던 애칭이었는데 미국 에이전시에서 그냥 미국 이름으로 쓰자고 했다. 처음에는 마흔 살에 ‘효니’라고 불리는 게 생각만으로도 민망했는데, 이제는 적응했다.
1987년 9월 22일생. 미국에서는 아직도 스물 두 살이다. 그렇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모델들이 많아서 벌써 적은 나이는 아니다.
한국에 시간을 갖고 올 때면 언제나 반드시 3개의 모임을 소화해야 한다. 중학교 친구 모임, 고등학교 친구 모임, 대학교 친구 모임 말이다. 이번엔 다들 송년회를 하자고 하더라. 초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에 같이 갔기 때문에 첫 번째 그룹에 포함된다. 히힛.
오빠가 한명 있다. 나보다 세살이 많고, 아직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엄마도 키가 크시다. 168cm 정도.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우량아였고, 학교 다니는 내내 친구들보다 키가 커서 거인 같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20cm가 큰 적도 있고, 키는 고3때까지도 계속 자랐던 것 같다.
십대 시절부터 유난히 패션지를 즐겨 봤다. 정기구독을 할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이 ‘넌 키가 크니까 모델을 해 봐’라고 권유 해 줄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막연히 전공을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모델학과에 지원하게 된 거였고.
대학교 1학년 때는 과대표를 했었다. 2학년 여름까지만 해도 정말 정말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무심한 듯 하지만 공들여서 편안하게 연출한 옷을 입고 다녔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면서 놀기도 하고.
포드 슈퍼모델 대회 직전에 살을 3kg 정도 빼고 싶어서 무지막지하게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한여름이었는데, 내의에다가 패딩까지 겹쳐 입고 한강에서 막 뛰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실상 살은 별로 안빠지더라. 하하하. 국내대회에서 입상하고 나서 미국가기 전에 또 그렇게 운동 했는데 심지어 누가 알아보고 왜 이런 식으로 운동 하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보통 동양모델들보다 얼굴이 동글동글한 편이라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스스로는 성숙한 이미지가 부족해서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오래오래 일 할 수 있겠다’고 해 주셔서 오히려 기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동양 모델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만의 이미지를 갖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분위기 덕분에 지금도 ‘틴보그’처럼 독자층이 어린 잡지의 일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린 해외 팬들이 편지도 보내주고, 싸인 요청도 한다. 그런 관심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 얼마 전에는 뉴욕에 놀러온 캐나다 아이가 길에서 나를 보고 너무 놀라면서 꿀을 선물로 주더라니까. 하하하하
데뷔 전에 가장 꿈꿨던 런웨이는 마크 제이콥스의 쇼였다. 그래서 캐스팅 갔을 때도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둘러보고 마냥 신기해했었다. 하하. 고등학생 때 정말 좋아했던 아이 토미나가도 같은 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지금은 모든 게 일이 되었지만, 처음엔 얼마나 신나던지!
필립 림의 쇼에서 동양인 모델 최초로 오프닝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필립 림은 나에게 최고의 디자이너다! 하하. 막상 캐스팅 되었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에이전시가 그 소식을 듣더니 너무나 흥분하는 거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그가 그렇게 중요한 디자이너인지도 몰랐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많이 활달했다. 여자 친구만큼이나 남자 친구들이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 포드 슈퍼모델 대회를 할 때도 그렇고, 일을 할 때도 언제나 나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진다. 그건 늘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일을 하는 모델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다. 영어가 서툴러도 일단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앞으로는 문법을 배워서 좀 더 정확한 영어를 구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바빠서… 학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고 해 두자.
지난달에 친한 언니와 함께 빈티지 샵을 열었다. 처음엔 둘이 손바느질을 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일이 좀 커져버렸다. 빈티지 옷을 바잉해서 좀 더 입기 쉽도록 현대적으로 리폼해서 판매하는 건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팔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 의류부터 부자재까지 대량 구매가 불가능한 프로세스라서 단가가 좀 비싸지만 일본 빈티지 마니아들이나 패션계에서는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다. 어린 외국인 모델이 뉴욕에서 뭔가 해 보려는 시도를 귀엽게 봐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큰 작업이다. 오늘 입은 옷도 그렇고, MBC 에 입고 나왔던 파란색 스웨터도 우리가 만든 거다!
어렸을 때 꿈은 남들처럼 선생님, 과학자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한 적도 있었고.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꿈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니까. 패션 일을 하면서, 지금보다 다음에 더 잘되는 것. 그게 내 꿈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1987년 9월 22일생. 미국에서는 아직도 스물 두 살이다. 그렇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모델들이 많아서 벌써 적은 나이는 아니다.
한국에 시간을 갖고 올 때면 언제나 반드시 3개의 모임을 소화해야 한다. 중학교 친구 모임, 고등학교 친구 모임, 대학교 친구 모임 말이다. 이번엔 다들 송년회를 하자고 하더라. 초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에 같이 갔기 때문에 첫 번째 그룹에 포함된다. 히힛.
오빠가 한명 있다. 나보다 세살이 많고, 아직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엄마도 키가 크시다. 168cm 정도.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우량아였고, 학교 다니는 내내 친구들보다 키가 커서 거인 같았다.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20cm가 큰 적도 있고, 키는 고3때까지도 계속 자랐던 것 같다.
십대 시절부터 유난히 패션지를 즐겨 봤다. 정기구독을 할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이 ‘넌 키가 크니까 모델을 해 봐’라고 권유 해 줄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막연히 전공을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모델학과에 지원하게 된 거였고.
대학교 1학년 때는 과대표를 했었다. 2학년 여름까지만 해도 정말 정말 평범한 여대생이었다. 무심한 듯 하지만 공들여서 편안하게 연출한 옷을 입고 다녔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면서 놀기도 하고.
포드 슈퍼모델 대회 직전에 살을 3kg 정도 빼고 싶어서 무지막지하게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한여름이었는데, 내의에다가 패딩까지 겹쳐 입고 한강에서 막 뛰었다. 너무 힘들었는데 실상 살은 별로 안빠지더라. 하하하. 국내대회에서 입상하고 나서 미국가기 전에 또 그렇게 운동 했는데 심지어 누가 알아보고 왜 이런 식으로 운동 하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
보통 동양모델들보다 얼굴이 동글동글한 편이라 어려 보인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스스로는 성숙한 이미지가 부족해서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오래오래 일 할 수 있겠다’고 해 주셔서 오히려 기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동양 모델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만의 이미지를 갖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분위기 덕분에 지금도 ‘틴보그’처럼 독자층이 어린 잡지의 일을 많이 한다. 그래서 어린 해외 팬들이 편지도 보내주고, 싸인 요청도 한다. 그런 관심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 얼마 전에는 뉴욕에 놀러온 캐나다 아이가 길에서 나를 보고 너무 놀라면서 꿀을 선물로 주더라니까. 하하하하
데뷔 전에 가장 꿈꿨던 런웨이는 마크 제이콥스의 쇼였다. 그래서 캐스팅 갔을 때도 관광객처럼 여기저기 둘러보고 마냥 신기해했었다. 하하. 고등학생 때 정말 좋아했던 아이 토미나가도 같은 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지금은 모든 게 일이 되었지만, 처음엔 얼마나 신나던지!
필립 림의 쇼에서 동양인 모델 최초로 오프닝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필립 림은 나에게 최고의 디자이너다! 하하. 막상 캐스팅 되었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에이전시가 그 소식을 듣더니 너무나 흥분하는 거다. 솔직히, 그 당시에는 그가 그렇게 중요한 디자이너인지도 몰랐다.
어려서부터 성격이 많이 활달했다. 여자 친구만큼이나 남자 친구들이 많을 정도였다. 그래서 포드 슈퍼모델 대회를 할 때도 그렇고, 일을 할 때도 언제나 나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진다. 그건 늘 새로운 사람과 만나서 일을 하는 모델에게는 중요한 덕목이다. 영어가 서툴러도 일단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앞으로는 문법을 배워서 좀 더 정확한 영어를 구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바빠서… 학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고 해 두자.
지난달에 친한 언니와 함께 빈티지 샵을 열었다. 처음엔 둘이 손바느질을 해보자고 시작한 일인데 일이 좀 커져버렸다. 빈티지 옷을 바잉해서 좀 더 입기 쉽도록 현대적으로 리폼해서 판매하는 건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팔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다. 의류부터 부자재까지 대량 구매가 불가능한 프로세스라서 단가가 좀 비싸지만 일본 빈티지 마니아들이나 패션계에서는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다. 어린 외국인 모델이 뉴욕에서 뭔가 해 보려는 시도를 귀엽게 봐 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큰 작업이다. 오늘 입은 옷도 그렇고, MBC 에 입고 나왔던 파란색 스웨터도 우리가 만든 거다!
어렸을 때 꿈은 남들처럼 선생님, 과학자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한 적도 있었고. 그렇지만 지금은 다른 꿈이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니까. 패션 일을 하면서, 지금보다 다음에 더 잘되는 것. 그게 내 꿈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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