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눈에 띄는 외모다. 아직 성장기인 열여덟의 나이에도 180㎝나 되는 훤칠한 키나 쌍꺼풀이 짙은 커다란 눈을 비롯한 선 굵은 이목구비만으로도 신인 배우 이일민은 한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각적 이미지를 지우고 그의 첫인상으로 남은 건 다름 아닌 종결어미 ‘다’다. “오늘은 촬영이 없습니다”라는 첫마디부터 그는 종종 ‘했어요’ 대신 ‘했습니다’로 말을 마무리했다. 그의 나이엔 당연히 어울리지 않는 말투고, 군인을 제외하면 어른 역시 잘 쓰지 않는 말투다. 그 부자연스러운 진지함은 말하자면 아직 어른이 아닌 소년이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 할 때 생기는 일종의 부조화다. 어색하지만,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막내 호박이와 어른스러운 이일민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그에 반해 그의 브라운관 속 첫인상은 몸빼 바지였다. MBC 의 넷째 궁호박은 자식 많은 집 막내답게 부엌일을 돕는 살가움과 누나의 의사 애인에 대한 일까지 시시콜콜 참견하는 아줌마 같은 오지랖을 갖췄다. 그 첫인상 사이의 거리감만큼이나 외동아들에 조금 과묵한 편인 이일민과 그의 첫 캐릭터인 궁호박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인 만큼 그 간극 자체는 색다른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십대 소년이 그 간극을 메워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제법 잘 수행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가 호박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건데 남들이 나보다 호박이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만큼 흐지부지 연기할 수는 없죠.” 낮고 조금은 경직된 목소리는 역시나 조금 과도하게 진지하지만 연출된 허세와는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이토록 연기 잘하는 선배님들이 잔뜩 모인 현장의 막내”로서 주눅 들지 않으려는 일종의 다짐에 가깝다.

“대본 보는 것 말고는 다른 취미는 없습니다”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이일민│이토록 진지한 막내
이처럼 대화 도중 종종 나이를 잊게 만드는 그의 진지하고도 어른스러운 태도는 어쩌면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에 재능이 있어 자동차 디자인을 배우러 어머니와 둘이서 미국에 건너간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꼈다. “아버지께서는 한국에 남아계시고 어머니께서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도 아니니 어떤 면에서 외동아들인 제가 가장인 거잖아요.” 그의 나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스스로도 영어에 서툴렀지만 어머니가 은행 업무를 볼 때 나서서 통역하려고 했고, 영어 초급자를 위한 ELD(English Language Development) 과정이 없어 원어민과 수업을 들어야 하자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몸 개그를 아끼지 않았다. “그때부터 어디에 가든 주눅 들지 않고 잘 적응할 자신이 생긴 거 같아요.” 6년여의 디자인 공부를 접고 연기라는 신세계에 첫발을 디딘 그가 “슛이 들어간 이후부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호박이의 것이라 믿고” 행동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물론 “우리 호박이 잘한다”는 식의 막내에 대한 격려에 대해서도 “그런 분위기에 으쓱해지면 안 되죠”라고 엄격하게 선을 긋고, 혹여 인기를 얻게 되더라도 태도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하며 “이렇게 인터뷰에서 밝혔으니 번복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말할 때, 이 청년 같은 소년이 조금은 나이에 어울리는 방종을 보여주면 싶은 게 사실이다. 최근 끝순이(최아진)와의 러브 라인이 더 강화되고 갑자기 출연 분량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서도 마냥 좋아하기보다는 “작가님의 시험”이라 생각하고 각오를 다지는 그에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그래서 가장 편하게 즐기는 취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대본 보는 거요. 그러면 이틀을 연구할 게 하루 만에 이해되고, 정말 잘 이해돼요. 그게 제 취미에요. 다른 거 없습니‘다’.” 이토록 진지한 막내라니. 조금 징그럽기도 하지만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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