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종영한 MBC 의 마지막은 2009년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최근 1, 2년 사이 등장한 대하사극 대부분이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했지만 은 초반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미실(고현정)과 비담(김남길) 등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과 정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이는 MBC 을 집필한 김영현 작가의 기본기와 노하우, 영화 의 원작을 쓴 박상연 작가의 재기 넘치는 감수성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2007년 MBC 를 공동 작업한 이후 작가 전문회사 ‘케이피앤쇼(KP&SHOW)’를 설립해 KBS 에 이어 까지 꾸준한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는 김영현, 박상연 작가를 여의도 작업실에서 만났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최종회는 어떻게 봤나.
김영현 : 종방연에 갔다가 작업실에 돌아와서 같이 봤다. 재밌었는데 18분이 오버돼서 10신 이상 없어졌다. 일부러 짧게, 48신밖에 안 썼는데도 대본상의 분량과 촬영 분량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박상연 : 액션 신도 좀 디테일하게 써서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우리가 길이를 잘못 맞춘 것도 있고 해서 중요한 신들이 좀 여럿 편집됐다. 김유신(엄태웅)이 월성에 쳐들어갈 때 군사들을 독려하는 신은 김유신 전에 나오는 내용을 가져왔는데 현대 작가라도 쓰기 힘들 만큼 멋진 말이 많아서 공들여 썼지만 사라졌고, 13년이 흐른 뒤 황산벌 전투 끝나고 김유신과 소정방이 부딪히는 신이 빠진 게 아쉽다. 덕만(이요원)이 비담(김남길)을 추포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여기에 황제의 기를 세우면 비담은 반드시 이리로 올 것이라고 말하는 신도 없어지면서 나중에 알천(이승효)이 “폐하의 말씀대로 비담이 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약간 생뚱맞아졌다. 덕만이 죽기 전에 춘추나 알천 등에게 정치적인 교시를 내리는 장면도 들어갔다면 더 재밌고, 완결성 있는 마지막 회가 됐을 텐데 우리 잘못이다. (웃음)

“비담은 실존 인물 두 명을 합해 탄생한 캐릭터”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기획과 준비까지 합쳐 2년이 걸렸고 7개월간 작품이 방송되는 대장정이었는데, 지난 7개월의 일과는 어땠나.
김영현 : 월화수는 회의, 목금은 집필, 다 쓰고 나면 리딩 한번 해서 수정하고 초반에는 일요일 하루는 쉬었지만 뒤로 갈수록 1주일에 7일을 꼬박 일했다. 저녁 7시에 모여서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회의하고 해산했는데 재충전 없이 계속 가니까 후반에는 정말 힘들었다.
박상연 : 막바지 한 달 동안은 작가팀 4명이 모두 작업실에서 먹고 자고 했다. 나는 장편 작업을 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김 작가님이 “ 때와는 다르다. 1주일에 하루는 쉬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고 하신 이유가 있었다. 체력 안배를 잘 못하고 너무 몰두해서 했다가 나중에 체력이 바닥나 고생을 했다.

사극에도 다양한 스타일과 콘셉트가 있는데, 을 기획할 때 하려던 건 뭔가.
김영현 : 사실 나는 정통사극과 퓨전사극의 개념이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예전에 KBS 도 굉장히 재밌게 봤는데, 그런 작품이나 같은 사극과 우리 작품이 뭔가 다르다는 건 알겠지만 굳이 다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을 준비하면서 KBS 도 다시 한 번 봤다. 우리도 왕의 이야기고 정치 이야기인데 정치를 다루려면 파워가 필요하니까 MBC 사극이 갖는 분위기와 KBS 사극의 무게감을 좀 섞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을 통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다루면서 재미있는 걸 하고 싶었다.

40%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기존 사극의 시청층이었던 중장년층 남성 외의 젊은 여성 등까지 시청층을 넓힐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김영현 : 글쎄, MBC 은 좀 현대적으로 쓰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보는 분들에게서 굉장히 현대적인 느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박상연 : 현대극의 트루기들을 많이 사용했고, 비담 같은 캐릭터도 현대적인 느낌을 준 것 같다.

MBC 의 유의태나 MBC 의 영조처럼 주인공을 가르치고 키워내는 스승 없이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연령대가 낮아진 것도 달랐다.
박상연 : 기존 사극에 등장하는 ‘스승’ 과 같은 극적 장치가 굉장히 유효하고 소구력이 있다는 건 알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니 그에 따르는 한계도 있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빼고 갔다.
김영현 : 그런데 미실(고현정)이라는 캐릭터가 더 커진 데는 그 영향도 있다. 미실이 덕만의 스승이자 대적자인 동시에 서로 성장해가는 파트너의 역할까지 복합적으로 가졌기 때문에.
박상연 : 으로 치면 한상궁과 최상궁을 합친 거다. (웃음)

미실도 강렬했지만 비담은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 캐릭터였다. 비담이라는 인물을 발견하고 캐릭터를 구축해 나간 과정이 궁금하다.
박상연 : 비담은 상대등까지 올랐고 큰 난을 일으켰던 인물인데도 아무런 기록이 없다. 하다못해 망이, 망소이나 만적도 어느 집 노비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렇게 배경이 사라진 인물은 정말 특이한 경우다. 그래서 김 작가님이 진지제(임호)와 미실의 아들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셨고 진지제가 미실에 의해 유폐 당한 뒤 도화녀라는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비형랑’이라는 인물과 선덕여왕을 사모하다 몸이 불에 타 죽은 ‘지귀’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합치기로 했다.
김영현 : 비형랑은 귀신을 부리는 재주가 있었다고 하고, 를 보면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의 인물이다. 그리고 지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지만 몸이 불타 죽는다는 것은 약간 악마적인 느낌마저 준다. 여기에 현대적인 말투를 비롯한 디테일한 캐릭터는 박 작가가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박상연 : 처음에는 약간 고독한 무사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미실이 시청자들에게 소구되는 지점을 보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중성을 띤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미실이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고 피 튄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면 자유롭고 발랄한 영혼의 비형랑과 지고지순한 사랑에 몸을 던진 지귀는 굉장한 이면을 갖지만 그 두 가지를 합쳐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이’와 ‘대의’를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그래서 비담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비밀병기’라고 강조했던 건가. (웃음)
박상연 : 사실 그 이후 모든 기사마다 ‘비밀병기’라고 강조되는 걸 보면서 말을 뱉은 걸 후회했다. (웃음) 하지만 당시 김남길이 대중적으로 아주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음에도 비담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었고 폭발적으로 시선을 끌어야 했다. 이 사람이 등장하는 순간 모든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청춘사극’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사실 덕만이 왕이 되고자 하는 초반에는 로맨스가 강하지 않았는데도 비담을 비롯해 김유신, 알천 등 덕만 주위의 청년들이 모여 함께 미션을 수행해 나가는 과정이 보여주는 에너지가 컸던 것 같다.
김영현 : 보는 분들이 그런 느낌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KBS 도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주인공들이 모이는 과정과 그들이 의기투합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반응이 뜨거웠다.
박상연 : 우리는 계속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MBC 도 차수경(고현정)을 중심으로 팀플레이를 그린 거였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남자들이 모이는 팀이었다면 다음에는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들이 모이는 구성도 해보고 싶다. 그럼 현장에 가는 즐거움도 더 생길 것 같고. (웃음)

초반에는 을 인용하기도 했고, 덕만은 끊임없이 미실과 부딪히면서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통치론을 그려내는 데 대한 작가 스스로의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김영현 :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니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회의를 통해 덕만과 미실은 각각 어떤 생각을 갖는 인물로 그릴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굉장히 많이 했다. 기획 초반에는 덕만과 미실은 선악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토론만 이삼 일 했던 것 같다. 꼭 드라마에서 중요하게 쓰지 않더라도 그런 개념을 정립하고 있어야 뒤의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으니까.
박상연 : 우리 각자에게는 정치관이 있지만 그걸 강요하거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많은 생각을 하길 바랬다. 미실과 덕만의 첨예한 의견 개진, ‘6분 토론’이라 불리는 장면 등에서 누가 옳았는가 누가 이겼는가를 따질 수는 없는 것 같다.

극의 후반에 접어들어 덕만이 왕위에 올라 주도적으로 현실 정치를 하게 된 뒤에는 ‘대의’와 ‘이’가 부딪히는 지점들을 계속 언급하는데 그것을 통해 하고 싶었던 얘기는 뭔가.
김영현 : ‘이’와 ‘대의’를 일치시키지 않으면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대의라는 것을 어딘가에 있는 신기루나 환상처럼 여기면 안 되고, 이에 기반 하지 않은 대의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박상연 : 나 역시 이를 떠나 완벽하게 순수한 대의가 있다고는 믿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어 재벌 2세는 운동권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거다. 그 사람에게 자기 이에 맞지 않는 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는 힘들다. 이와 대의는 합쳐졌을 때 에너지를 얻고 행동력이 나오는 거지.
김영현 : 덕만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백성들이 땅을 갖게 해야 한다는 거였는데, 그건 백성들에게 이를 갖게 하지 않으면 그들도 나라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을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분량이 오버되면 편집 1순위가 되었다. (웃음)

“미실 죽음 후 전체적인 구도가 틀어졌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은 기존 왕조사를 다루었던 사극들에 비해 정치가 어떤 메커니즘 안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미실의 죽음 이후 작품에 레임덕 현상이 일어났다고 할 만큼 초반의 장점들이 줄어들며 비판도 많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아쉬운 부분은 무엇인가.
김영현 : 정치의 여러 가지 면을 다루는 드라마로 왔고, 그로 인해 앞부분의 미실과 덕만 이야기가 힘을 얻었는데 미실 사후에 덕만의 대적자가 되어야 했던 비담에게 충분한 정치적인 입장을 부여하지 못했다. 비담을 너무 개인사 중심으로 그리기보다는 미실과 덕만과의 교류를 통해 그가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29회에서 미실과 덕만이 ‘6분 토론’을 하고 난 다음 그들의 정치적 대립을 더욱 강화시키면서 유신과 비담에게 정치적 입장을 뚜렷하게 주지 않은 거다. 한쪽은 구 귀족을, 한쪽은 백성 내지 왕권을 대변하려는 태도를 세워주었다면 미실과 덕만의 대립도, 비담과 유신의 캐릭터도 강화되어서 좀 더 입체적으로 진행되고 후반을 준비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박상연 : 유신 같은 경우 정치적인 스펙트럼은 적절하게 위치시켰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보다 잘 드러나려면 비담과의 갈등과 부대낌을 통해 좀 더 효과적으로 보여주었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비담이 미실의 정치관을 이어받게 한다거나 하는 생각도 했다. ‘세상을 움직이고 시대를 발전시키는 건 저 무지하고 변덕스런 백성이 아니라 일부 책임 있는 몇몇이다’ 같은. 그렇게 해서 정치관의 대립을 더욱 심화시켜 첨예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우리가 그 문제를 인식했을 때는 거칠부가 나오는 ‘삼한일통’에 대한 얘기를 너무 먼저 넣었고, 비재도 시작되어 버려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드라마 시스템 상 4회나 6회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으니까.
김영현 : 그래서 그 이후 ‘미실의 난’으로 시청률은 다시 올라갔지만 사다함의 매화, ‘6분 토론’ 이후에 매점매석이나 세금, 안강성의 농토에 대한 에피소드가 다 붙어 나왔어야 하는 것 같다. 그 시점에 시청자들이 정치적인 얘기에 대해 지루해하지 않았으니까 힘을 받을 수 있었을 테고. 사실 조금 의외였다. 정치 얘기는 쉬운 게 아니라 전 같으면 외면 받을 수도 있었는데.

올해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박상연 : 사실 우리는 ‘6분 토론’ 장면을 쓰면서 “채널 다 돌아가겠다. 하지만 해야 하는 얘기니까 하자”고 했는데 나중에 시청률 표를 보니 그 순간 폭발적으로 올라갔더라.
김영현 : 그러니까 그 때만 해도 우리가 시청자들이 무엇을 재밌어 하는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후반에는 유신의 비중이 줄고 비담과 덕만의 멜로가 강화됐다. 멜로를 그리는 능력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김영현 : 멜로를 잘 못 그린 건 인정한다. (웃음) 그 전부터 잘 구축해왔다면 나름대로 잘 굴러갔겠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걸 우리도 알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후반부는 멜로보다 왕의 고독이라는 측면에서 더 강조하고 싶었다. 덕만은 왕으로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그걸 마무리하려 하면서 자신 주위에 있는 유신, 비담, 알천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어떻게 위치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그래서 덕만이 비담에게 “나에게는 전부 불편한 사람들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런 자신에게 항상 위로가 되고 잘 했다고 말해준 사람이 비담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느낌보다는 사랑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인간의 고독을 그리고 싶었다.
박상연 : 그에 비해 김유신은 항상 왕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 다그치고 요구하는, 스승 같아서 부담스러운 면도 있는 신하로 그리고 싶었다. 만약 비담과 유신이 정치적 입장을 좀 더 명확하게 한 채로 갔다면 훨씬 더 풍부해질 수 있었을 텐데.
김영현 : 그러다보니 전반부의 미실과 덕만이 ‘관계’와 ‘정치적 입장’을 다 가진 캐릭터였던 반면 후반에는 ‘정치적 입장’이 빠지고 ‘관계’만으로 가니까 힘이 빠진 것 같다.
박상연 : 그래서 미실의 죽음 전후에 가장 달라진 것은 미실이 빠져서라기보다 미실이 없는 상태에서 구도가 틀어져버렸다는 점인 것 같다.

쪽대본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들었지만 12회가 연장되었고, 대하사극의 시스템상 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김영현 : 원래는 방송보다 11일 정도 앞서 대본을 내놓다가 9일, 8일로 줄면서 최종적으로는 1주일 전에 대본을 주는 결과를 낳았다. 비교적 원활한 일정이긴 했는데 낙마 사고나 신종 플루 같이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중간에 급하게 수정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박상연 : 현장에 있는 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경제 위기도 있고 방송사도 어려운 상황이라 제작비가 줄었는데 그만큼을 배우와 스태프들이 몸으로 때운 셈이다. 너무 고생하셨고, 제작비나 일정 문제로 넣지 못한 신도 많다. 천명의 장례식도 그렇고, 61부에서 비담이 명활산성으로 들어가는 상황도 전투 신 없이 세트와 세트로만 이어졌다. 너무 아쉬웠지만 도저히 찍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체력이나 작가로서의 밑천이 바닥을 친 느낌”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미실과 덕만, 누가 이겼는지 따질 순 없다”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면 이런 상황들이 좀 나아질까.
박상연 : 이라면 일식과 함께 덕만이 등장하는 데서 시즌 1이 끝나고 시즌 2를 ‘공주 덕만’으로, 시즌 3을 ‘왕의 고독’으로 갈 경우 작가들이나 현장에서나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현 : 하지만 방송사, 제작사, 작가, 배우들 등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이익이 얽혀있다 보니 시스템을 바꾸는 건 쉽지가 않다.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롭게 배우는 게 있다면 을 통해 배운 건 뭔가.
김영현 : 캐릭터와 스토리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박상연 : 우리는 캐릭터 플레이도, 강력한 스토리 라인도 좋아하는 작가들인데 을 쓰다 보니 캐릭터와 스토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생겼다. 그걸 어떻게 풀어낼까가 문제다.
김영현 : 스토리가 강하다 보면 캐릭터가 희생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취향도 그렇고 요즘 젊은 시청자들은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화제가 되는 것도 캐릭터다. 그런데 시청률은 스토리에서 나온다. 결국 드라마의 가장 큰 두 축, 인물과 그가 가는 과정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가 굉장히 고민스럽고 앞으로도 고민할 점이다.

다음 작품은 어떻게 예정되어 있나.
박상연 : 같이 하려고 준비하는 드라마가 하나 있고, 나는 한국 전쟁에 대한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지금 진행 중이다. 대개 한국 전쟁을 그리는 작품들은 6.25 전쟁 발발부터 1.4 후퇴까지의 6개월을 다룬 경우가 많은데 내 작품은 그 이후 2년 6개월 동안 320만의 사망자가 나오면서 종전협정을 맺기 전까지의 처절한 교전들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과 고려는 물론 고구려사, 신라사를 다룬 데 이어 내년에는 MBC에서 가야사를 다룬 드라마가 나오는데 앞으로 더 나올 사극 아이템이 있을까.
김영현 : 이번에 신라를 그려 보니 지금부터 찾아도 꽤 많이 나올 것 같다. 5백년 이상의 역사가 있었던 나라니까 조선처럼 파보면 디테일한 소재가 더 있을 거다. 이를테면 진흥왕도 한 편에서는 동맹을 깬 야비한 인물이지만 신라 입장에서는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왕이고 화랑을 만든 업적도 있다. 의 문노, 사다함, 설원랑 같은 화랑들의 전설도 진흥왕 대에 시작된 거고, 미실 같은 경우 그 시대에는 또 달랐을 거다. 젊은 요부였을 수도 있고, 나름대로 순수하기도 해서 사다함과 연애를 하기도 했을 거고.
박상연 : 선덕여왕 사후의 역사도 굉장히 역동적이다. 군신으로서의 김유신의 진가도 그 때부터 나오는 거고, 김유신과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대당 문제를 비롯해 서로 첨예하게 부딪힌 면이 많은 사람들이라 흥미로운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문무왕 김법민 같은 경우도 젊은 시절 황산벌 전투로 시작해 당나라를 몰아내는 매소성 전투를 치렀고 사후에는 대왕암으로 가서 바다의 용이 되겠다고 했으니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김영현 : 에서는 외교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러 뺀 편인데 만약 김유신과 김춘추의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된다면 백제, 고구려, 왜, 당에 대한 문제까지 외교를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키게 될 거고.

대장정을 마쳤는데도 별로 지치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도 할 얘기가 많아 보인다. (웃음)
김영현 : 허해서 그렇다. (웃음) 에 아쉬움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었고 저런 얘기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다른 얘기를 통해 신라를 또 그리게 된다면 그걸 해야지.
박상연 : 나도 그렇다. 체력이나 작가로서의 밑천이 바닥을 친 느낌이다. 후반부에는 ‘왜 이렇게 아이디어가 안 나오나’ 하는 자괴감도 느꼈고, 지금은 완전히 텅 빈 기분이라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작품을 하고 나서 깨달은 게 있으면 써먹고 싶다. 다음에 잘 하고 싶고, 그게 작품을 계속 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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