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천사의 유혹>" /> 마지막회 MBC 월-화 밤 9시 55분
“모든 걸 다 가지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되고, 사막보다 외롭고, 삭막한 삶을 살게 되더라도, “견디는” 것. 그것이 여왕의 숙명이었다. 실질적으로 을 지배했던 미실(고현정)이 죽은 뒤로 12회를 더 이끌어 왔던 선덕여왕(이요원)은,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삼한의 통일을 유신(엄태웅)에게 맡기고 천천히 스러져갔다. 그 마지막을 함께 끌어온 비담(김남길)은, 연모의 마음도, 손에 잡았던 권력을 놓쳐 버리고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대역죄임에도 불구하고 여왕을 “덕만아”하고 부르는 순간은, 한 드라마에서 발견되어 끝까지 성장해간 캐릭터의 마지막으로 기억될 만 한 장면이었다. “그만 할래요.” 한 마디만 남기고 미실이 떠난 뒤, ‘왜 미실이 아니라 내가 왕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기 보다는 연모의 정에 휘둘려 사랑도 정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여왕이었지만, 이라는 드라마를 조금 멀리서 본다면 분명히, 덕만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잃으면서도, 그 외롭고 삭막하고 두려운 삶을, 애써, 견디며 살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부터 완성된 캐릭터였고 악역이면서도 가질 수 있는 모든 매력을 가졌던 미실 앞에서, 어리고 여리던 덕만은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덕만이 ‘왕’이 되어가며 끊임없이 던져준 질문이 바로 의 정수(精髓)다. 이들의 싸움은 천년도 더 전의 것이었으나, 같은 땅에서 몇 십 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떠오르게 했고, 이들의 삶과 죽음은 우리가 지난 한 해 함께 겪어온 죽음과 그 앞에 여전히 남아있는 삶을 생각하게 했다. 미실의 죽음 전과 후가 다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도 있는 작품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2009년에 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 윤이나
마지막회 SBS 월-금 밤 9시
“교통사고에 뺑소니에 방화에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 그런 내가 부모 원수 죽였다고 해서 더 나쁠 것도 없겠지.” 하지만 김순옥 작가의 세계에서 더 나쁜 건 얼마든지 있다. 주아란(이소연)이 이 말을 한 직후, 주아란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주아란의 부모를 죽인 진범인 신현우(한상진/배수빈)의 어머니 조경희(차화연)는 자살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기 몇 분 전 주아란은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 “그동안 지은 죄로 부족해서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는 김순옥 작가에게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그는 마지막회의 마지막 순간까지 등장인물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더 키우고, 그것을 몇 사람의 죽음으로 땜질해 버린다. 죽음과 함께 캐릭터들 사이에 쌓인 숱한 원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결말로 이어진다. 김순옥 작가는 모든 게 USB 하나면 끝나는 현실성 없는 전개로도 비판 받기에 충분하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사건을 위한 소모품쯤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악녀에 대해 갖고 있는 욕망과 죄의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죽은 두 명의 여자는 모두 자신의 과거를 죄를 통해 숨기고 결혼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상승하거나 유지했다. 조경희는 자신이 결혼 전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주아란의 부모를 살해하며 덮고 신우섭(한진희)과 결혼했고, 주아란의 복수극은 사실상 사회적 최하층에 있던 여자가 숱한 남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부자와 결혼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부와 신분에 대한 욕망은 크고, 가진 건 몸과 독기 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며 위로 올라가려 하지만 그럴수록 덮어야 할 죄는 많아진다. 주아란과 조경희가 끝내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김순옥 작가는 참 ‘한국적’이다. 볼 때마다 ‘징하다’란 말이 나오긴 하지만.
글 강명석
“모든 걸 다 가지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할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되고, 사막보다 외롭고, 삭막한 삶을 살게 되더라도, “견디는” 것. 그것이 여왕의 숙명이었다. 실질적으로 을 지배했던 미실(고현정)이 죽은 뒤로 12회를 더 이끌어 왔던 선덕여왕(이요원)은, 결국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삼한의 통일을 유신(엄태웅)에게 맡기고 천천히 스러져갔다. 그 마지막을 함께 끌어온 비담(김남길)은, 연모의 마음도, 손에 잡았던 권력을 놓쳐 버리고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대역죄임에도 불구하고 여왕을 “덕만아”하고 부르는 순간은, 한 드라마에서 발견되어 끝까지 성장해간 캐릭터의 마지막으로 기억될 만 한 장면이었다. “그만 할래요.” 한 마디만 남기고 미실이 떠난 뒤, ‘왜 미실이 아니라 내가 왕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기 보다는 연모의 정에 휘둘려 사랑도 정치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여왕이었지만, 이라는 드라마를 조금 멀리서 본다면 분명히, 덕만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계속 잃으면서도, 그 외롭고 삭막하고 두려운 삶을, 애써, 견디며 살아가는 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등장부터 완성된 캐릭터였고 악역이면서도 가질 수 있는 모든 매력을 가졌던 미실 앞에서, 어리고 여리던 덕만은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던 덕만이 ‘왕’이 되어가며 끊임없이 던져준 질문이 바로 의 정수(精髓)다. 이들의 싸움은 천년도 더 전의 것이었으나, 같은 땅에서 몇 십 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떠오르게 했고, 이들의 삶과 죽음은 우리가 지난 한 해 함께 겪어온 죽음과 그 앞에 여전히 남아있는 삶을 생각하게 했다. 미실의 죽음 전과 후가 다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도 있는 작품성을 유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2009년에 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글 윤이나
마지막회 SBS 월-금 밤 9시
“교통사고에 뺑소니에 방화에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 그런 내가 부모 원수 죽였다고 해서 더 나쁠 것도 없겠지.” 하지만 김순옥 작가의 세계에서 더 나쁜 건 얼마든지 있다. 주아란(이소연)이 이 말을 한 직후, 주아란은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주아란의 부모를 죽인 진범인 신현우(한상진/배수빈)의 어머니 조경희(차화연)는 자살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기 몇 분 전 주아란은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 “그동안 지은 죄로 부족해서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라는 극 중 대사는 김순옥 작가에게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 그는 마지막회의 마지막 순간까지 등장인물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문제를 더 키우고, 그것을 몇 사람의 죽음으로 땜질해 버린다. 죽음과 함께 캐릭터들 사이에 쌓인 숱한 원한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결말로 이어진다. 김순옥 작가는 모든 게 USB 하나면 끝나는 현실성 없는 전개로도 비판 받기에 충분하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사건을 위한 소모품쯤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악녀에 대해 갖고 있는 욕망과 죄의식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죽은 두 명의 여자는 모두 자신의 과거를 죄를 통해 숨기고 결혼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상승하거나 유지했다. 조경희는 자신이 결혼 전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주아란의 부모를 살해하며 덮고 신우섭(한진희)과 결혼했고, 주아란의 복수극은 사실상 사회적 최하층에 있던 여자가 숱한 남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과거를 전혀 모르는 부자와 결혼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부와 신분에 대한 욕망은 크고, 가진 건 몸과 독기 밖에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저지르며 위로 올라가려 하지만 그럴수록 덮어야 할 죄는 많아진다. 주아란과 조경희가 끝내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도 그들과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죄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김순옥 작가는 참 ‘한국적’이다. 볼 때마다 ‘징하다’란 말이 나오긴 하지만.
글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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