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SBS 의 혜린과 2009년 MBC 의 미실, 한국 드라마 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두 캐릭터를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고현정은 현존하는 여배우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고현정이 실제의 자신을 토대로 만들어낸 ‘여배우 고현정’을 연기하는 영화 의 개봉을 앞두고 [스타ON]과 만났다. 비록 수많은 이들을 ‘미실의 유혹’에 빠뜨린 에 대해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작품이니까 되돌아보지 않았다. 지금도 현장에서 얼마나 고생들을 하는데 의리가 있지” 라며 말을 아꼈지만 꼭 미실이 아니더라도 고현정은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다.

2005년 SBS 로 컴백한지 5년째인 올해 MBC 을 통해 드디어 세상을 향해 ‘고현정이 돌아왔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것 같다. 컴백을 결심하던 당시에도 이 같은 성공을 예측했나.
고현정 : 물론 아니다. 그걸 어떻게 알겠나. 내일 일도 모르는데. 살면서 배운 게 있다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오해만 안 생겨도 좋겠다 싶다. 컴백 당시에는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일 안하고 계속 밥만 먹고 지낼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없으니까. 그 땐 정말 두렵기도 하고 암담하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큰 욕심이 있어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니까 야단맞을 건 야단맞고,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을 할 땐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50% 이상”
[스타ON] 고현정│“언론과 대중의 관심 귀찮냐고? 새록새록 더 감사할 거다”
[스타ON] 고현정│“언론과 대중의 관심 귀찮냐고? 새록새록 더 감사할 거다”
컴백 후 작품 선택에서 모험을 시도하는 데 별다른 주저가 없었던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나 형사물이었던 MBC 에 출연했고 에서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하며 연기의 외연을 점점 넓혀왔는데 그 행보가 치밀한 계산에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아닌 것 같다.
고현정 : 그래서 예전에 도 나를 ‘2006년의 플레이어’중 한 명으로 뽑았던 것 같은데 계산하는 건 전혀 아니다. 말했듯, 사는 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으니까.

올 초 에 미실 역으로 출연을 결정한 데 대해 주인공 아닌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는데 정작 뚜껑을 열자 작품의 ‘얼굴’이 됐다. 이 캐릭터가 ‘대박’이 날 것을 예상했는지. (송선미 no-f***)
고현정 : 에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사실 나는 인터넷을 잘 하지 않고 반응도 찾아보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그 반응도 잘 못 느꼈다.

그럼 작품을 딱 선택할 땐 뭘 보고 가나.
고현정 : 내가 아니면 누구로 할지 같은 걸 여쭤보고 한다.

자신감의 표현인가? (웃음)
고현정 : 아니다. (웃음) 어떤 작품을 한다는 건 자신감만 갖고, 혹은 그럴싸한 말을 던졌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약속을 해서 촬영하고 며칠씩 밤을 새며 사람들과 같이 보내야 하는 일이다. 아마 다른 배우들도 그렇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50% 이상이다. 잘 되든 못 되든, 어떻게 해서든 방향만 잘 잡아주시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 잘 되면 좋은 거고.

이후 실험적이거나 카리스마가 강한 캐릭터를 주로 맡고 있는데 정통 멜로를 다시 해볼 생각은 없는지. (이준희 june***)
고현정 : 타이밍이 맞고 박자가 맞는 작품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멜로를 하더라도 달지 않게 하고 싶다. 내 얼굴이 워낙 ‘달게’ 생기다 보니 결과는 달겠지만, 연기는 달지 않게.

“미실의 눈썹 연기는 무거운 가채 덕분”
[스타ON] 고현정│“언론과 대중의 관심 귀찮냐고? 새록새록 더 감사할 거다”
[스타ON] 고현정│“언론과 대중의 관심 귀찮냐고? 새록새록 더 감사할 거다”
에는 ‘분장실의 강선생님’처럼 위계질서가 강한 집단 내의 코드도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예고편에서 최지우 씨와 다툰 것처럼 실제 활동에서 다른 여배우와 말다툼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스낵면)
고현정 : 난 다투기보다 야단을 맞거나 야단을 치거나 하는 편이다. (웃음) 야단을 치는 이유는 경우에 따라 다른데, 요즘 어른들은 싫은 소리를 잘 안 하시지만 난 오히려 애정이 가면 쓴 소리를 하는 편이다.

그럼 보통 때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고현정 : 부럽다. 내가 활동 시작했던 때에 비해 ‘웰메이드’ 된 게. 그 때는 엄마가 운전해 주시고 메이크업은 내가 직접 하고 그런 식이었는데 요즘엔 그런 면에서 잘 다듬어졌다. 또, 용기와 결단력 같은 것도 부럽다.

예전의 자신에게는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했나?
고현정 : 내가 데뷔해서 일 시작했던 89년, 90년, 91년 그 땐 다들 좀 ‘좋은 사람’ 병들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개성보단 남들의 판단이나 잣대가 중요했고, 선후배 관계도 그렇고, 활동하면서도 학교는 꼭 다녀야 했고. 지금처럼 매니저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항상 모든 사람과 직접 맞대응을 했어야 하니까 원초적인 세계였던 것 같다.

93년에도 ‘가장 아름다운 피부의 연예인’으로 뽑힌 적이 있던데 지금도 여전히 피부미인 1위로 꼽히곤 한다. 비결이 궁금하다. (안나연 sasi***)
고현정 : 너무 힘들다. 죽겠다. 포기하기도 그렇고. (웃음) 그냥 좋아지는 건 아니다. 수시로 점검하고 피부과도 가고 그런다. 다만 내가 힘주어 얘기할 수 있는 건 약간 행운, 노력하는 거에 비해서는 좋은 것 같다. 뭐가 막 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노력을 안 할 수는 없다. 전에 얘기한 대로 건조함이나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겨울에도 차에 히터를 안 튼다던가 하는 생활 습관들을 좀 지켜야 한다. 배우,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노력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사실 난 거울을 잘 안 보는데, 연기로 승부를 하는 거지. (웃음) 거기로 눈이 덜 가게끔 눈을 더 반짝인다던가 해서.

에서는 미실 특유의 눈썹 연기가 화제였다. 연습해서 눈썹이 그렇게 잘 올라간 건가? (신영훈 dudgns13***)
고현정 : 솔직히 말하면 가체가 너무 무거워서 자꾸 앞으로 쳐지니까 그걸 좀 올리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거울보고 연습하냐는 사람들도 있던데, 연습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카메라가 어느 각도에서 잡을지도 모르는 거라.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해 오면서 남자배우와는 다른 ‘여배우’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는지. (paleblue00)
고현정 : 글쎄, 딱히 여자라서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여자, 남자로 구분 지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나는 배우들을 보면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엔 내 얘기도 포함되긴 하는데 물론 배우로 일하는 데 좋은 점이 훨씬 많기도 하지만 항상 분장을 받고 의상에 몸을 맞춰야 한다던가 하는 순간들이 그렇다. 나는 이제 왜 굳이 내가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면서까지 의상에 몸을 맞춰야 하나 싶어서 내 몸에 의상을 맞추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옷이 필요하면 몸을 마르게 만들어야 하고 빈혈 약을 들고 다니면서 그걸 이겨내야 하는 것처럼. 그런 게 이 직업의 특수성일 수도 있지만.

“외국가서 레드카펫 밟거나 연기 대상이 무슨 소용”
[스타ON] 고현정│“언론과 대중의 관심 귀찮냐고? 새록새록 더 감사할 거다”
[스타ON] 고현정│“언론과 대중의 관심 귀찮냐고? 새록새록 더 감사할 거다”
이 베를린 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되었다. 혹시 해외 영화제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있나.
고현정 : 별로 없다. 나는 같이 촬영한 감독, 스태프들, 주위 분들이 더 중요하다. 내가 외국이든 어디든 가서 레드카펫 밟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MBC 연기대상은 어떤가. (조아라 dielo***)
고현정 : 그것도 별로. 사실 MBC 좋은 일 아닌가? (웃음) 난 이미 넘치는 사랑을 받고 광고도 많이 찍었는데 거기 드레스 입고 가서 네다섯 시간 동안 배 집어넣고 있기 너무 힘들다. 계단 공포증이 있어서 무대 오르내리기도 겁나고. 뭐 이러다 갑자기 나갈지도 모르지만, 일단 드레스가 없다. (웃음)

올 초 방송사와 토크쇼 진행에 대해서도 논의했던 걸로 아는데 지금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인지 궁금하다. (mizquri)
고현정 : 의 결과가 중요할 것 같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서는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은 면도 있지만 이 작품은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애써주신 점이 많은데 토크쇼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내가 토크쇼에 나가서 얼마나 더 솔직하게 할 수 있겠나. 결국 도 잘 들어야만 리액션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것 같다. 프로그램 얘기가 1년 전부터 있었는데 아직 실현되지 않는 걸 보면 아직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가능하면 작품으로 더 만나 뵙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릎 팍 도사’와 예전 인터뷰 등에서 아이돌에 해박한 지식과 각별한 관심을 보였는데 혹시 요즘 눈에 들어온 아이돌이 있다면. (얼씨구절씨구)
고현정 : 너무 많다. (웃음) 그런데 얼마 전 Mnet에서 하는 시상식을 보다가 많이 울었다. 어린 친구들이 우는 모습을 보니 안 되기도 했고,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럽기도 했다. 그들이 자기 자신을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나라면 이제 그런 자리에 서서 똑같은 감정을 드러낸다 해도 좀 억지스럽지 않을까 싶어서.

데뷔 후 항상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는 삶을 2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제는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드나. 혹시 그런 것들에 무뎌지기도 하나. (fullmoon)
고현정 : 글쎄, 새록새록 감사할 거다. 점점 무뎌질 수도 없고 무뎌지면 안 되고. 만약 관심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진짜 내 소망이라면 그렇게 될 거다. 하지만 정말로 그걸 원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전세기 타고 따로 다니는 걸 원하는 사람들이 과연 대중과 분리되는 그 순간을 원하는 건지 그냥 혼자 있고 싶은 건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추구하는 대로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일을 해왔다. 지금의 고현정이라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혹시 배우로서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이라 여겨지는 것도 있나.
고현정 : 머릿속에 뭐가 세뇌만 되어 있지 않다면 그런 건 없을 것 같다. 뭐든 간절히 원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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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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