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가족이 있다. 같은 피를 나누고 한 집에서 살면서도 늘 다툼과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족 KBS . 목 늘어난 러닝셔츠와 명품백 만큼이나 너무 다른 두 가족이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되면서 만들어진 유사 대가족 SBS .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랐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든 가족이라는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은 ‘우리가 남이가’보다는 ‘우리도 남이었네’를 확인하는 순간을 자주 맞는다. 그러나 그 많은 차이와 반목도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평생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시한폭탄처럼 여길지, 가족애로 극복해나갈지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너무 다른 두 집을 찾아가 물었다. /편집자주

KBS 는 매 회마다 기시감을 일으키는 드라마다. 과거 가족드라마의 문법을 반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더 정확히 말해 수상한 삼형제가 사는 순경(박인환)네의 일상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전과자(이효춘)는 첫째 건강(안내상)에게 집 혹은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둘째 현찰(오대규)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자신과 시아주버니를 챙기지 않는다며 둘째 며느리 도우미(김희정)를 들볶는다. 그때마다 도우미는 현찰에게 분가 타령을 하고 역시 그때마다 현찰은 애꿎은 아내에게 화를 낸다. 이 도돌이표 같은 일상은, 하지만 어딘가 아슬아슬한 구석이 있다.

익숙하지만 뭔가 달라진 가족들

그 소소한 갈등을 이끄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균열이다. 가족이라는 관계망 안에서 부여된 자리와 그 바깥에 있는 역할 모델 간의 균열.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고시원을 전전하는 건강은 밖에서는 개차반일지언정 어머니에게는 “어려서부터 금방 담근 새 김치 아니면 안 먹는” 우리 장남이다. 그에 반해 밖에서는 잘 나가는 사업가이자 실질적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현찰은 어머니를 위해 질 좋은 고기를 사고 핸드폰을 장만해주려 하지만 언제나 어머니에겐 형 다음의 존재다. 실질적으로 가장 큰 희생을 치루는 건 현찰이지만 자신의 능력 혹은 욕망과 가족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위치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건강과 현찰 모두 같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구김살 없는 셋째 이상(이준혁)이 아버지 순경과 같은 경찰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가끔 가족 조회를 하는 순경이 가족 안에 적용하는 룰과 이상이 내면화한 사회적 정체성 사이에는 별다른 간극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면적 갈등은 문영남 작가가 쓴 가족드라마의 계보 안에서 볼 때 더 흥미롭다. 가족의 따뜻한 정을 그린 KBS 는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형은 형다운, 그래서 화목할 수밖에 없는 향수 어린 가족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공동체 바깥의 욕망을 인정하게 되면 가족공동체의 축인 가부장조차 역할 모델 사이에서 갈등한다. 계솔이(이보희) 옆에 앉은 범인(노주현)에게 소파의 상석을 가리키며 “아빠 자리는 여기”라고 말하는 어영의 모습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여기서 의 세계는 붕괴한다. 문제는 그 붕괴를 재건하는 방식이다. 의 세계는 극단적이다. 그곳에는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려는 조강지처와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한 한원수(안내상) 혹은 이기적(오대규)이 대립하고, 이 가정 파괴자들은 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족이란 가치가 승리하는 건 후련할지언정 이 갈등이 제기하는 진정한 문제는 회피한다. 그에 반해 에서 대놓고 가족의 자리를 포기하는 건 어머니로서의 책임감이 제로인 계솔이 정도다.

이 삼형제가 문영남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할 수 있을까

때문에 진행 중인 드라마에 대한 가장 안일한 결론인 ‘앞으로의 진행이 중요하다’는 말은 적어도 에 있어서는 진실이다. 앞서 말한 소소한 다툼이 반복되는 건 그것이 쉽게 고쳐질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 균열은 미세하되 아슬아슬하다. 사건 때문에 생긴 갈등은 사건이 끝나면 해결되지만 기본적으로 어긋난 역할 모델의 삐거덕거림은 그 때 그 때 기름을 치는 미봉책으로 해결될 뿐이다. 아무리 이상이 시답잖은 농담과 폭탄주로 건강과 현찰을 화해시키며 “수상한 삼형제를 위하여!”라고 외쳐도 혈연의 정만으로는 혈연의 논리 바깥에서 만들어진 갈등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여섯 남자의 속옷을 큰 박스에 넣고 알아서 가져가게 하라는 시어머니의 얘기에 같이 웃으면서도 도우미가 분가에 대한 바람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아슬아슬한 평화는 앞으로 폭발할 수도, 아니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봉합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는 단순히 덜 독한 문영남 드라마가 아닌 그녀의 널뛰던 필모그래피를 정리할 답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위근우

“정직하게 살자. 분수에 맞게 살자” 상수동에 살고 있는 강만복(최불암) 집의 가훈이다. 사업에 실패해 이 집에 얹혀살게 되는 서정길(강석우) 가족은 분수에 맞지도 않고, 정직하지도 않았던 과거를 청산하고 “사람이 되어야”만 이전에 누렸던 부(富)를 되찾을 수 있다. 과거의 홈드라마가 현실에서 보기 힘든 대가족을 모아놓거나 결혼을 매개로 가족을 확대시키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면, SBS <그대 웃어요>는 전혀 다른 두 가족을 한 집에 몰아넣고, 그 안에서 3대에 이르는 세대와 각자의 가치관, 계급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카센터 크레이닝복과 홈드레스 사이의 거리

만복의 가족이 한 달 먹고 살 돈을 술자리 한 번에 털어 넣었던 건설회사 회장 시절을 잊지 못하는 정길과 세상이 무너져도 자기 손톱 부러지는 게 더 중요한 공주희(허윤정)에게 ‘지금 현재’ 분수에 맞는 삶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마찬가지로 만복의 며느리로 살아온 30년 간 쓰레기 봉지 하나 써 본 적 없이 절약해 온 백금자(송옥숙)와, ‘상수동 쌍체인’ 시절에도 아버지에게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한 강상훈(천호진)에게, 만복 앞에서 끝까지 뻔뻔할 수 있고 손에 물 한 번 묻혀보지 않은 정길의 가족은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 초반의 재미는 그 ‘차이’의 극명한 대조에서 나왔다. 만복의 가족과 정길의 가족은 카센터 이름이 선명한 트레이닝복과 밀라노에서 산 홈드레스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하지만 <그대 웃어요>는 이들의 충돌을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그리지 않는다. 정길의 가족은 끊임없이 사고를 치지만 그 일들은 대개 만복의 선에서 해결 가능한 것이며, 차이에서 비롯된 다양한 갈등은 특별한 출혈이나 내적 갈등 없이 봉합된다. 여기에서 <그대 웃어요>의 세계관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대 웃어요>의 세계는 분수에 맞게, 열심히 살기만 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는 정직한 세계이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는” 낙천성이 지배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가는 두 가족들은 ‘생활’ 속에서 서로를 받아들일 방법을 찾는다. 방이 없으면 다락방을 방으로 만들고, 제 방을 내어주는 식이다. 상대를 이해는 할 수 없지만 경험을 통해 인정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생활을 공유한다. 나와는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바로 그 과정의 일상화를 통해서 사람은 변화한다. 바로 이 부분이 <그대 웃어요>와 만복이 말하는 ‘사람 되기’ 의 핵심이다.

물론 이 과정은 현실적이지 못한,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손쉬운 방법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과장되어 있고 가벼울지언정 생활에서의 소소한 깨달음이, 뼛속까지 박힌 과거의 자신을 바꾸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대 웃어요>가 보여주는 ‘사람 되기’를 위한 또 하나의 방법, ‘사랑’ 역시 크게는 그 안에 있다. 화장실과 욕실이 구분되어있지 않은 집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정인(이민정)이 “내 발로 고생하고 뛰어가면서” 처음으로 번 돈으로 한 집에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양말을 선물을 주는 것은, 현수(정경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진심어린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독하지도, 나쁘지도 않기에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정직하게 살자. 분수에 맞게 살자”는 가훈은, <그대 웃어요>라는 드라마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대 웃어요>는 등장인물 중 어느 한 쪽에만 힘을 실어 가족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도 않고, 새롭거나 변주된 가족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함께 살게 된 동창의 아내가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라거나, 자매가 모두 한 남자를 좋아하는 식의 흔히 ‘막드’에서 활용할 법한 소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보여주는 낙천성과 삶에 대한 정직한 태도는 <그대 웃어요>를 ‘건강한’ 가족 드라마로 남아있을 수 있게 만든다.

만복의 집과 세차장 부근을 벗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배경 속에서도 <그대 웃어요>가 웃음과 이야기의 적정선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30회라는 분량 속에 맞춰진 이야기를 차근차근 전개해왔기 때문이다. 두 가족 사이의 갈등, 현수, 정경, 정인 사이의 로맨스, 정길의 사람 되기 모두 특별히 늘어지는 일 없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16회 연장 결정에도 <그대 웃어요>가 지금까지의 균형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것은 서정길이 언제 사람이 되느냐를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글 윤이나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윤이나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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