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처연하게 흐른다. 여자는 내리쬐는 태양에 눈이 부실만큼 새하얀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고, 남자는 볕도 들지 않는 반지하방의 어둠 속에서 다른 이의 목을 조르고 있다. 너무나 다르지만 서로에게 유일한 빛이었던 이 연인의 역사는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 <백야행>(시네마서비스 제작, 박신우 감독)의 언론시사가 10일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14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다시는 함께 태양 아래를 걷지 못하게 됐지만 여전히 연인으로 살아가는 미호(손예진)와 요한(고수). 이들은 매번 “우리의 미래를 위해” 사람을 죽이고, 일을 꾸민다. 그것은 형사 동수(한석규)에겐 멈추게 해야 할 범죄지만 이들에겐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2006년 일본에서 추리소설인 원작을 아야세 하루카, 야마다 타카유키 주연의 완성도 높은 멜로드라마로 선보인 바 있는 <백야행>은 손예진, 고수에 의해 얼마나 다른 매력을 확보했을까? 영화는 11월 19일 개봉한다.

태양도, 가느다란 빛 한 줄기도 찾기 힘들다


영화 <백야행>에는 어린 연인의 비극이 벌어졌던 공사 중인 빌딩이 폐 선박으로 바뀌고, 형사 동수에게는 동료를 잃는 것 이상의 비극이 추가되는 등 원작에서 바뀐 설정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원작 소설이나 원작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일본 드라마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그러한 사소한 설정들이 아니다.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가련함 때문에 먹먹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원작 의 연인은 어째서인지 영화로 오면서 ‘미션 클리어’만을 일삼는 <천사의 유혹>의 주아란과 살인병기로 탈바꿈했다. 사람을 죽인 후 밤거리를 내달리거나 구토하는 것만으로 요한의 뿌리 깊은 죄의식을 표현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또한 카페에 앉아 고요히 차를 마시고, 작은 음모들을 꾸미는 것만으로 백야(白夜)에 가까운 미호의 세계를 보여주기엔 너무 얕다. “새롭게 형사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도 빗나가 영화는 멜로도, 추리극도 아닌 ‘1인 형사물’로 보일 지경이다. 그 결과 <백야행>은 훌륭한 원작을 가진 영화가 원작의 감동을 능가하기 얼마나 힘든 지 확인하는 또 다른 예시가 되고 말았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